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상담원이 사람보다 나은 결과 내는 이유

사람이라는 사실은 생물학적 구분일 뿐, 실력을 보증하지 않는다. 필리핀 작가 호세 달리사이는 《필리핀 스타》 칼럼에서 선한 사람도 글을 못 쓸 수 있고, 잔인한 사람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를 근거로 그는 “인간이 언제나 더 낫다”는 믿음을 부정한다.

AI가 넘어야 할 기준도 셰익스피어나 반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은 아니다. 대다수 직장인이 쓰는 업무용 편지보다 나은 글을 작성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시장이 생긴다.

‘영혼’이나 ‘인간 특유의 손길’도 일상적인 업무에서는 모호한 기준이다. 달리사이는 고객센터에 사람을 연결해 달라고 요청했을 때 과연 그런 인간미를 느껴 본 적이 있느냐고 묻는다. 상담원이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배려 깊고 정확한 응대가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소비자들이 AI 상담을 선호하는 것은 아니다. 미국 소비자 조사에서 응답자의 79%는 AI보다 인간 상담원을 선호했다. 61%는 사람이 자신의 요구를 더 잘 이해한다고 답했고, 52%는 인간과의 상담이 덜 답답하다고 평가했다. 별도로 진행된 6,000명 규모의 조사에서도 응답자의 29%가 챗봇과의 대화를 ‘오랜 대기’에 이어 두 번째로 답답한 고객 서비스 경험으로 꼽았다.

다만 두 가지는 구분해야 한다. 소비자가 사람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것과 실제로 개별 상담원이 AI보다 더 나은 결과를 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Claude가 번 550만 달러와 작가의 연봉

AI가 가장 먼저 대체하는 글은 천재의 소설이 아니다. 비슷한 내용을 반복하는 설득문과 공문이다.

시카고대 연구진은 한 와인 판매업체의 뉴스레터를 인간, AI, 인간과 AI의 협업 방식으로 작성한 뒤 구매율과 이익을 비교했다. 세 방식의 성과는 대체로 비슷했다. 단순한 지시만 받은 Claude의 글도 연간 총이익 추정치가 약 550만 달러로, 인간 카피의 500만 달러를 웃돌았다. 작가 세 명의 연봉과 복리후생비 37만5,000달러까지 고려하면 자동화로 절감할 수 있는 비용은 75~90%에 달했다. 고객의 이례적인 항의도 거의 없었다.

AI는 업무용 이메일에서도 강점을 보였다. 41명이 이메일의 전문성을 평가한 연구에서 GPT-4의 글은 평균 56.1%의 선택을 받았다. GPT-3.5는 37.8%, 인간이 쓴 이메일은 6.1%에 그쳤다. 다만 GPT-4의 글은 82.9%가 ‘불필요하게 장황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형식은 능숙하지만, 사람의 검수까지 필요하다는 뜻이다.

연구진은 AI가 특히 글쓰기 능력이 부족한 사람에게 도움이 된다고 분석했다. 전문직 종사자 453명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도 ChatGPT 사용자는 글쓰기에 드는 시간을 평균 40% 줄이면서 결과물의 품질을 18% 높였다. 특히 처음부터 낮은 점수를 받았던 참가자들의 향상 폭이 컸다.

AI는 최고의 글을 넘어서는 것보다 평균 이하의 글을 끌어올리는 데 먼저 쓰이고 있다. 글쓰기 능력의 격차가 줄어들면서 노동시장의 격차도 그 지점부터 좁혀지고 있다.


지원자 71%가 AI로 이력서 쓰는 채용 시장

글을 잘 쓴 지원자가 일을 잘할 것이라는 믿음은 약해지고 있다. 프리랜서 구인 플랫폼 Freelancer.com의 제안서를 분석한 연구에 따르면, ChatGPT가 공개되고 플랫폼에 AI 작성 기능이 도입된 뒤 맞춤형 제안서에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려는 고용주의 의향이 크게 줄었다. 제안서의 완성도 역시 채용 이후의 성과를 제대로 예측하지 못했다. 연구 모형에서는 능력 하위 20%의 고용이 14% 늘어난 반면, 상위 20%의 고용은 19%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지원자만 AI를 쓰는 것도 아니다. 채용 평가 플랫폼 HireVue 조사에서 지원자의 71%가 이력서 작성에 AI를 활용한다고 답했고, 인사 조직의 77%도 채용 업무에 AI를 정기적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제 매끄러운 지원서는 작성자의 능력을 보여 주는 신호라기보다 누구나 갖출 수 있는 기본 형식에 가까워졌다.

이에 따라 채용 현장의 검증 방식도 달라지고 있다. 스타트업은 비기술 직군 지원자에게도 AI를 활용해 간단한 도구나 업무 절차, 분석 결과물을 만들어 보게 한다. 기술 면접에서는 직접 코드를 얼마나 잘 쓰는지보다 AI 에이전트가 만든 코드를 제대로 감독하고 평가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코드와 문서를 만드는 일이 쉬워질수록 인간의 판단은 더 중요해진다. 무엇을 만들 것인지, 결과물을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 어떤 오류만큼은 허용하지 않을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비판적 사고마저 AI에 맡기는 습관은 바로 그 판단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


싱가포르가 양성하는 10만 명의 이중언어자

달리사이가 학생에게 던진 질문은 단순하다. “왜 AI가 아니라 당신을 채용해야 하는가?”

답은 ‘사람이기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 맡은 업무에서 AI보다 꾸준히 더 나은 결과를 낼 수 있어야 한다. AI보다 잘 쓰는 사람에게 글쓰기 능력은 여전히 채용의 근거가 된다. 반면 평범한 업무 문서조차 AI보다 못 쓴다면, 인간미만으로 부족한 실력을 메울 수는 없다.

AI와 성과가 비슷하다면 두 번째 경쟁력은 AI를 언제, 어떻게 사용할지 판단하는 능력이다. 싱가포르는 분야 전문성과 AI 활용 능력을 함께 갖춘 인재상을 ‘AI 이중언어 역량’으로 정의했다. 이를 바탕으로 2029년까지 회계, 법무 등 비기술 직군의 인재 10만 명을 양성할 계획이다. KPMG의 감사 혁신 담당자는 AI 에이전트로 공시자료 추출 시간을 줄였다. 그러나 어디를 조사하고 어떤 위험을 평가할지는 직접 판단했다.

AI와 효과적으로 일하려면 문제를 적절히 나누고, 지시를 구체적으로 내리며, 불완전하거나 잘못된 결과를 가려낼 수 있어야 한다. 무엇을 AI에 맡기고 무엇을 사람의 통제 아래 둘지도 결정해야 한다.

결국 직장인과 창작자, 구직자가 포트폴리오와 면접에서 증명해야 할 것은 두 가지다. 하나는 AI보다 뛰어난 구체적인 결과물이다. 다른 하나는 AI에 판단까지 넘기지 않고, 사용 범위와 검수 기준을 직접 설계했다는 기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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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시장#커리어#자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