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보고와 조정의 상당 부분을 맡기 시작하면서 조직의 층을 줄이려는 기업이 늘고 있다. 전달 속도가 빨라지면서 무엇을 알리고 누가 개입할지를 정하는 문제가 남는다.
조직도는 왜 생겼을까
최초의 근대적 조직도는 권력을 과시하려고 만든 그림이 아니었다. 1855년 뉴욕 앤드 이리 철도의 총감독 대니얼 매컬럼과 제도사 조지 홀트 헨쇼는 500마일에 이르는 철도망의 보고 체계를 도표로 정리했다. 전신 덕분에 현장 소식은 빨라졌지만 누가 어떤 순서로 처리할지는 여전히 불분명했다. 철도에서는 이런 혼선이 곧 사망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조직의 여러 층은 인간의 한계를 보완했다. 한 관리자가 모든 정보를 직접 다룰 수 없으니 중간관리자가 내용을 추리고 전달했다. 실제로 경영학자 헨리 민츠버그의 연구에서 관리자 활동의 절반은 9분을 넘지 않았고, 전화 통화는 평균 6분이었다. 관리자의 일이 깊이 숙고하는 것이었을까. 정보를 받고 분류해 필요한 곳으로 보내는 데 가까웠다.
AI는 이 중계 업무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실제로 결제 기업 Block은 2026년 2월 직원 약 4,000명, 전체의 40%를 줄였다. Block의 CEO 잭 도시는 작은 팀도 회사의 도구를 활용하면 더 많은 일을 잘할 수 있다고 말했다. AI가 조직의 처리량을 높이면서 사람을 여러 층으로 배치해야 할 이유가 줄었다.
관리자를 없애면 정보는 어디로 갈까
중간관리자는 수많은 사건 가운데 상급자가 알아야 할 것만 고르고 나머지는 버린다. 정보를 그대로 전달하지 않는 이 과정에는 업무에 대한 이해와 위험 판단이 필요하다.
따라서 계층을 줄인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순차적으로 승인을 거치는 위계 조직에서는 결재자 한 명이 반대하면 제안이 중간에 걸러지고, 여러 사람이 동시에 검토하는 병렬 조직에서는 한 명만 동의해도 통과되기 때문이다. 조직 계층을 줄인다고 오류가 사라질까. 그 일은 오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오류를 감수할지 정하는 일이다.
자율 경영도 이 필터를 대신하지 못하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 온라인 신발, 의류 쇼핑몰 자포스는 홀라크라시(권한과 역할을 자율 조직에 분산하는 경영 체계)를 전면 도입한 뒤 직원의 18%인 약 260명이 퇴사했다. 같은 맥락에서 스포티파이의 자율 스쿼드 체계에도 처음부터 프로덕트 오너와 챕터 리드 같은 관리 조직이 있었다. 승인 단계를 없애도 조정할 일까지 사라지지는 않기 때문이다.
필터가 사라지면 직원이 원본 정보를 직접 감당해야 한다. 실제로 Microsoft 조사에서 알림을 가장 많이 받는 상위 20% 직장인은 하루 24시간 동안 평균 275번의 방해를 받았고, 핵심 근무시간 기준으로는 약 2분마다 회의, 이메일, 채팅에 끊겼다. 관리자만 줄이고 정보 접근을 넓히면 결국 모든 직원이 걸러지지 않은 정보를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AI가 보지 못하는 조직
기업용 AI는 티켓(업무 요청, 장애, 이슈를 기록한 항목), 문서, 메시지 같은 데이터를 읽고 회사의 상태를 파악한다. 문제는 회사의 모든 일이 기록되지는 않는다는 데 있다.
고객의 불만이 계약 조건이 아니라 관계에서 비롯됐다는 판단, 팀의 피로가 위험 수준에 이르렀다는 감각은 데이터로 남기기 어렵다. 사람은 이런 암묵적인 신호를 읽지만, 입력되지 않은 사정을 AI가 어떻게 고려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무엇을 측정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직원의 행동도 달라진다. 직원은 정말 중요한 일보다 티켓으로 남기기 쉬운 일을 먼저 처리할 수 있다. AI는 그렇게 왜곡된 기록을 다시 회사의 실제 모습으로 받아들인다. 사람의 보고에는 무엇을 뺄지 판단한 주체가 있지만 자동 수집에서 빠진 정보에는 책임질 주체조차 없다.
여기에 결정에 여러 AI 에이전트까지 얽히면 책임 소재도 흐려진다. 많은 사람이 결과에 관여할수록 누구의 책임인지 가리기 어려워지는 ‘다수의 손’ 문제가 더 복잡해진다. 이런 가운데 가트너는 비용과 불분명한 사업 가치, 부족한 위험 통제를 이유로 2027년 말까지 에이전틱 AI 프로젝트의 40% 이상이 취소될 것으로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아니오’라고 말할 사람
조직도의 선은 정보가 오가는 길인 동시에 권한과 책임의 경계였다. AI는 정보를 모으고 전달할 수 있지만 중요한 결정을 중단시킬 정당성까지 스스로 얻지는 못한다.
그래서 유럽연합 AI법 14조도 고위험 AI를 사람이 감독하도록 요구한다. 감독자는 시스템의 출력을 무시하거나 뒤집을 수 있어야 하며 필요하면 작동을 중단시킬 권한도 가져야 한다. 이 조항은 부속서 III 해당 시스템에는 2027년 12월 2일부터, 부속서 I 해당 시스템에는 2028년 8월 2일부터 적용된다.
조직을 줄인 Block 역시 위계를 없애지는 않았다. 2025년 관리자 80명을 내보내고 193명을 실무자로 전환하면서도 다섯 단계의 조직 구조는 유지했다. 특정 과업을 책임지는 최종 책임자(DRI)에게는 자원 배분과 결정 권한을 줬다.
결국 앞으로의 조직도에는 보고 순서보다 복구 경로가 중요해질 것이다. 누가 결정을 승인하고 문제가 생기면 누가 몇 시간 안에 취소할 수 있는지를 보여줘야 한다. 되돌리기 쉬운 일은 AI에 맡기고 법률, 안전, 대규모 자금처럼 복구하기 어려운 일에는 사람의 승인을 남기는 방식이다.
조직 계층이 줄어들수록 판단의 책임은 더 적은 사람에게 집중된다.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보를 빨리 전달하는 능력만이 아니다. 불완전한 정보 상태에서도 스스로 판단해 실행을 중단시킬 권한, 그리고 그 결정에 책임지는 자세다.
조직의 구조는 평상시보다 예외 상황에서 더 분명해진다. 자동화된 판단이 예상과 다를 때, 그 상황을 해석하고 결과를 감당하는 사람이 곧 실제 조직도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