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용 소프트웨어 시장에서는 사용자 계정이 오랫동안 가격과 성장의 기준이었다. 이제 구매자는 도구를 얼마나 많이 배치했는지보다 실제 운영에서 어떤 결과가 처리됐는지를 따지기 시작했다.
치과 진료실에서 찾은 문제
Lassie 공동창업자 Steijn Pelle은 제품을 만들기 전, 자신이 다니던 치과의 원장 진료실에서 직접 수납 업무를 했다. 보험사마다 다른 양식과 화면, 매뉴얼에 없는 처리 순서를 겪으며 자동화할 일의 범위를 찾았다. 현장에서 결제를 처리한 경험이 제품의 출발점이었다.
현장에서 본 것처럼, 치과 보험 청구는 이미 전산화됐지만 입금 뒤의 일은 여전히 사람 몫이다. 송금 내역을 환자와 청구 건에 맞추고 장부에 반영해야 한다. 미국 치과 업계는 2024년 행정 거래에 66억 달러를 썼고 이 가운데 19억 달러는 자동화로 줄일 수 있는 비용으로 추산됐다. 비용은 주로 의료 제공자가 부담한다.
보험과 인력 문제가 함께 커지는 상황에서 단순 보조 도구로 충분할까. 입금 확인부터 장부 처리까지 맡고 자료가 맞지 않는 건만 직원에게 넘겨야 한다. 그래서 Lassie의 가치도 시간 절약에 그치지 않는다. 누락, 거부, 과소 지급된 보험금을 찾아 회수한다.
AI의 경쟁자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직원이다
기존 소프트웨어는 직원이 쓸 도구를 팔았다. AI 에이전트는 직원이 하던 일을 판다. 구매자가 따지는 기준도 기능 수나 계정 수가 아니라 넘겨받는 업무량이다. 비교 대상은 라이선스 비용인가. 인건비다.
실제로 Lassie는 49개 주 700여 진료소에 연간 25만 시간의 노동을 제공하며 연환산 매출(최근 실적을 1년 치로 환산한 매출) 1,000만 달러 이상을 올린다. 계산하면 시간당 최소 40달러, 진료소당 월 30시간꼴이다. 공개된 매출과 제공 시간을 보면 가격표가 좌석보다 노동시간에 가깝다. 과금액도 사용자 수가 아니라 청구량과 업무 난도에 따라 늘어난다. 이런 사용량, 워크플로 기반 과금은 IT 예산보다 큰 인건비 시장을 겨냥한다.
다만 노동을 판다고 바로 소프트웨어 수준의 이익률이 생기지는 않는다. 장부 전기(거래 내용을 장부 계정에 옮겨 적는 일)의 98%를 자동화해도 까다로운 포털과 예외는 나머지 2%에 몰린다. 사람이 확인할 예외가 고객과 함께 늘면 운영비도 커진다. 회계와 보험금, 환자 잔액에 영향을 주는 만큼 AI가 언제 작업을 중단해야 하는지도 중요하다.
진입장벽은 예외에서 생긴다
범용 모델의 발전만으로 이 일을 안정적으로 끝낼 수 있을까. 아직은 어렵다. 실제 운영체제와 앱을 다루는 OSWorld에서 사람의 성공률은 72.36%였지만 Agent-S는 20.58%였다. GUI 에이전트는 화면 인식과 여러 프로그램을 오가는 작업에 여전히 약하다. 화면 변경이나 CAPTCHA가 끼면 실패를 알아차리고 복구해야 한다.
게다가 진료관리시스템도 제각각이다.
| 시스템 | 개방 정도 |
|---|---|
| Open Dental | 데이터베이스와 API가 비교적 열려 있다 |
| Dentrix | 공식 모듈과 제휴 범위 안에서 연결된다 |
| Eaglesoft | 더 폐쇄적이다 |
시스템별 이전 비용도 크게 다르다. 전자자금이체를 쓰는 진료소는 1~2주면 도입할 수 있지만 종이 수표를 쓰면 최대 8주가 걸린다.
결국 경쟁력은 표준 업무보다 폐쇄형 시스템과 오래된 지급 절차를 처리한 경험에서 나온다. 예외와 실패 기록 자체가 진입장벽이 된다. 판매 단계에서도 업종 특성을 탄다. IT 부서가 없는 독립 진료소에서는 기술 설명보다 이웃 원장의 추천이 잘 통한다. 경쟁 상대 역시 AI 스타트업뿐 아니라 eAssist 같은 대행사와 Waystar, Planet DDS 같은 기존 업체까지 포함한다.
AI가 노릴 다음 인건비 시장
이런 시장을 두고 버티컬 AI(특정 산업에 특화된 AI) 지출은 2024년 12억 달러에서 2025년 35억 달러로 약 세 배 늘었다. 헬스케어가 15억 달러로 가장 컸다. 기존 소프트웨어 도입이 느렸던 산업에서 채택이 강했다. 수작업이 많고 행정 인력이 부족할수록 AI가 대신할 노동도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배포 사례에서 에이전트라고 부를 만한 비중은 아직 낮다. 배포 사례 중 에이전트로 볼 만한 비중은 기업 16%, 스타트업 27%였다. Lassie의 700여 고객도 미국 치과 진료소 약 13만5,000곳의 0.5%에 불과하다.
그렇다면 다음 기회는 어디에 있을까. 치과와 조건이 비슷한 산업이다. 제3자가 돈을 지급하고 오래된 시스템이 기록의 원본이며 IT 조직이 없는 현업 담당자가 구매하는 시장이다. 건설, 부동산 관리의 백오피스에 AI 기업이 몰리는 흐름도 같은 이유로 설명할 수 있다.
물론 모델이 발전하면 화면 조작이나 복잡한 분기 설계의 가치는 낮아질 수 있다. 법률 AI 기업 Harvey가 특화 모델을 중단했다가 2026년 다시 법률 파운데이션 모델(광범위한 데이터로 학습해 여러 작업의 기반이 되는 모델) 개발에 나선 사례처럼 모델과 워크플로의 경계도 계속 바뀐다.
그래도 예외를 처리하고 잘못 건드린 장부를 복구하고 결과에 책임지는 일은 남는다. 범용 모델이 싸지고 좋아질수록 AI 에이전트의 가치는 화면을 대신 클릭하는 능력보다 업무를 끝까지 완수하는 능력에서 나올 것이다.
이 시장에서는 기술 개선이 곧 운영 부담의 감소를 뜻하지 않는다. 자동화 범위가 넓어질수록 기업이 직접 떠안는 판단과 책임의 범위도 함께 넓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