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칼라 위기는 신입부터 온다

화이트칼라 고용의 변화는 대규모 해고보다 신입 채용 감소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에서 22~25세 고용은 2022~2025년 13% 줄었다. 최근 대졸자 실업률도 5.6%로 전체 실업률 4.2%보다 높다. 경력자의 임금은 오르지만 신입이 경력을 쌓을 입구는 좁아지는 모습이다. 물론 청년 고용 부진을 모두 AI 탓으로 볼 수는 없다.

이 변화가 경기 침체 때문이라면 금리 인하나 재정 지출로 대응한다. 하지만 기업이 특정 숙련 자체를 더는 원하지 않는다면 수요를 늘리는 것만으로 채용을 되살리기 어렵다.

UBI(기본소득)는 이런 문제를 주로 소득 손실로 본다. 그러나 직장은 월급만 주지 않는다. 사회심리학자 마리 야호다는 일에 다음이 담겨 있다고 봤다.

  • 시간표
  • 인간관계
  • 공동의 목적
  • 사회적 지위
  • 꾸준히 움직일 이유

2023년 메타분석에서는 임금과 이런 기능들이 정신건강 차이의 19%를 차지했다.


현금으로 살 수 없는 것

특히 지위와 통제감은 돈만으로 대체하기 어렵다. 영국 공무원을 추적한 Whitehall II 연구에서는 고용과 의료 접근성이 보장된 사람들 사이에서도 직급에 따라 건강 격차가 나타났다. 업무 통제감이 낮을수록 관상동맥질환 위험도 높았다.

낮은 계단에 선 사람이 동전을 쥐고 높은 선반 위로 던지지만 동전이 닿지 못하고 바닥에 흩어진다

OpenResearch는 성인 1,000명에게 3년 동안 매달 1,000달러를 지급했다. 참가자들은 서두르지 않고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을 여유를 얻었다. 소비와 의료 이용도 늘었다. 하지만 정신건강 개선은 첫해 이후 약해졌고 신체건강에는 뚜렷한 변화가 없었다.

알래스카 영구기금 배당을 분석한 연구에서는 전체 고용이 줄지 않았다. UBI 때문에 사람들이 일을 포기할 것이라는 우려는 과장됐다. 일자리를 잃은 뒤 남는 공백이 근로 의욕보다 크다. 독일의 장기 추적 연구에서는 재취업한 뒤에도 삶의 만족도가 실직 전 수준으로 완전히 회복되지 않았다.


일이 사라지면 더 행복할까

그렇다고 모든 직업이 삶을 낫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호주 가구를 추적한 연구에서 실업자가 통제감이 낮고 고용이 불안정한 일자리로 옮기자 계속 실업 상태였던 사람보다 정신건강이 더 나빠졌다. 일의 유무보다 일의 질과 재량권이 더 중요했다.

직후에는 행복해진다

일이 줄어든 직후에는 오히려 행복해진다. 2000~2015년 미국 젊은 남성들은 노동시간이 줄면서 여가를 더 즐겼고 스스로 보고한 행복도도 높아졌다. 출근과 스트레스가 줄어든 효과다.

시간이 지나면 비용이 나타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다른 비용이 나타난다. 중국산 수입 증가로 일자리가 줄어든 미국 지역에서는 결혼과 출산이 감소하고 남성의 유휴화와 조기 사망이 늘었다. 조기 은퇴 역시 60대 초반의 인지능력 저하와 관련이 있었다. 당장의 여유와 장기적인 고립은 동시에 존재한다.

재교육도 만능은 아니다. 새 기술을 배운다고 곧바로 일자리와 역할이 생기지는 않는다. 특히 사무직 자동화는 학위와 자격증이 보증하던 전문성까지 흔든다. 교육 과정의 수를 늘리는 일보다 배운 능력을 실제로 쓰고 책임질 자리를 만드는 일이 더 필요하다.


배당 다음에 필요한 것

자동화 시대에는 일자리가 제공하던 기능을 나눠서 설계해야 한다. 생계는 현금으로 보완한다. 그러나 일정과 관계, 목적과 지위는 통장에 넣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책임을 맡기고 그 결과를 기다리는 조직과 공동체가 필요하다.

자원봉사나 취미 모임도 도움이 되지만 참여하지 않아도 아무도 곤란하지 않다면 역할감은 약해진다. 반대로 한 사람이 빠졌을 때 다른 사람의 일과 생활에 차질이 생긴다면 그 자리는 실제 책임을 만든다. 프로그램의 이름이나 콘텐츠가 아니라 상호 의존성과 판단권이 관건이다.

지역 돌봄, 환경 관리, 교육 보조, 공공 데이터 정비처럼 범위가 작고 결과가 확인되는 분야에서 이런 자리를 만든다. 담당자와 기한을 정하고 수행자에게 실제 결정권을 주는 방식이다. 현금으로 지위는 살 수 없지만 예산으로 책임 있는 역할은 운영한다.

자동화 이후 정말 부족해질 것은 여가가 아니라 특정한 사람의 판단과 참여를 기다리는 자리다.

그래서 UBI는 완성된 사회 모델이 아니라 소득 정책에 가깝다. AI 지분 배당이나 보편적 기본 컴퓨트도 나누는 자원의 종류만 다를 뿐이다. 생계를 보장하는 논의는 필요하지만 그 자리까지 저절로 생기지는 않는다.


#노동시장#자동화#AI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