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쓴 한 줄도 기억 못 하는 뇌

Goldman Sachs의 디지털 플랫폼 ‘마키(Marquee)‘를 이끄는 크리스 처치먼은 추론을 AI에 맡길수록 ‘제1원리’(현상을 더 쪼갤 수 없는 근본 전제까지 파고들어 다시 쌓아 올리는 사고법)에서 사고하는 능력이 약해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사람은 직접 문제를 풀고, 근거를 논리로 연결하는 과정에서 판단력을 기른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답뿐 아니라 생각하는 과정 자체까지 AI에 넘기기 시작했다. 길 찾기를 GPS에, 기억을 인쇄물에, 정보 탐색을 검색엔진에 맡긴 데 이어 추론마저 외부 도구에 의존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MIT 미디어랩의 예비 연구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한다. 연구진이 참가자 54명의 뇌파를 측정한 결과, AI로 에세이를 작성한 집단은 검색엔진을 이용하거나 스스로 작성한 집단보다 뇌의 연결성이 약하게 나타났다. 외부 도구의 도움을 많이 받을수록 인지 활동도 줄었다. AI를 사용한 참가자 중 상당수는 글을 제출한 직후에도 자신이 쓴 문장을 한 줄조차 인용하지 못했다. 글은 화면에서 문서로 옮겨졌지만, 머릿속에는 남지 않은 셈이다.

이 문제는 금융회사 같은 전문 조직에서 더욱 중요하다. 주니어 직원은 고객의 가격 요청을 해석하고 직접 계산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지식을 쌓는다. 이런 지식은 문서만 읽어서는 얻기 어렵고, 경험을 통해 체화된다. 해당 과정이 자동화되면 업무 전체를 깊이 이해하는 시니어가 성장하기도 어려워진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모델의 성능만이 아니다. AI 때문에 우리가 매일 어떤 사고와 연습을 건너뛰게 되는지도 살펴야 한다.

한 인지과학 연구자는 강력한 AI가 세 가지 압력을 동시에 키운다고 설명한다. 정신적 에너지를 아끼려는 본능, 전문가처럼 보여야 한다는 성과 압박, 그리고 보이지 않는 동료들과의 생산성 경쟁이다. 이러한 ‘AI 중력’ 아래에서는 한 번의 위임이 다음 위임으로 이어지기 쉽다. 모델의 성능이 좋아질수록 일을 맡기기는 더 쉬워진다. 그만큼 개인의 숙련과 조직의 암묵지는 더 빠르게 약해질 수 있다. 이것이 금융 애널리스트 출신의 한 논평가가 제시한 비관적 시나리오다.


전투기 조종사와 버스 운전사, 10년 뒤 당신의 역량은?

그는 처치먼의 ‘전투기 조종사와 버스 운전사’ 비유를 10년 뒤의 역량 차이로 해석했다. 전투기 조종사는 쏟아지는 정보와 불확실성을 스스로 판단해야 하지만, 버스 운전사는 정해진 노선을 따른다. AI를 활용해 깊이 배우는 사람과 AI에게 숙제 답만 받는 사람의 차이도 마찬가지다. 도구를 치웠을 때 문제를 처음부터 스스로 풀 수 있는지가 진짜 실력을 가른다.

약 1,000명이 참여한 고등수학 실험이 이를 잘 보여준다. 정답을 바로 알려주는 GPT를 사용한 학생들은 연습 과정에서 통제군보다 약 48% 높은 성과를 냈다. 하지만 AI 없이 치른 시험에서는 오히려 약 17% 낮은 점수를 받았다. 반면 정답 대신 힌트를 제공하는 GPT 튜터를 사용한 학생들은 연습 효과를 누리면서도 실제 시험에서 통제군과 비슷한 성적을 유지했다. AI가 당장의 속도를 높여줄 수는 있지만, 사고 과정을 대신하면 도구가 사라지는 순간 학습의 공백이 드러난다.

새로운 프로그래밍 라이브러리를 배우는 주니어 개발자 실험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AI의 도움을 받은 집단은 직접 코드를 작성한 집단보다 개념 이해와 코드 읽기, 디버깅 퀴즈에서 약 17% 낮은 성과를 보였다. 평균적인 시간 절약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작동하는 코드를 얻는 것과 그 코드가 왜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었다.

짧고 완결된 콘텐츠에 익숙해지는 습관도 같은 문제와 맞닿아 있다. Netflix는 장편 콘텐츠의 클립과 세로형 영상을 실험한 데 이어, 3~20분 길이의 외부 숏폼까지 도입하며 YouTube, TikTok식 시청 습관과 경쟁하고 있다. 그가 우려한 알파세대의 AI 과의존과 숏폼 편중에는 공통점이 있다. 깊이 생각하기 전에 이미 완성된 답과 이야기를 건네받는다는 점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콘텐츠의 길이나 AI 사용 여부 자체가 아니다. 미완성인 생각을 견디고, 스스로 다음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는지가 더 큰 차이를 만든다.


성인의 인지 저하와 청소년의 능력 미형성, 왜 다르게 봐야 하는가

성인이 이미 익힌 일을 AI에 맡기는 것과, 청소년이 아직 배우지 않은 평가와 논증을 AI에 맡기는 것은 다르다. 성인은 약해진 능력을 다시 연습할 수 있다. 하지만 청소년은 출처를 평가하고 논리를 세우는 능력 자체를 형성하지 못할 수 있다. 이른바 ‘인지적 폐쇄’다. 더구나 AI의 답에서 오류를 찾아내려면 해당 분야의 지식이 필요한데, 그 지식이 바로 청소년이 이제부터 배워야 할 내용이다.

교육심리 연구자 마이클 걸리히가 666명을 조사한 연구에서는 AI 사용 빈도와 비판적 사고 점수 사이에 약 -0.68의 상관관계가 나타났다. AI에 사고를 맡기는 ‘인지적 오프로딩’(기억, 계산, 판단을 외부 도구에 떠넘기는 것)이 두 변수의 관계를 매개했다. 연령별로는 17~25세 집단이 AI 의존도는 높고 비판적 사고 점수는 낮았다. 46세 이상 집단에서는 반대 경향이 나타났다. 물론 상관관계만으로 AI 사용이 비판적 사고 저하의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이 차이는 성인이 기존 능력을 덜 쓰는 현상과, 성장기 세대가 그 능력을 처음부터 형성하지 못하는 현상을 구분해서 살펴봐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교육과 직장에서 AI에게 정답을 맡기는 것이 기본이 된다면, 10년 뒤에는 AI 모델에 접근하는 것보다 불확실한 문제를 처음부터 검토하고 논증하는 능력이 더 희소해질 것이다. 걸리히의 후속 실험에서도 별다른 안내 없이 AI를 사용하게 하자 인지적 오프로딩은 늘었지만 추론의 질은 거의 향상되지 않았다. 반면 구조화된 질문을 사용하게 하자 오프로딩은 줄고 비판적 추론과 성찰은 높아졌다. 결국 중요한 것은 AI를 쓰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쓰느냐다. 사용자가 판단 과정에 계속 참여하도록 설계된 AI는 전혀 다른 학습을 만든다.


그럴듯한 결과물에 가려진 그늘.. 우리는 배움의 가치를 버리고 있는가

방금 낸 보고서, 네 머리엔 남았니?

AI에게 숙제를 맡긴 사람은 답을 받아 곧바로 제출한다. 그러나 자신이 방금 쓴 문장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낯선 오류가 생기면 스스로 고치지 못한다. 반면 AI의 머리를 빌리는 사람은 힌트와 반론, 새로운 접근법을 얻되 논증의 구조를 세우고 결과를 검증하는 일은 직접 한다. 결과가 그럴듯하더라도 ‘왜 맞는가’를 설명할 수 없다면 숙련은 남지 않는다.

처치먼의 처방은 AI 도입을 늦추자는 것이 아니다. 제품과 업무 절차의 기본값을 신중하게 설계하자는 것이다. AI가 인간의 추론을 강화할지, 추론 자체를 대신할지 미리 정하지 않으면 사람은 자연스럽게 편리한 위임을 선택한다. 앞서 세 가지 압력을 짚은 연구자는 생각할 때 생기는 마찰을 학습의 비용이 아니라 가치로 받아들이라고 제안한다. AI 없이도 수행할 수 있어야 하는 핵심 기술은 보존하고, AI로 절약한 정신적 에너지는 더 높은 수준의 판단에 써야 한다. AI 역시 정답을 대신 내주는 도구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도록 돕는 튜터로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매일 네 가지는 사람의 몫으로 남겨야 한다. 문제를 정의하는 일, 제1원리에서 논증의 뼈대를 세우는 일, 반례와 불확실성을 표시하는 일, 최종 결론에 책임지는 일이다. 자료 검색이나 표현을 다듬는 초안 작성, 형식 변환 같은 작업은 AI에 맡길 수 있다. 그러나 그 답이 지금의 맥락에서도 성립하는지는 반드시 사람이 판단해야 한다. 값싼 지능이 풍부해질수록 분별력과 판단력, 계획 능력, 성찰의 가치가 더 커진다는 Harvard University 연구진의 전망도 같은 맥락이다.

AI에게 숙제를 맡기면 당장은 편해진다. 대신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추론하는 연습은 사라진다. AI의 머리를 빌리면 더 깊은 질문과 다양한 관점을 얻을 수 있지만, 최종 판단까지 빌려서는 안 된다. 중요한 것은 AI 사용을 완전히 끊는 일이 아니다. 매일의 위임 목록에서 문제 정의, 논증 설계, 불확실성 검토, 최종 판단만큼은 제외하는 일이다. 이 네 가지를 계속 직접 수행하는 습관이 10년 뒤에도 남아 있을 자신의 능력을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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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교육#노동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