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에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면서 2028학년도부터 대입 방법이 달라진다고 들었다. 결국 원하는 대학과 학과를 가려면 고등학교가 아닌 중학교 때부터 뭔가 진로를 정해고 과목들을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 될 것 같은데 뭐가 이리 복잡한지 모르겠다. 시대는 갈수록 예측 불가능해지고 있는데, 제도는 뭔가를 더 정해놓고 가려는 현실이 의아하다.

많은 이들이 여전히 특정 전공, 특히 의대나 법대 같은 자격 기반 분야를 장기적인 안전자산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AI가 노동시장의 스킬 요구 속도를 빠르게 끌어올리는 가운데, 대학과 교육제도의 변화 속도는 그에 크게 미치지 못하고 있으며, 심지어 가장 앞선 예측자들조차 어떤 분야가 실제로 안전할지를 일관되게 맞추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안전을 추구하는 선택이 오히려 새로운 형태의 구조적 위험을 만들어내는 역설이 나타나고 있다. 이 장은 그 역설을 만기 불일치, 제도적 시차, 예측 불가능성이라는 관점에서 차례로 살핀다.

더 붉어지는 레드오션

지난해 확정된 2026학년도 의대 모집인원은 3058명이었다. 한시적으로 늘렸던 증원분 1469명이 빠지며 2024년 이전 규모로 되돌아간 결과였다. 그런데 지원자들은 가톨릭대·서울대·성균관대·연세대·울산대, 이른바 빅5 의대로 더 집중됐다. 합격선도 함께 올라갔다. 정원이 줄어든 상황에서 상위권 선택지에 대한 선호가 강해지며, 그 안에서의 경쟁 밀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미국에서는 22-27세 대졸자 실업률이 5.6%로 집계됐다. 전체 평균 4.2%보다 높은 수준이다. 스탠퍼드 디지털경제연구소의 에릭 브린욜프슨 연구진이 2025년 11월 발표한 조사에 따르면, AI 노출도가 높은 직군의 초년차 고용은 2022년 말 이후 16% 줄었다. 신입 채용 공고 네 건 중 한 건은 AI 활용 능력을 요구사항으로 명시한다. 2년 전에는 스무 건 중 한 건 수준에 그쳤다. 기업들은 대규모 해고 대신 신규 채용 규모 자체를 축소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길일수록 더 많은 사람이 몰리고, 그 길의 폭은 상대적으로 좁아지는 구조다.

자격증이나 면허로 일정 정도의 진입 장벽이 설정된 분야일수록 지원이 몰리는 흐름이 나타난다. 그 결과, 개별 지원자가 확보하는 안전의 범위는 좁아진다. 동시에 AI가 일상적인 업무를 대체하면서 전통적인 신입 포지션 자체가 줄어드는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두 현상은 서로 다른 시장에서 진행되지만, 노동시장에 진입하려는 이들이 마주하는 불확실성의 성격은 유사해진다.

환경의 속도가 파괴하는 것들

진화생물학에서 말하는 진화적 부적합은 유기체가 과거 환경에 적응한 형질이 환경 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할 때 발생한다. 형질은 오랜 시간에 걸쳐 다듬어지는데, 환경이 그보다 빠르게 바뀌면 한때 유리했던 특성이 오히려 불리해지는 시차가 생긴다. 이 개념은 1988년경 처음 논의되기 시작했고, 조지 윌리엄스와 랜돌프 네스가 1991년 논문과 1994년 저서에서 체계화했다.

대학이 학과를 신설하거나 정원을 조정하는 절차는 기본적으로 느리다. 미국에서는 신규 프로그램 계획 신고부터 최종 승인까지 보통 18개월에서 수년이 걸린다. 커리큘럼 승인만 해도 8-9개월이 소요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여러 단계의 위원회와 검토 과정을 거치는 구조 자체가 급격한 변화를 상정하지 않고 설계되어 있다.

한국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2022년 개정 교육과정은 2025년에 고등학교에 순차 적용되고, 여기에 연동된 2028학년도 대입제도 개편까지 하나의 큰 주기로 맞물려 있다. 교육과정 전반의 손질은 통상 5-8년 주기로 이뤄진다. 반면 AI에 노출된 직무에서 요구되는 스킬의 변화 속도는 훨씬 빠르다. 관련 조사에 따르면 해당 직군의 스킬 진화 속도가 2024년 25% 수준에서 최근 66%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대학이라는 유기체와 노동시장이라는 환경 사이의 속도 차이가 이 정도 벌어지면, 학생이 전공을 선택하는 시점부터 이미 일정 부분의 부적합이 구조적으로 예고되는 셈이다. 느린 제도 안에서 설계된 교육 내용이 빠르게 변하는 요구사항을 온전히 반영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결과, 졸업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환경과의 괴리가 드러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년 만기 자산을 3년 부채로 사는 것

은행에서 말하는 만기 불일치는 장기 자산을 단기 부채로 조달할 때 발생하는 구조적 위험이다. 수년에서 수십 년 만기 대출이나 채권을, 예금처럼 짧은 기간에 상환해야 하는 자금으로 떠받치는 구조다. 2023년 실리콘밸리은행은 평균 듀레이션 약 6년짜리 국채와 모기지증권을 요구불예금으로 조달하고 있었다. 금리가 급등하면서 자산 가치가 떨어지자 미실현 손실만 170억 달러를 넘어섰다.

전공 선택도 비슷한 구조를 갖는다. 학위는 20-30년 동안 노동시장에서 수익을 기대하고 투자하는 장기 자산에 가깝다. 그런데 이를 뒷받침하는 스킬의 실제 유효 기간은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인사조직 컨설팅 업계 관측에 따르면 기술 스킬의 반감기가 예전 5년 안팎에서 최근 2.5년 수준까지 짧아졌다.

학위 자체가 무용해지는 것이 아니라, 그 학위를 받쳐주던 만기 가정이 깨지는 것이다.

20-30년 만기 자산을 2-3년짜리 부채로 조달하는 셈이니, 기술 변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면 개인의 커리어 대차대조표에서도 실리콘밸리은행과 유사한 형태의 불일치가 발생할 수 있다. 의대나 법대처럼 자격 기반 전공은 듀레이션이 긴 안전자산으로 여겨지며 지원이 집중된다. 만기 불일치를 피하려는 움직임이 오히려 더 긴 만기의 자산으로 쏠리게 만드는 이 반응은, 위기 국면에서 은행들이 흔히 보이는 행동 패턴과 닮아 있다.

하지만 모두 예측대로 되지는 않는다

AI 연구자 제프리 힌턴은 2016년 “5년, 늦어도 10년 안에” AI가 방사선과 의사를 대체할 것이므로 지금 당장 그 훈련을 중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10년이 지난 2026년, 미국 방사선과 의사 수는 오히려 10%가량 늘었고 평균 연봉은 57만1000달러로 전년 대비 9% 올랐으며, 채용 공고 하나를 채우는 데 평균 130일이 걸린다. 힌턴 본인도 이후 자신이 영상 판독이라는 좁은 업무 영역만 보고 예측했다고 인정했다.

예측이 빗나간 방향은 이것만이 아니다. AI가 신입 변호사의 1차 계약서 검토와 판례 조사를 빠르게 대체할 것이라는 경고가 이어지는 가운데, 2026년 로스쿨 지원자는 전년 대비 20.5% 증가했다. 불황기마다 반복돼온 전문 자격으로의 도피 패턴이, AI발 위험 경고와 같은 시점에 겹친 셈이다.

두 사례는 서로 다른 결론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같은 사실을 보여준다. 어떤 전공이 AI 앞에서 안전한지 위험한지 미리 정확히 판별하는 능력은, AI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연구자에게조차 없었다. 지금 초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가 직면한 진짜 문제는 잘못된 전공을 고를 위험이 아니다. 20년 뒤를 신뢰할 만한 수준으로 예측할 방법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더 근본적이다. 예측의 정밀도를 높이려는 노력은 애초에 풀리지 않는 문제에 더 많은 자원을 투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정답은 없지만 옵션은 있다

트레이더 출신 나심 탈레브는 손실은 제한하고 이익은 열어두는 구조를 의도적으로 만드는 것이 핵심이라고 말한다. 그가 제안한 바벨전략은 극단적으로 안전한 쪽과 극단적으로 개방적인 쪽을 동시에 유지하면서, 중간에서 어중간한 확정적 배팅을 피하는 방식이다.

이 틀을 전공 선택에 적용하면 구체적인 형태가 드러난다. 안전한 쪽 축은 20년 뒤에도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은 능력들이다. 글을 읽고 쓰는 힘, 수를 다루는 사고, 낯선 문제를 정의하는 능력, 사람과 협업하는 판단력이 여기에 해당한다. 개방적인 쪽 축은 반감기가 짧은 특정 기술이나 자격을 짧은 주기로 갈아타며 쌓아가는 옵션들이다.

위험한 자리는 그 중간, 즉 이 전공 하나면 평생 안전하다는 확정적 배팅이다. 특정 자격 하나로 쏠리는 선택이 불안정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전공 자체가 잘못된 선택이라서가 아니라, 자격증 하나를 유일한 20년 만기 자산으로 삼는 순간 앞서 본 만기 불일치 구조가 그대로 재현되기 때문이다.

지금 초등학생이 스무 살이 되는 시점에 남는 것은 특정 전공의 이름이 아니다. 자격 기반 전공들의 간판 자체는 상당수 남아 있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안을 채우는 업무 내용은 이미 상당 부분 바뀌었고, 그 나이가 될 무렵에는 더 많이 바뀌어 있을 것이다. 부모가 실제로 물려줄 수 있는 것은 특정 전공명이 아니라, 안전축인 근본 사고력과 개방축인 짧은 주기의 기술 옵션을 함께 유지하는 바벨형 태도에 가깝다.

예측이 빗나가는 세계에서 살아남는 것은, 예측을 더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예측이 틀렸을 때도 버틸 수 있는 포지션을 미리 확보한 사람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 20년 뒤에도 안전할 전공을 정확히 맞추는 능력이 아니다. 그 능력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도, 여전히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구조를 갖추는 일이다. 바벨형 태도는 그 구조를 만드는 한 방식일 뿐이다.

사실 요즘 드는 생각은, 과연 미적분을 해야할까? 10년 후에도 사람이 미적분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면서 또 한편으로는 오늘도 아이에게 인수분해를 열심히 가르쳐주고 있다.

#career-planning#ai-labor-market#education-policy#risk-strateg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