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국 문샷AI의 Kimi K3가 프론티어급 성능을 값싼 오픈웨이트로 내놓고, 미국 프론티어 랩들까지 앞다퉈 토큰 가격을 내리면서, 같은 일을 처리하는 데 드는 비용은 불과 몇 년 사이 수십분의 일로 떨어졌다. 지능을 한 번 쓰는 값이 이렇게까지 싸진 것이다.
변화는 가격표에만 있지 않다. 사람들은 이제 ‘AI가 이런 것도 하네’ 하는 신기함을 지나, AI를 쓰면 실제로 얼마가 남는지, 사람을 쓰는 것과 비교해 어느 쪽이 더 싼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신기함의 단계가 끝나고 ‘경제성’을 계산하는 단계로 넘어온 것이다.
그래서 토큰 단가의 급락은 단순한 효율성 문제가 아니다. 어떤 일이 토큰으로 넘어가고, 어떤 자산이 새로 값을 얻으며, 그렇게 생긴 이득이 결국 누구의 몫으로 돌아가는지 — 이것이 지금 기업 안의 구조와 노동 시장을 다시 짜고 있는 진짜 문제다. 이 글은 그 재편의 한 단면을 들여다본다.
임금과 함께 커진 토큰 소비
2026년 6월 Anthropic이 공개한 Economic Index를 보면 그 방향이 뚜렷하다. 변호사·엔지니어처럼 몸값 높은 직무에서 오간 Claude 대화는, 임금이 낮은 직무의 대화보다 토큰을 최대 2.07배나 더 썼다. 비싼 일일수록 AI도 더 깊고 길게 부린다는 뜻이다.
쓰임새의 결도 갈리기 시작했다. 개인이 쓰는 Claude.ai에서는 사람이 AI와 ‘함께’ 일하는 협업형 사용이 52%로, AI에게 통째로 맡기는 자동화형(45%)을 처음으로 앞질렀다. 반대로 기업이 API로 돌리는 트래픽에서는 여전히 자동화형이 우세했다. 개인은 AI를 곁에 두는 ‘조수’로, 기업은 사람을 대신할 ‘대체 인력’으로 쓰고 있는 셈이다. 또 오래 써 본 사용자일수록 더 값나가는 일을 맡겼고, 성공률도 높았다.
흥미로운 점은, 토큰을 얼마나 쓰느냐가 그 일이 ‘얼마나 어려운가’보다 ‘시장에서 얼마를 받는가’를 따라 움직인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토큰 소비량은 사실상 그 업무의 몸값을 재고 있는 셈이다.
그사이 토큰 값 자체는 곤두박질쳤다. a16z의 LLMflation 분석과 Epoch AI 집계에 따르면, GPT-4급 성능을 기준으로 한 추론 비용은 2023년 100만 토큰당 30달러에서 2026년 0.5달러 안팎까지 떨어졌다.
값이 떨어진 것은 지능 그 자체가 아니다. 인지 노동에 매겨지던 시장 가격이 무너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사람의 업무는 쪼개질 수 없지만 AI는 다르다
고용은 원래 여러 과업을 한 사람 안에 묶어 거래하는 계약이었다. 조사와 초안 작성, 검토, 조율, 설득, 승인, 책임까지 한 사람이 통째로 맡는 구조였다. 이 묶음이 과업 단위로 풀리기 시작했다. 말로 설명하기 쉽고 결과 평가 비용이 낮으며 반복이 잦고 실수로 인한 손실이 작으며 대인 관계가 결과에 크게 영향을 주지 않는 업무일수록 토큰으로 대체되기 쉽다. 반면 데이터나 고객 접점, 의사결정 권한을 가진 사람과 결합해야 가치가 발생하는 업무는 보완재로 남아 생산성이 상승하는 경우가 많다.
한 직업 안에서도 이 두 갈래가 동시에 진행된다. 처음엔 전체 업무의 20%쯤이 토큰으로 넘어가지만, 이 비중이 40%, 60%로 늘다 보면 남은 일만으로는 정규직 한 사람을 온전히 채우기 어려운 순간이 온다. 직업이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 속이 조금씩 비어 가는 것이다.
사람은 필요한 만큼만 0.02명씩 잘라서 고용할 수 없다. 하지만 토큰은 딱 필요한 분량만 불러다 쓸 수 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과거의 자동화와 달리 이제는 노동을 시간 단위·건 단위로 잘게 쪼개어 살 수 있게 됐다.
잉여는 어디로 흘러가는가
토큰으로 생산성이 두 배가 됐다고 해서 임금이 두 배로 오르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 잉여가 근로자, 기업 이익, 소비자 가격, 모델 제공자의 사용료, 반도체와 전력 공급자, 데이터 소유자 중 누구에게 배분되는지는 협상력과 소유 구조에 따라 결정된다. 경영 컨설팅사 가트너는 2026년 말까지 조직 5곳 중 1곳이 중간관리직의 절반 이상을 없앨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기업의 41%가 관리 계층을 줄였다는 집계도 있다. 오라클은 인력의 18%에 해당하는 2만에서 3만 명을, 아마존은 3개월 만에 본사 인력의 약 9%인 1만 6천 명을 감축하며 관리 계층을 우선 줄였다.
한편 반대쪽 끝에서는, 아주 적은 인원이 과거 팀 하나가 내던 산출을 통째로 감당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 글을 쓰는 동안, 곁에 있던 아들이 화면을 힐끗 보더니 물었다.
“어? 메차카멜레온이네?”
아이 입에서 먼저 튀어나올 만큼 화제인 숨바꼭질 게임 Meccha Chameleon 이야기다.
- 만든 사람: 일본 개발자 단 두 명. 개발 기간은 두 달 남짓.
- 판매: 2026년 6월 스팀 출시 뒤 보름여 만에 1,000만 장, 한 달이 안 돼 1,500만 장.
- 확산: 퍼블리셔도 마케팅 예산도 없이 오직 스트리밍 클립 입소문만으로. 피크 동시접속 34만 명.
- 추정 수익: 정가 5달러 안팎, 스팀 수수료를 떼고도 두 사람 몫이 어림잡아 5천만 달러(약 700억 원) 안팎.

Meccha Chameleon 게임 플레이 화면 캡처 (스팀).
토큰은 이렇게 소규모 조직의 생산성을 폭발적으로 끌어올리는 동시에, 대기업이 사람을 늘리지 않고도 통제할 수 있는 범위 역시 넓힌다. 정작 그 사이에 낀 중간 규모 조직과 중간관리층이 가장 큰 압력을 받는다. 반면 모델과 연산, 데이터를 쥔 쪽으로는 이득이 더 뚜렷하게 쏠린다.
2026년 5대 빅테크의 AI 인프라 투자는 약 7,250억 달러로 추정된다. 이 투자는 소수의 모델 제공자, 클라우드 사업자, 반도체 공급자에게 새로운 지대를 만들어주는 구조다. 토큰 자체가 상품화되더라도 병목을 장악한 쪽이 계속 초과이윤을 가져가는 형태가 이어지고 있다.
사람 관리와 닮은 에이전트 관리
AI는 인간의 노동을 대체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정반대의 일이 벌어졌다.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이 소프트웨어보다 싸졌고, AI는 없애는 일자리보다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 내고 있다.
a16z가 공유한 Hebbia CEO 조지 시불카(George Sivulka)의 글은 이 역설을 1840년대 철도 시대에 빗댄다. 철도가 놓이자 수많은 열차와 일정을 조율할 완전히 새로운 ‘관리자’ 계층이 필요했듯, 수백만 에이전트를 부리는 지금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에이전트 인력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사람 조직에서 벌어지던 온갖 비효율이 토큰 단위로 즉시 증폭된다. 그가 꼽은 사람 조직과 에이전트 인력의 일곱 가지 평행점은 이렇다.
- 토큰맥싱(Tokenmaxxing) — 무작정 인원을 늘리는 것과 같다. 토큰을 많이 쓴다고 능사가 아니다.
- 루프(Loops) — 회의가 회의를 부르는 것과 같다. 프롬프트가 불명확하면 에이전트가 스스로를 계속 불러낸다.
- 낭비되는 토큰 — 불필요하게 부풀린 인력(headcount bloat)과 같다.
- 100배의 토큰 — ‘10배 엔지니어’의 다음 버전. 잘 설계된 컨텍스트가 압도적인 레버리지를 만든다.
- 컨텍스트 사재기(Context hoarding) — 자리를 지키려 지식을 감추는 것과 같다. 직원이 자기 노하우를 AI에 넘기지 않으려는 정치적 문제다.
- 평가(Evals) — OKR의 AI 버전. 무엇이 ‘좋은 결과’인지 분명히 정의하는 것이 관리의 핵심이다.
- 전환 기업(Transformation company) — 앞으로 10년의 가장 큰 기회. 기존 기업의 업무 프로세스를 에이전트로 옮겨 담는 일이다.
결국 지능이 싸진 시대의 경쟁력은 토큰을 얼마나 많이 쓰느냐가 아니라, 그 토큰을 얼마나 잘 관리하느냐로 옮겨간다.
AI 혁신과 노동 소득 간의 관계
유럽 정책연구기관 CEPR가 2026년 3월 내놓은 연구는, AI 혁신이 두 배로 늘 때마다 노동소득 비중이 0.5~1.6%씩 낮아진다고 추정했다. 특히 중·고숙련 노동자의 몫이 임금 압축으로 가장 크게 줄어든다고 봤다. 미국의 정보기술혁신재단 ITIF는 이 같은 전망에 반박했다. 과거 자동화 물결에서도 노동소득 비중이 장기적으로 회복된 사례를 근거로 들며, AI가 노동소득 비중이나 세수 기반을 구조적으로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토큰 값이 싸졌다고 해서 AI에 쓰는 돈이 줄지는 않는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2023년 이후 토큰 단가는 90% 넘게 떨어졌지만, 기업의 AI 지출은 오히려 두 배로 늘었다. AI 예산에서 추론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도 2023년 20%에서 2026년 85%까지 뛰었다. 값이 싸질수록 예전엔 엄두도 못 내던 새로운 쓰임새가 계속 열리기 때문이다.
결국 두 기관의 견해가 갈리는 지점은 노동소득 비중이 오르느냐 내리느냐 그 자체가 아니다. AI가 만들어 낸 이득을 노동 쪽이 되돌려 받을 힘, 즉 협상력과 소유권이 얼마나 남아 있느냐다.
계산기는 이미 눌려지고 있다
토큰이 싸질수록 거꾸로 값이 오르는 것은, 토큰으로는 쉽게 복제할 수 없는 ‘통제권’이다. 데이터와 전력, 고객 접점, 유통망, 허가권처럼 병목으로 남는 자산이 여기에 해당한다.
극단적으로 보면, 앞으로 임금은 그 일이 얼마나 중요하고 책임이 무거운가보다 그 일을 토큰으로 얼마나 쉽게 대신할 수 있는가와 협상력에 따라 갈릴 수 있다. 판단과 책임이 따르는 일이라도 절차가 표준화되면 값이 떨어질 수 있고, 특별한 창의성이 없더라도 길목(접점)을 쥐고 있으면 오히려 값이 오를 수 있다.
토큰이 만들어 낸 이득을 ‘소유한’ 쪽과, 그 이득을 임금으로만 받는 쪽 사이에 새로운 격차가 벌어지고 있다. 지능을 한 번 더 쓰는 값이 이렇게 싸질 때 노동과 자본의 균형이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는, 토큰의 성능보다 ‘그렇게 생긴 이득이 결국 누구 주머니로 들어가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 저울질은 이미 시작됐다.

AI 전문가 매칭 기업 머코(Mercor)의 CEO 브렌던 푸디는 2026년 6월, 회사가 정규직 급여보다 내부 에이전트의 토큰 비용에 더 많은 돈을 쓰고 있다고 밝혔다.
지능을 부리는 값이 정규직을 고용하는 값을 넘어선 것이다. AI를 뼈대로 삼은 기업에서는 추론 비용이 이제 단순한 IT 경비가 아니라 새로운 형태의 인건비이자 생산원가가 되고 있다.
토큰이 일상적인 생산 수단이 될수록, 병목을 쥔 쪽과 그렇지 못한 쪽의 격차는 점점 더 구조적으로 굳어 간다. 그 격차를 어디서 어떻게 다룰지 지금부터 사회가 함께 준비하지 않으면, 계산기는 늘 사람보다 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