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지식 노동의 생산성을 높이는 과정에서, 그 노동을 시장에서 대체하는 데 드는 비용을 동시에 낮추고 있다. 대학 졸업과 사무 업무 능력을 통해 안정적인 소득을 확보할 수 있었던 중산층 화이트칼라의 위치는, AI 도구의 확산으로 인해 과거와 다른 압력을 받기 시작했다. 이 변화의 본질은 특정 직업의 소멸 여부가 아니라, 임금 청구권만으로 유지되던 소득 구조의 경제적 기반이 서서히 약화되는 데 있다. 회사가 노동자에게 월급을 지급하는 근거가 교체비용에 있다면, 그 비용이 낮아질 때 소득 안정성의 조건 자체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이 변화의 본질은 특정 직업의 소멸 여부가 아니라, 임금 청구권만으로 유지되던 소득 구조의 경제적 기반이 서서히 약화되는 데 있다.

월급은 어디서 나오는가

월급은 기업이 특정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노동력을 시장에서 다시 조달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기준으로 결정된다. 그 자리를 메우기 위해 경쟁해야 하는 다른 노동자에게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 곧 교체비용이다. 이 비용이 높을수록 노동자는 임금이나 근로조건에서 협상력을 가질 수 있고, 비용이 낮아지면 기업은 임금을 억제하거나 인력을 줄이는 결정을 내리기 쉬워진다. AI가 지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안을 제공하면 과거에 높게 형성됐던 교체비용이 하락하는 압력이 커진다.

미국에서 노동소득이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수십 년에 걸쳐 하락해 왔다. 2025년 3분기 노동소득분배율은 53.8%로, 1947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1947년에는 이 비중이 70%에 달했으므로, 약 78년 동안 16%포인트가량이 노동에서 자본 수익 쪽으로 이동한 결과다. Fortune과 American Prospect가 이 수치를 보도했을 때 대중의 반응이 크지 않았던 것은 변화가 급격한 충격이 아니라 오랜 기간에 걸쳐 서서히 진행됐기 때문이다.

생산성과 노동자 임금 사이의 괴리도 1979년 이후 계속 확대됐다. Economic Policy Institute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생산성은 이 기간 동안 꾸준히 상승했으나 대다수 노동자의 중위 임금은 생산성 증가 속도를 따라가지 못했다. 중위 임금이 생산성과 같은 비율로 상승했다면 현재 수준보다 43% 정도 높았을 것으로 추산된다. AI가 업무 자동화와 증강에 활용되면서 생산량 자체는 증가할 수 있지만, 개별 노동의 한계 생산물이 시장에서 평가받는 가격은 낮아지는 경향이 나타난다. 이 구조에서 실질 임금이 정체되거나 신규 채용이 줄어드는 현상이 동시에 발생하면, 중간 직급에 있는 직장인들의 고용 불안은 노동과 자본 간 분배 비율의 장기적 이동과 직접 연결된다.

두 번째 인클로저

18세기 영국 의회는 2천 건이 넘는 인클로저법을 통과시켰다. 이 법률들은 300만 에이커 이상의 공유지를 사유지로 전환하는 데 사용됐다. 이전에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었던 땅에서 가축을 기르고 농사를 짓던 소규모 자영농들은 토지를 잃었고, 도시로 이동해 임금 노동자가 됐다. 역사학자 제인 험프리스는 이 과정을 산업혁명에 필요한 토지 없는 노동력을 공급한 메커니즘으로 설명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안정적인 중산층 소득의 기반이 된 화이트칼라 지식노동도 유사한 특성을 가졌다. 대학 교육과 사무 업무 능력을 갖추면 비교적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는 영역으로 여겨졌다. AI 도구가 확산되면서 이 영역에서 발생하는 생산물과 잉여의 배분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같은 업무를 더 적은 인원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되면, 절감된 인건비는 그 업무를 수행하던 노동자가 아니라 AI 모델과 시스템을 소유한 주체에게 귀속되는 구조가 나타난다.

노동소득분배율이 2025년 3분기 53.8%까지 하락한 것은 이러한 배분 변화의 결과로 볼 수 있다. 과거에는 지식 노동자가 직접 수행하던 업무의 상당 부분이 AI로 대체되거나 보조되면서, 줄어든 노동 수요가 임금 수준에 반영되고 있다. “AI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하면 된다”는 조언은 개인 차원에서는 생산성을 높일 수 있지만, 전체적인 소득 분배 구조에서는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다. 게임의 규칙이 토지 소유 여부로 바뀌었던 역사적 인클로저와 마찬가지로, 현재의 변화도 도구 소유 여부가 소득 배분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는 방향으로 진행되고 있다.

쓸수록 가벼워지는 몸값

사회학자 해리 브레이버먼은 1974년 저작 『노동과 독점자본』에서 자본주의 노동 과정의 주요 특징을 구상과 실행의 분리로 분석했다. 일을 기획하고 설계하는 부분은 경영이나 기계 쪽으로 집중되고, 노동자에게는 세분화된 실행 업무만 남는 구조다. 이러한 분리는 훈련 비용을 낮추고 노동자 간 교체를 쉽게 만드는 데 기여했다.

AI에 업무를 위임하는 과정은 이 분리를 노동자 스스로 실행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특정 업무를 AI에게 맡길 때마다 그 업무에 포함된 판단 기준이나 문제 해결의 맥락이 프롬프트와 결과물 형태로 도구에 기록된다. 업무 결과는 생산되지만, 그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판단력과 경험은 점차 도구 쪽으로 이전된다.

업무 결과는 생산되지만, 그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판단력과 경험은 점차 도구 쪽으로 이전된다.

숙련이 자산으로 기능할지 여부는 그 숙련이 어디에 축적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판단과 노하우가 개인의 경험으로 남아 있으면 협상력의 기반이 되지만, 동일한 내용이 회사 시스템이나 AI 모델에 저장되면 노동자는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교체 가능한 인력으로 위치하게 된다. 그렇다고 이게 누군가의 의도적인 설계라고 보기도 어렵다. AI 활용도가 높아질수록 단기 생산성은 상승할 수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자신의 업무 지식이 외부 도구에 의존하는 비중이 커지는 결과를 가져온다.

학벌이 못 막는 선

교육 수준이 새로운 계층 구분의 주요 기준이 되지는 않는다. PwC가 6개 대륙의 직무 공고 약 10억 건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AI 역량을 보유한 노동자의 임금 프리미엄은 1년 만에 56%로 상승했고 다음 해에는 62%에 이르렀다. 명문대 졸업 여부보다 AI 도구를 활용할 수 있는지가 임금 수준을 가르는 요인으로 부상하고 있다.

AI 노출도가 높은 산업에서는 생산성과 매출 성장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해당 산업의 연간 생산성 증가율은 7%에서 27% 수준으로 상승했고, 종업원 1인당 매출 증가율은 AI 노출도가 낮은 산업의 3배에 달했다. 그러나 이 생산성 향상으로 발생한 잉여의 대부분은 AI 역량을 갖춘 노동자에게 임금 형태로 분배되지 않고 산업 자본 쪽으로 귀속되는 경향을 보인다. AI를 능숙하게 다루는 노동자라 하더라도 도구와 모델의 소유권을 갖지 않으면 여전히 월급에 의존하는 위치에 머무른다.

학위가 노동 시장에서 갖는 신호 기능도 약화되고 있다. 경제학자 마이클 스펜스는 학위의 가치가 취득하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점에서 나온다고 보았다. 사회학자 랜들 콜린스가 지적한 크리덴셜 인플레이션처럼, 동일한 신호를 더 많은 사람이 발신하면 그 변별력은 떨어진다. AI가 일정 수준 이상의 산출물을 쉽게 생성할 수 있게 하면서, 과거 졸업장이 증명하던 인지 능력의 신호 가치는 희석되는 중이다. 이미 인맥·판단력·자본 접근성을 갖춘 집단이 AI 활용 능력까지 먼저 확보하면서, 기존의 소득·자산 격차가 새로운 기술 역량 차이와 결합되는 양상이 나타난다.

천천히 녹는 졸업장

자동화의 위험은 주로 특정 직업이 완전히 사라지는지 여부로 측정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앤트로픽이 2026년 1월 발표한 경제지수 사용 데이터에 따르면, AI 활용은 인간 업무를 보조하는 증강 형태가 약 52%, 업무를 대체하는 자동화 형태가 약 45%로 나타났으며, 자동화 비중은 서서히 증가하는 추세다. 한 번에 대규모 해고가 발생하는 대신, 한 사람이 담당하던 업무의 일부가 점차 AI 도구로 이전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이러한 점진적 변화는 위험을 인식하기 어렵게 만든다. 직업 자체가 사라지면 명확한 위기로 받아들여지지만, 월급 수준은 유지된 채 그 월급을 뒷받침하던 교체비용과 협상력이 낮아지는 경우에는 위기감이 잘 생기지 않는다. 이게 사실 더 무서운 지점이다. 동일한 직책에 머무르면서도 수행 업무의 상당 부분이 도구에 의존하게 되면, 고용 형태의 안정성은 유지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기반은 약화되는 상황이 발생한다.

전통적으로 안정적 고용의 기준으로 여겨지던 회사 소속 여부도 점차 의미가 약해지고 있다. 기업이 특정 업무를 AI 도구로 대체할 수 있게 되면, 그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의 위치는 회사 내 지위보다 해당 업무에 대한 소유권이나 대체 불가능성에 더 크게 좌우된다. AI로 인한 생산성 변화와 분배 구조 이동이 급격한 사건이 아니라 장기 추세로 나타나기 때문에, 변화의 한가운데 있는 사람들은 그 영향을 비교적 늦게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

월급의 종착지

회사가 특정 직무에 대해 현재 수준의 월급을 지급하는 근거는 그 직무를 수행할 수 있는 노동력을 시장에서 다시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다. AI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대안을 낮은 비용으로 제공하면, 과거에 형성됐던 교체비용이 하락하면서 동일한 노동에 대해 동일한 임금을 유지해야 할 경제적 이유도 약해진다. 이 변화는 단순히 일자리 수가 줄어드는 문제가 아니라, 임금 청구권만으로 중산층 소득을 유지하던 구조 자체가 흔들리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월급을 저축하는 목적도 이러한 구조 변화에 따라 달라진다. 토마 피케티가 분석한 바에 따르면 자본수익률이 경제 성장률을 상회할 때 부와 소득은 자본 소유자에게 집중되며, 자본소득의 분포는 노동소득보다 불평등한 경향을 보인다. AI가 노동 과정을 자본(모델과 도구)으로 대체하는 방식으로 작동하면서 이 격차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 이 분석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따라서 월급을 단순히 축적하는 행위는 자본 수익이 노동 수익보다 유리한 구조에서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머무르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는 저축과 자산 형성의 방향이 고용 안정성 확보에서 자동화로 인해 발생하는 가치에 대한 청구권 확보 쪽으로 이동하게 된다. 기업이 AI 도구를 활용해 창출한 잉여의 일부를 지분, 지적재산권, 또는 기타 자산 형태로 소유하지 않는 한, 노동자는 여전히 임금 수준에 크게 의존하는 위치에 남게 된다. AI 활용 능력이 생산성을 높이는 데 기여할 수는 있지만, 그 생산성에서 발생하는 가치의 배분은 도구와 모델의 소유 여부에 더 크게 좌우되는 구조로 변화하고 있다.

AI 시대에 중산층의 위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어떤 회사에 속해 있느냐’에서 ‘자신이 기여한 가치 중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결국 AI 시대에 중산층의 위치를 결정하는 핵심 변수는 ‘어떤 회사에 속해 있느냐’에서 ‘자신이 기여한 가치 중 무엇을 소유하고 있느냐’로 이동하고 있다. AI가 만들어내는 생산성과 잉여가 계속 커지는 상황에서, 그 일부라도 자본이나 자산 형태로 확보하지 못한다면 임금 소득에만 의존하는 구조는 점점 더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지금은 아직 그 변화가 완만하게 진행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교체비용과 신호 가치, 분배 비율이 동시에 움직이는 추세가 지속된다면 중간에 위치한 사람들일수록 그 영향을 늦게, 그리고 더 크게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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