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가 금융 투자 조언을 생성하고 제공하는 사례가 빠르게 늘고 있다. 증권사 리포트, 챗봇 기반 포트폴리오, 자동화된 자산 배분 서비스 등 형태는 다양하지만, 그 조언이 가져오는 결과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상태다. 법적 보호 장치와 실제 위험 부담 사이의 간극은 기술이 발전할수록 더 드러나고 있다.

책임은 투자자에게 있습니다

증권사에서 제공하는 AI 리포트와 챗봇이 생성한 포트폴리오는 법적으로 모두 ‘참고용 정보’로 분류된다. 화면 하단에는 투자 손익이 고객에게 귀속되며 손실 보전 약속은 법적 효력이 없다는 문구가 표시된다. 알고리즘이 내놓은 조언이라도 그 결과에 따른 책임은 애초에 투자자에게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미국에서 정식 등록된 로보어드바이저는 1940년 투자자문업법에 따라 사람 자문가와 동일한 수탁 의무를 진다. 일반 챗봇이나 유사투자자문 형태의 AI 리포트는 이 의무를 적용받지 않고 참고용으로 남는다. 같은 알고리즘이라도 법적 지위에 따라 책임 범위가 달라진다. 2024년 미국 대형주 액티브 펀드의 65%가 S&P 500 지수를 밑돌았고, 15년 기간으로는 약 90%가 지수 수익률을 하회했다. 사람 전문가조차 평균적으로 시장을 지속적으로 이기기 어렵다는 점을 고려하면, AI가 기존 투자 패턴을 학습했다고 해서 구조적으로 우위를 점한다는 보장은 없다. 투자자가 AI 조언을 이용할 때 실제로 지불하는 비용은 초과 수익이 아니라 의사 결정 과정의 편의에 가깝다.

Skin in the game

나심 탈레브는 조언자가 잃을 것이 없을 때 그 조언이 더 위험해진다고 보았다. 이익은 자신이 취하면서 손실은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구조가 문제를 키운다는 것이다. 그는 보수만 받고 실패에 대한 책임이 없는 조언을 경계했다.

이 원리는 고대 함무라비 법전에도 나타난다. 법전 229조는 건축가가 부실하게 지은 집이 무너져 집주인이 사망하면 건축가를 사형에 처한다고 규정했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직접적인 책임을 지도록 한 것이다.

AI 금융 조언에서는 이와 반대되는 구조가 작동한다. 조언이 맞으면 플랫폼은 수수료와 이용자 신뢰를 얻지만, 틀리면 손실은 투자자 계좌에서 발생한다. 조언을 제공하는 쪽에는 손실에 대한 직접적인 부담이 없고, 이용하는 쪽은 무한한 손실 가능성을 감수한다. 이러한 구조가 지속되면 조언은 점점 더 공격적인 방향으로 기울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 당시에도 위험을 만든 주체와 실제 손실을 부담하는 주체가 분리된 점이 문제로 지적됐다. 조언과 결과가 분리된 체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취약성을 키울 수 있다.

조언이 맞으면 플랫폼은 수수료와 이용자 신뢰를 얻지만, 틀리면 손실은 투자자 계좌에서 발생한다.

알고리즘은 죄가 없다

알고리즘에 손실 책임을 돌리는 것은 쉽지 않다. 철학자 안드레아스 마티아스는 2004년 학습하는 기계에는 책임 공백이 발생한다고 정리했다. 만든 사람도 결과를 미리 예측하기 어렵고, 사용하는 사람도 내부 작동을 완전히 통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설계자는 예측 범위를 벗어난 결과라고 주장할 수 있고, 운영자는 시스템 내부 로직을 알지 못한다고 말할 수 있다. 투자자는 전문가의 판단을 따랐을 뿐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 이처럼 각 주체가 책임을 회피할 논리를 갖추면, 전통적인 방식으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 없게 된다.

책임이 분산된 상태에서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면책 조항을 작성하지도 않았고 알고리즘을 설계하지도 않은 투자자가 그 위치에 해당한다. 이들은 정보가 가장 적고 손실을 회수할 수단이 가장 제한적이다. 그런데 이 불편한 구조가 어떻게 지금까지 당연한 것처럼 유지됐는지는 막상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은 결정이 반복되면, 사회가 해당 기술을 신뢰할 근거가 약해질 수 있다.

책임이 분산된 상태에서는 그것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는 사람에게 집중된다.

차라리 내가 할 걸

손실은 계좌에 기록된 숫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와튼 경영대학의 디트보르스트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알고리즘이 한 번이라도 잘못된 판단을 내리면 같은 실수를 한 사람보다 훨씬 빠르게 신뢰를 철회한다. 이를 ‘알고리즘 혐오’라고 부른다.

규범 이론에 따르면, 다른 사람들이 잘 하지 않는 선택이 나쁜 결과로 이어졌을 때 후회가 더 커진다. 자신의 판단으로 돈을 잃은 경우보다 AI 조언을 따라 돈을 잃은 경우가 심리적으로 더 큰 후회를 남기는 이유다. 같은 금액의 손실이라도 그에 따른 심리적 부담은 다를 수 있다.

사람들은 손실 자체를 견디는 것보다 자신이 통제하지 못한 손실을 더 어려워한다. 자신의 판단으로 발생한 손실은 이후 더 나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학습 기회로 남을 수 있다. 반면 AI 조언에 따라 발생한 손실은 조언을 따른 행위 자체에 대한 후회로 이어지기 쉽다. 한 번 알고리즘을 신뢰했다가 손실을 경험한 투자자는 이후 더 비싼 사람 전문가에게 의존하거나 시장에서 아예 벗어나는 선택을 할 수 있다.

결국 감내하는 쪽은?

현재 구조에서 AI 금융 조언의 결과는 투자자가 감내한다. 투자자는 정보가 가장 적고 손실을 회수할 수단이 가장 제한적이며, 심리적 부담까지 추가로 지게 된다. 이러한 결과가 부당한 이유는 AI가 틀리기 때문이 아니다. 인간 전문가도 시장을 평균적으로 이기지 못하며, 어떤 조언이든 빗나갈 수 있다. 부당함의 근원은 조언을 제공하는 쪽과 실제 손실을 부담하는 쪽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부당함의 근원은 조언을 제공하는 쪽과 실제 손실을 부담하는 쪽이 분리되어 있다는 점에 있다.

책임 구조와 별개로, 조언 자체의 가치도 다른 방향에서 흔들리고 있다. 국내외 대형 증권사 대부분이 같은 파운데이션 모델을 기반으로 AI 금융 상품을 내놓고 있다. 같은 모델이 같은 데이터를 학습하면 나오는 조언도 수렴한다. 과거에는 애널리스트마다 다른 판단을 내렸지만, AI는 시장 전체에 같은 방향의 신호를 균질하게 퍼뜨린다. 나만의 알파를 만들어주는 조언이 아니라 모든 투자자가 동시에 받는 공유재에 가까워진다. 적어도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은, 직관적으로는 부정하기 어렵다. 손실을 감수하는 구조는 유지되면서, 그 손실을 감수한 대가로 얻는 차별화된 수익 가능성은 줄어든다.

#Automation#Inequal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