챗GPT가 등장한 지 33개월이 지났지만, 거시 고용 지표는 여전히 큰 변화를 보여주지 않는다. 실업률과 직업 구성의 변화 속도 모두 생성형 AI 이전 추세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그러나 신규 대졸자와 AI 노출이 높은 직군의 신입 고용에서는 다른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이 간극이 단순한 경기 요인인지, 아니면 노동시장의 구조적 변화인지에 따라 앞으로의 대응 방향이 달라질 수 있다.
통계가 가린 진실
챗GPT가 등장한 지 33개월이 지났지만 거시 고용 지표에는 AI의 영향이 크게 드러나지 않는다. 예일 버짓랩 연구는 직업 구성의 변화 속도, AI 노출도별 실업률, 실업 지속 기간 모두에서 생성형 AI 이후 단절을 발견하지 못했다. 브루킹스 연구도 같은 결론을 내렸다. 같은 시기 신규 대졸자 실업률은 5.7%로 전체 실업률 4.2%를 웃돌았고, 대학 졸업장이 주던 고용 안전 프리미엄은 기존 -4.1%p에서 -2.8%p로 축소됐다.
노동시장에서 수적으로 가장 큰 집단은 이미 자리를 잡은 경력자다. 평균 지표는 이 대집단의 동향을 주로 반영하기 때문에 신입 채용이 줄어들어도 전체 수치에는 큰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거시 고용 지표는 노동시장 전체의 평균 상태만을 보여줄 뿐, 연령이나 경력 구간에 따른 차이를 세밀하게 포착하지 못한다.
기업은 신입 채용을 줄이면서도 데이터상 문제없다고 판단한다.
가장 늦게 드러나고 가장 되돌리기 어려운 손상은 통계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구간에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신입 고용 감소는 바로 그 구간에 위치한다.
신호는 붕괴 직전에 일어난다
1990년대 초 캐나다 뉴펀들랜드 어장은 자원 고갈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어획량 통계는 오랫동안 풍성하게 유지됐으나 산란 가능한 성어 자원은 1962년부터 30년간 지속적으로 감소해, 1992년 북부 대구 자원은 역사적 수준의 1%까지 떨어졌다. 대형 트롤선은 이전 100년 동안 잡던 양을 불과 15년 만에 어획했고, 이 과정에서 성어와 함께 어린 개체까지 대량으로 포획됐다.
어획량 기록만으로는 어장이 건강해 보였다. 그러나 트롤망에는 다 자란 물고기뿐 아니라 다음 세대를 구성할 어린 개체와 산란군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자원이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능력이 저하됐고, 어업학에서는 이를 리크루트먼트 오버피싱, 즉 보충 남획이라고 부른다. 잡히는 양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동안에도 미래 어획을 위한 기반이 먼저 소진되고 있었다.
회복 과정은 선형적이지 않았다. 1992년 조업 전면 금지 이후에도 2002년까지 대구 자원은 회복되지 않았으며, 수십 년이 지난 후에도 원래 수준의 10% 정도에 그쳤다. 어린 개체가 사라지면서 먹이사슬과 생태계 구조가 변화했고, 원인이 제거된 후에도 자원이 이전 상태로 돌아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러한 이력현상은 자원 고갈이 단순한 양적 감소를 넘어 시스템 자체의 변화를 초래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성어 자원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상황에서도 치어 자원이 지속적으로 줄어들면, 전체 어획 통계는 정상으로 보일 수 있다.
뉴펀들랜드 사례는 어장 통계가 붕괴 직전까지 안정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사다리 첫 칸의 소멸
스탠퍼드 연구는 미국 최대 급여 데이터인 ADP 수백만 건을 분석했다. AI 노출이 높은 직군에서 22~25세 신입 고용은 13% 감소했으며, 기업별 충격을 통제할 경우 감소폭은 16%까지 확대됐다. 가장 최근 데이터에서는 연 3.8%씩 줄어드는 추세로, 시간이 지날수록 감소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같은 직군의 경력자 고용은 비교적 안정적이었고, AI 노출이 낮은 직군에서는 신입 고용이 오히려 증가했다.
AI가 가장 먼저 영향을 미치는 영역은 교과서로 배운 정형화된 지식이다. 연구진은 AI가 검증 가능하고 코드화된 업무를 자동화한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업무는 그동안 신입 채용을 정당화해 온 주요 근거였다. 신입은 주로 책으로 습득한 지식을 제공하고, 경력자는 경험을 통해 축적된 암묵지를 제공하기 때문에 충격이 신입 단계에 집중되는 구조다.
스탠퍼드 연구에 따르면 노출도나 연령에 따른 연봉 추세에는 큰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다. 임금 수준은 유지되지만 채용 입구 자체가 좁아지는 형태의 변화다. 고용 감소는 일자리 전체가 아니라 AI 노출이 높은 직군의 신입 단계에 국한된 현상으로 관찰된다. 그런데 임금은 그대로인데 입구만 좁아진다는 것이, 통계로는 좀처럼 잡히지 않는 종류의 변화라는 점이 마음에 걸린다.
시니어는 오랫동안 “빚어져서” 만들어진다
AI가 대체하기 어려운 영역은 경험을 통해 축적되는 암묵지다. 고객 상황에 대한 판단, 맥락 파악, 문서화되지 않은 현장 요령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연구진은 AI가 경력자의 판단·고객·프로세스 집약적 업무는 오히려 보완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암묵지는 신입 시절의 실무 경험을 통해서만 형성된다.
모든 경력자는 처음에 책으로 배운 지식만 가진 상태로 입사했다. 신입 단계에서 실제 업무를 수행하며 코드화하기 어려운 판단 감각을 익혔고, 이를 바탕으로 더 높은 역할을 맡게 됐다. 이 경로는 다른 방식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신입 채용이 줄어들면 AI가 쉽게 대체하지 못하는 암묵지를 생산하는 경로가 차단된다.
이러한 손상은 인구 모멘텀과 유사하게 시차를 두고 나타난다. 출산율이 하락해도 인구는 한동안 증가하다가, 줄어든 세대가 부모가 되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인구 감소가 본격화된다. 조직에서도 신입을 채용하지 않아도 기존 시니어가 자리를 지키는 동안은 문제가 드러나지 않는다. 구멍은 해당 세대가 은퇴하는 10~20년 후, 그 자리를 채울 인력이 부족해질 때 확인된다.
신입 한 명의 인건비를 줄이는 것은 단기적으로 손익계산서에 반영된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길러지지 못한 미래 시니어 인력은 재무제표에 부채로 기록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조직의 역량 기반이 약화되는 효과는 즉시 드러나지 않는다. 숫자만 보면 당장 잘못된 것은 없어 보인다. 다만 이 구조가 제대로 굴러가고 있다는 느낌은 좀처럼 들지 않는다.
모든 게 경기 탓?
컴퓨터공학 신입 초봉은 2026년 6.9% 상승해 8만 1천 달러 수준에 이를 전망이다. AI 노출이 가장 높다는 직군에서 신입 몸값이 오르는 현상은 단순히 경기가 나빠서 신입 채용이 줄었다는 설명과 잘 맞지 않는다.
예일 버짓랩 연구는 직업 구성 변화가 생성형 AI 등장 이전인 2021년부터 이미 진행 중이었으며, 최근 변화 속도가 더 가파르지 않다고 지적했다. 일부에서는 ‘AI로 인한 대량해고’ 주장이 구조조정을 정당화하기 위한 해석일 수 있다고 본다. 대졸 고용 안전 프리미엄 축소 역시, 실제로 졸업자가 더 어려워진 것이 아니라 비대졸 청년의 구직 포기가 늘면서 분모가 변한 결과라는 해석도 있다.
스탠퍼드 연구는 AI 노출이 높은 직군과 낮은 직군을 비교했다. 경기 요인이라면 두 집단 모두에서 신입 고용이 비슷하게 줄어야 하지만, 실제 감소는 노출이 높은 직군에 집중됐다. 초봉 상승은 남아 있는 소수 자리에 대한 경쟁이 치열해진 결과로 볼 수 있으며, 전체 자리 수가 줄어드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다.
거시 지표가 안정적으로 보이는 동안에도 특정 구간의 변화가 진행될 수 있다. 뉴펀들랜드 사례에서 어획 통계는 붕괴 직전까지 정상 수준을 유지했다.
누가 먼저 사다리를 올릴 것인가
AI가 고용에 미치는 더 큰 영향은 일자리 총량 자체가 아니다. 과거 산업 전환 과정에서도 총 고용은 다른 형태로 회복되는 경우가 많았다. 문제는 첫 일자리 단계가 줄어들면서 미래 숙련 인력을 양성하는 경로가 약화된다는 점이다.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신입을 채용하고 육성하는 것이 단기적으로 불리하다. AI로 해당 업무를 대체하는 비용이 낮고, 육성한 인력이 다른 기업으로 이동할 위험이 있다. 그러나 모든 기업이 동일한 선택을 하면, 사회 전체적으로 미래 시니어 인력을 공급하는 기반이 약화된다. 현재 신입을 채용하지 않아도 기존 시니어가 근무하는 동안은 그 영향이 드러나지 않지만, 10~20년 후 해당 세대가 은퇴할 때 인력 공백이 나타날 수 있다.
지금의 신입은 10년 후 중간관리자, 20년 후에는 임원 후보군이 된다. 신입 단계 채용을 줄이는 조직은 장기적으로 스스로 필요한 인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진다. AI가 경력자의 판단 업무를 보완할수록, 그런 판단을 수행할 수 있는 인력의 가치는 높아지는데, 그 인력을 양성하는 초기 단계가 축소되고 있다.
일부 조직은 현재의 거시 지표에 의존하지 않고, 신입 단계를 미래 역량을 개발하는 과정으로 재설계할 수 있다. AI가 신입 단계의 정형화된 업무를 대체하는 만큼, 남은 역할을 판단력과 맥락 이해를 배우는 자리로 조정하는 데 드는 비용을 누가 먼저 감수하느냐에 따라 조직 간 차이가 나타날 것이다.
신입 단계를 줄이는 선택은 개별 조직에게는 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이 누적되면, 10년에서 20년 후에 판단력과 맥락을 갖춘 인력이 부족해지는 결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AI가 경력자의 업무를 보완할수록, 그런 경력을 쌓은 사람의 희소성은 더 커진다.
결국 누가 먼저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한 비용을 감수하느냐가, 조직 간 그리고 사회 전체의 역량 격차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