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랜서는 줄고 모델은 늘었다

미국 경제학자 로널드 코스는 1937년 이런 질문을 제기했다. 가격으로 생산을 조정할 수 있는데 왜 기업이 필요할까?

시장 거래에는 가격표에 나오지 않는 비용이 든다. 거래 상대를 찾고 조건을 협상하고 계약 이행을 확인해야 한다. 영업비밀을 지키고 분쟁을 해결하는 데도 돈이 든다. 이 비용이 사내에서 업무를 조정하는 비용보다 클 때 기업은 일을 조직 안으로 가져온다. 이것이 코스가 설명한 기업의 탄생 원리다.

AI 에이전트는 이 계산을 바꾸고 있다. 사람 대신 공급자를 찾고 가격을 비교하며 계약과 결제까지 처리하기 때문이다. 탐색과 협상, 조정 비용이 크게 낮아지면 작은 회사도 외부 전문가와 서비스를 그때그때 조합할 수 있다. 큰 조직을 유지해야 할 이유가 줄어든다.

변화는 이미 프리랜서 시장에서 나타난다. 핀테크 기업 Ramp가 2021~2025년 기업 지출을 분석한 결과, 프리랜서 플랫폼 지출 비중은 0.66%에서 0.14%로 줄었고 AI 모델 공급자 비중은 0%에서 약 3%로 늘었다. AI의 영향을 많이 받는 기업은 프리랜서 비용을 줄이며 일부를 AI로 돌렸다. 계약을 쉽게 끝낼 수 있고 성과를 확인하기 쉬운 업무부터 사람이 AI로 대체됐다.

제품 개발도 달라지고 있다. AI 앱 제작 도구 Base44는 직원 8명으로 창업 약 6개월 만에 사용자 25만 명을 모았고 2025년 Wix에 약 8천만 달러에 인수됐다. 이제 실행량이 반드시 직원 수에 비례하지는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기업의 가치가 낮아지는 것은 아니다. 2025년 8월 S&P 500 상위 10개 종목은 전체 시가총액의 약 39%를 차지했다. 조직은 작아질 수 있지만 데이터센터, 결제망, 모델, 고객 접점을 장악한 기업에는 오히려 가치가 몰린다.

마찰이 사라져도 그 마찰을 관리해온 주체의 권한은 남는다. AI가 검색과 문서 작성, 일정 조정 같은 마찰을 줄여도 최종 결정권과 사고 책임, 조직의 기억까지 없애는 것은 아니다.


계약서 밖의 결정권

불완전한 계약이 남긴 공백을 법인의 연속성과 잔여 통제권이 채우는 모습을 시각화한다.

현실의 계약은 앞으로 벌어질 모든 상황을 담을 수 없다. 불완전 계약 이론에 따르면 자산 소유자는 계약에 적히지 않은 상황에서 자산을 어떻게 쓸지 결정한다. 이를 ‘잔여 통제권’이라고 한다. 결국 소유권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의 결정권을 정하는 장치다.

AI는 계약 초안을 만들고 이행 여부를 확인하는 비용을 낮춘다. 하지만 예상 밖의 상황 자체를 없애지는 못한다. 여러 에이전트가 서로 일을 넘기고 외부 도구를 호출할수록 오히려 책임 경로는 복잡해진다. 계약서를 싸게 만들 수 있다고 해서 계약이 완전해지는 것은 아니다.

이 빈자리를 법인이 메운다. 법인은 재산을 보유하고 계약을 맺으며 소송의 주체가 된다. 주주나 직원이 바뀌어도 권리와 의무는 같은 법인에 남는다. 투자금과 설비, 정보, 지식재산권도 장기간 한곳에 묶어 둔다. 일시적으로 구성됐다가 해체되는 에이전트 조합에는 아직 이런 연속성이 없다.

조직의 지식도 문서만으로 옮길 수 없다. 절차는 AI가 빠르게 익힐 수 있지만 오랜 경험에서 나온 판단 기준과 업무 맥락은 복제하기 어렵다. 무엇을 문서화하고 어떤 예외를 허용할지 결정하는 일도 조직에 남는다.

AI는 배상하지 않는다

책임은 더 현실적인 문제다. 한 회사의 에이전트가 다른 회사의 에이전트에 업무를 맡기고 다시 제3자의 도구를 호출했다고 해보자. 오류가 생겼을 때 누가 어떤 결과를 승인했는지 밝히기 어렵다. 지시와 데이터가 제대로 기록되지 않았다면 손해의 원인을 나누기도 힘들다.

피해가 발생하면 시장은 모델의 성능뿐 아니라 누가 배상할 수 있는지를 본다. 기업은 조사에 응하고 보험을 들며 손실을 감당할 자산을 보유한다. AI는 승인 확인과 이상 탐지를 도울 수 있지만 사고의 법적 당사자가 되지는 않는다. 자동 항법 장치가 배를 움직여도 사고 책임은 운영 회사와 관계자에게 돌아가는 것과 같다.

거래비용이 0에 가까워져도 계약 밖의 결정은 남는다. 그 결정에는 이익을 얻을 권리와 손실을 감당할 의무가 함께 붙는다. 현재 제도에서 이 둘을 가장 안정적으로 묶는 장치는 여전히 법인이다.


작은 기업과 더 커지는 독점

AI 시대에는 평균 기업 규모가 작아지는 동시에 일부 대기업이 더 커진다. 실행 업무가 외부 업체와 에이전트로 넘어가도 데이터센터, 결제망, 모델 API, 규제 허가처럼 반드시 거쳐야 할 기반 시설은 소수 기업에 집중되기 때문이다.

AI 시대의 기업가치가 노동 규모보다 필수 관문과 접근 조건의 통제에 붙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이제 기업의 가치는 직원 수보다 ‘문턱’을 누가 관리하느냐에 달려 있다. 고객이 상품을 찾는 화면, 에이전트가 호출하는 API, 거래에 필요한 데이터와 결제수단을 쥔 기업이 조건을 정한다. 플랫폼은 기존의 마찰을 없애는 대신 API 사용료, 호출 제한, 권한 심사, 데이터 이용 조건이라는 새로운 관문을 만든다.

거래량이 늘수록 이 관문의 가치도 커진다. WTO는 AI에 따른 무역비용 감소와 생산성 향상을 반영하면 2040년 세계 무역이 기준 전망보다 34~37% 늘 수 있다고 추산했다. 국경을 넘는 거래가 많아질수록 신원 확인과 규제 준수, 결제를 보증할 조직도 더 중요해진다.

AI를 시험하는 것과 핵심 권한을 맡기는 것은 다르다. 2025년 조사에서 기업의 88%가 적어도 한 기능에 AI를 사용했지만 개별 기능에서 에이전트를 대규모로 운영한 비율은 10% 미만이었다. 도입비용은 낮아졌어도 기업 시스템의 권한을 내주고 결과에 책임지는 비용은 여전히 높다.

따라서 기업가치를 볼 때는 인건비 절감률보다 네 가지를 살펴야 한다.

  • 거래가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점을 통제하는지
  • 데이터와 유통망, 규제 허가처럼 복제하기 어려운 자산이 있는지
  • 사고를 감당할 자본과 보험이 있는지
  • 무엇을 자동화하고 어디까지 개방할지 판단할 조직 역량이 있는지를 봐야 한다

은행의 고객 확인 업무가 좋은 예다. 한 금융기관은 AI로 상업 고객 확인 비용을 40% 줄였다. 하지만 검증 실패로 자금세탁 규정을 어기면 제재를 받고 배상 책임을 지는 주체는 은행이다.

로널드 코스의 이론은 기업과 시장 중 하나가 승리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기업은 내부 조정비용과 시장 거래비용이 균형을 이루는 지점까지 커진다. AI는 양쪽 비용을 모두 바꾼다. 그 결과 평균 팀은 작아지는 반면 데이터 권한과 규제 허가, 결제망, 고객 관계를 가진 기업에는 더 많은 거래가 의존한다. 시가총액은 몇 명을 고용했는가보다 어떤 접근 조건을 결정하는가에 붙는다.


일은 외부로, 책임은 법인으로

AI 이후의 회사를 단순히 ‘시장 거래를 내부 명령으로 바꾸는 조직’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회사는 계약에 없는 상황의 결정권, 사고의 배상 의무, 장기간 축적한 자산과 지식, 평판을 한 법적 주체 아래 묶는다. 사람과 AI 공급자가 바뀌어도 재산과 계약, 책임은 같은 법인에 남는다.

AI가 이 역할까지 맡으려면 성능 향상만으로는 부족하다. 에이전트가 독립적으로 자산을 보유하고 계약하며 자기 재산으로 손해를 배상하고 규제기관의 처분도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뒷받침할 법과 보험 제도가 생기기 전까지 법인은 권한과 책임을 지는 주체로 남는다.

물론 모든 업무가 회사 안에 남는 것은 아니다. 표준화돼 있고 위험이 낮으며 결과를 바로 검증할 수 있는 일은 AI나 외부 시장으로 빠르게 이동한다. 반면 규제, 장기 투자, 브랜드 약속, 큰 사고 위험이 얽힌 업무는 법인 안에 둘 이유가 크다.

이를 ‘잔여 통제권 가설’로 정리할 수 있다. 거래비용이 낮아질수록 기업은 일을 직접 처리하는 조직보다 계약에 담지 못한 권리와 손실을 보유하는 단위에 가까워진다. 예상하지 못한 결정이 자주 발생하고 손해를 개인이나 AI 공급자에게 넘기기 어려우며 자산을 오래 축적해야 할수록 법인의 가치가 커진다.

초소형 기업을 평가할 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핵심 판단을 프롬프트와 모델 호출만으로 복제할 수 있는지, 사고가 나면 누가 어떤 자산과 보험으로 손실을 부담하는지, 고객과 데이터, 규제 허가가 법인에 축적돼 다른 곳으로 옮기기 어렵게 만드는지를 봐야 한다.

마지막 조건까지 갖출수록 적은 인원과 높은 기업가치가 함께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반대로 범용 조정 업무와 단순 중개 기능은 시장과 AI로 넘어가며 가치가 낮아진다.

회사가 남는 이유는 거래비용이 아직 충분히 낮지 않아서만은 아니다. 비용이 사라진 뒤에도 결정과 배상, 그동안 축적한 판단 기준과 경험은 누군가에게 귀속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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