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기술을 두고 권리 보호와 비용 절감이 충돌하면 원칙만으로 판단하기 어렵다. 누가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이 누구의 이해를 반영하는지도 결정에 영향을 미친다.

소송장 옆의 채용 공고

할리우드는 AI를 비판하는 동시에 도입도 서두른다. Los Angeles Times가 2026년 6월 말 7개 대형 스튜디오의 채용 공고 약 250건을 조사했더니 30건가량이 AI 관련 직무였다. 넷플릭스는 생성형 AI 관리자를, 디즈니와 Amazon MGM Studios는 제작 기술자와 AI 총괄 임원을 찾았다.

한쪽에서는 저작물을 AI 학습으로부터 지키고 다른 쪽에서는 AI 제작 시스템을 만든다. 겉보기에는 모순이 아닌가. 하지만 기업에는 손실을 막는 일과 효율을 높이는 일이 모두 필요하다. 공식 발언과 달리 채용 공고에는 이런 속내가 그대로 드러난다.

실제로 디즈니와 유니버설은 2025년 미드저니를 상대로 저작물당 최대 15만 달러의 배상을 요구하는 소송을 냈다. 반면 넷플릭스는 이듬해 벤 애플렉의 AI 회사를 인수했다. 이 회사의 기술은 배우를 대신하기보다 조명 보정과 누락 장면 등 후반작업을 돕는다. 이번에 조사된 채용 공고에도 AI 각본, 배우 직무는 없었다. 카메라 앞의 창작자와 카메라 뒤의 공정 사이에서 스튜디오들이 조심스레 선을 가늠하는 모습이다.


말하지 않는 쪽의 계산

경제학자 티무르 쿠란은 속마음과 공개 발언이 달라지는 현상을 ‘선호 위장’으로 설명했다. 솔직하게 말해서 얻는 이익보다 평판 손실이 크면 사람은 주변이 원하는 답을 택한다. 모두가 침묵하면 실제 여론이 보일 리 없다. 경쟁사의 AI 도입 수준을 채용 공고로 짐작하는 할리우드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다.

줄지어 선 사람들이 서로 눈을 피한 채 각자 주머니에 똑같이 생긴 작은 물건을 몰래 집어넣는다

이런 정보 부족은 노조의 협상과 정부의 규제를 늦춘다. 실제로 2026년 조사에서 응답자의 39%는 허락을 구하기보다 알리지 않고 쓰겠다고 답했다. 연매출 10억 달러 이상 기업 응답자에서는 47%였다.

하지만 영향력 있는 인물이 먼저 공개하면 분위기는 빠르게 바뀐다. 조지 루카스는 AI 거부를 자동차 대신 마차를 고르는 일에 비유했다. 한편 벤 애플렉은 직접 AI 회사를 세워 넷플릭스에 매각했다. AI 사용을 숨길 이유가 줄어드는 만큼 노조의 대응 시간도 짧아지고 있다. 애니메이션과 시각효과 직군은 이미 AI 조항을 협상 의제로 올려 왔다.


프롬프트가 길어도 저작권은 없다

스포츠도 새 기술의 허용선을 계속 고쳐 왔다. 세계도핑방지기구는 경기력 향상 가능성, 건강 위험, 스포츠 정신 위배 가운데 두 가지 이상에 해당하면 금지 대상으로 삼는다. 효과만 보지 않고 사용 방식과 위험까지 함께 따진다.

이 기준에 따라 매년 갱신되는 것은 금지목록이다. 검증할 방법이 없으면 정직하게 신고한 사람만 손해를 본다. 창작물의 AI 표시제도 자진 신고에만 기대서는 제대로 작동하기 어렵다.

한편 미국 저작권청은 AI 사용량보다 결과물에 인간의 표현이 남았는지를 본다. 정교한 프롬프트만으로는 저작권이 생기지 않는다. 다만 인간이 선택, 배열, 수정한 표현은 보호받을 수 있다. 아카데미 역시 AI 사용 자체보다 인간이 창작의 중심에 있었는지를 살핀다. 다만 법은 권리를, 시상식은 명예를, 노조는 고용을 다룬다. 목적이 다른데 허용 기준이 같을 수 있을까.

주체다루는 것
권리
시상식명예
노조고용

성질이 바뀌는 지점

관세법상 원산지 판정에는 가공 뒤 상품의 이름, 성격, 용도가 달라졌는지를 따지는 ‘실질적 변형’ 기준이 있다. 이를 창작에 적용하면 인간과 AI의 작업량보다 작품의 성격을 누가 결정했는지가 중요해진다. 노이즈 제거는 기존 결정을 보완한다. 반면 소재와 인물, 장면을 고르고 버리는 일은 작품의 정체성을 만든다.

결국 인간의 기여는 막연한 창의성보다 책임으로 확인하기 쉽다. 최종 결과를 확정하고 이름을 올리며 실패와 소송을 감당하는 사람이 핵심 결정을 내린다. AI는 선택지를 만들 수 있지만 계약상, 법률상 책임은 지지 않는다. 크레딧과 보상도 최종 선택과 손실을 누가 부담했는지에 맞춰야 옳다.

보상 문제에서 기술을 금지하는 대신 수익의 흐름을 바꾼 전례도 있다. 미국음악가연맹은 1940년대 녹음을 거부한 끝에 음반 수입 일부를 공연 기금에 넣는 합의를 얻었다.

오늘날에는 메타데이터(데이터의 내용, 속성을 설명하는 정보)가 비슷한 역할을 할 수 있다. Spotify는 보컬, 악기, 작곡, 가사 등에 AI가 어떻게 쓰였는지 기록하는 표준 개발에 참여했다. 이런 정보가 검출과 정산에 연결되면 AI 분류 기준은 곧 수익 배분 기준이 된다.

그 기준을 정하는 자리도 갈린다. 소송은 이미 일어난 침해의 대가를 정한다. 반면 플랫폼과 표준 기구는 기여 정보를 어떤 형식으로 기록하고 전달할지를 정한다. 이 정보가 실제 보상 대상과 지급액을 결정짓는 통로가 된다. 어디에 썼는지, 어떻게 검증하는지, 수익을 누구에게 나눌지가 관건이다. 할리우드의 AI 기준은 법정뿐 아니라 크레딧과 정산 체계를 설계하는 회의실에서도 만들어지고 있다.

기술의 분류는 중립적인 행정 절차가 아니다. 같은 작업도 어떤 정보가 남고 보상과 연결되는지에 따라 산업 안에서 다른 가치를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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