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마친 뒤 일자리를 얻는 순서는 오랫동안 당연하게 여겨졌다. 그러나 경력 없는 사람에게 맡기던 일이 줄면 교육과 취업 사이의 공백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이 출발부터 유리해진다.
사라지는 신입 일자리
22~27세 대졸자의 실업률은 2026년 2분기 5.6%였고 불완전취업률은 42%까지 올랐다. 열 명 중 네 명은 학위가 필요 없는 일을 한다. 같은 연령대 무학위자의 실업률은 오히려 7.7%에서 7.2%로 낮아졌다. 미국에서 학위는 여전히 쓸모가 있지만 취업을 보장하지는 못한다.
특히 AI 도입이 빠른 마케팅, 법무, 회계, 인사, IT에서는 신입 채용이 먼저 감소했다. 기업은 해고보다 신규 채용을 줄이고 있다. 그런데 ‘학위 요건 폐지’도 기대만큼 채용을 늘리지 못했다. 대기업 1만1,300개 직무 중 실제로 요건을 없앤 비율은 3.6%였고 무학위자 채용 순증은 연간 약 9만7,000건에 그쳤다. 학위 요건은 낮아졌지만, 경력을 시작할 자리도 함께 줄지 않았는가.
첫 직장이 오래 남기는 흔적
1979~1989년 미국 백인 남성 대졸자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 따르면, 졸업 당시 실업률이 1% 높을 때 초임은 6~7% 낮았고 그 격차는 15년 뒤에도 남았다. 첫 직장의 임금과 업무 수준, 경력 공백이 이후 이직과 승진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충격이 끝나도 흔적이 남는 이런 현상을 경제학에서는 ‘히스테리시스’라고 부른다. 첫 취업이 늦어지면 당장의 소득만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불황으로 사라진 자리는 경기가 좋아지면 돌아올 수 있지만 자동화된 자료 정리나 초안 작성 업무는 그렇지 않다. 기업이 주니어를 뽑지 않으면 몇 년 뒤 승진시킬 중간급 인력도 사라진다. AI가 초급 업무를 대체하면 회복은 더 어렵지 않을까.
높은 임금만 보고 움직여도 될까
전기공 같은 숙련직 수요는 분명 늘고 있다. AI 인프라 건설에만 전기공 약 50만 명이 필요하다는 추산도 나온다.
하지만 높은 임금은 지금 사람이 부족하다는 신호일 뿐이다. 과거 미국 엔지니어 시장에서도 높은 초임을 보고 인력이 몰린 뒤 공급 과잉과 임금 하락이 반복됐다. 전기공 도제 과정은 보통 4~5년이 걸리니, 자격을 얻을 때는 시장이 달라질 수 있다.
건설 경기도 변수다. 북미 데이터센터의 건설 중인 용량은 2025년 하반기 전년보다 약 6% 줄었다. 전력과 전기설비 부족이 공사를 늦췄기 때문이다. 반도체 관련 사업이 마무리되면서 컴퓨터, 전자 제조시설 건설지출도 18개월 동안 약 40% 감소했다.
게다가 신체 부담도 크다. 건설, 채굴 종사자는 관리직보다 장애연금을 받을 위험이 2.24배 높았다. 숙련직은 젊을 때 소득이 빠르게 오를 수 있지만 오래 일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 초임만 보고 끝낼 일인가. 소득의 지속 기간도 봐야 한다.
‘월급 받으며 배우는 자리’
대학에서 안정적인 사무직으로 이어지던 경로에는 학위만 있었던 게 아니다. 신입은 월급을 받으며 일하고 선배의 검토를 거쳐 판단 기준을 익혔다. AI로 사라지는 것은 학위의 가치라기보다 졸업 뒤 몇 년간 제공되던 유급 훈련의 자리다.
원격근무도 이 경로를 약하게 만들었다. 가까이서 받던 피드백과 멘토링이 줄자 기업은 바로 투입할 수 있는 경력자를 선호했다. 뉴욕 연은은 원격근무가 청년 대졸 실업 증가분의 64%를 설명한다고 추정했다.
반면 도제 제도는 이 훈련비를 고용주와 공공 부문이 부담하는 방식이다. 참가자는 첫날부터 임금을 받으며 배운다. 미국의 등록 도제는 2024회계연도 약 68만 명으로 늘었지만 근로연령 인구의 0.3%에 불과하다. 이는 2022년 미국 자료를 기준으로 하면 독일의 약 7분의 1 수준이다.
차이는 무엇을 배우느냐에 있을까. 누가 비용과 위험을 지느냐에 있다.
학생이 먼저 돈을 내고 취업을 기다리면 채용 축소의 위험도 개인 몫이다. 회사가 임금과 교육비를 내면 경력의 첫 몇 년을 보호받을 수 있다.
AI 시대에 중산층이 될 기회를 늘리는 문제는 학위와 비학위의 우열보다 ‘월급 받으며 배우는 자리’를 누가 얼마나 만드느냐에 달려 있다.
결국 교육 기회의 격차는 강의실보다 취업 직전의 몇 년에서 더 커질 수 있다. 소득이 없는 학습 기간을 견딜 수 있는지가 직업 선택의 폭을 정하면, 제도가 형식상 동등해도 가정의 자원에 따라 다르게 작동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