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의 병목은 주민표결이다
미국에서 AI 산업의 앞길을 가로막는 곳은 워싱턴의 규제기관이 아니다. 오히려 각 지역의 데이터센터 건설을 결정하는 카운티 용도지역 심의실에 가깝다.
여론조사기관 Heatmap Pro와 Embold Research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명 중 3명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 데이터센터가 들어서는 데 반대했다. 정치 성향을 가리지 않았다.
- 공화당 지지자의 3분의 2
- 무당층의 약 80%
- 민주당 지지자의 83%가 반대했다.
진영 간 대립이 극심한 2026년 미국 정치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합의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월러스웰스는 이를 기술의 발전을 마지못해 받아들이는 체념이 아니라, 갈수록 거세지는 저항의 신호로 해석했다.
이러한 반대는 이미 여론의 수준을 넘어섰다. 데이터센터 반대 사례를 집계하는 Data Center Watch에 따르면 2026년 1분기에만 최소 75개 데이터센터 사업이 취소되거나 지연됐다. 사업 규모는 약 1,300억 달러에 달한다. 불과 석 달 동안 발생한 차질이 2025년 한 해 전체와 맞먹는 수준이다.
지역 반대 조직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25년 말 396개였던 활동 조직은 이듬해 3월 833개로 두 배 이상 증가해 미국 49개 주로 확산했다. 한 지역에서 효과를 거둔 조례와 건설 유예 조치, 공청회 대응 방식이 다른 지역으로 빠르게 전파된 결과다. 데이터센터에 대한 주민들의 거부는 이제 일회성 시위를 넘어, 어디서든 되풀이할 수 있는 행정적 저지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설득 대신 거부권 없는 땅으로
지역사회의 반대로 사업이 지연되자 기업과 정부는 설득 대신 입지를 바꾸기 시작했다. 미 에너지부는 16개 연방 부지 가운데 아이다호국립연구소, 오크리지, 퍼두카, 서배너리버를 우선 후보로 선정했다. 연방 소유지는 지방정부의 토지이용 규제와 주민 공청회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주권면제(정부를 상대로 한 법적 제약이 면제되는 원칙)에 따라 상당수 환경 규제에서도 벗어나 있었다. 지역의 반대를 극복했다기보다, 애초에 지역사회가 거부권을 행사하기 어려운 부지를 택한 셈이다.
미국 밖에서는 국가가 토지 승인을 일괄 처리하는 걸프 지역이 비슷한 역할을 한다. 아랍에미리트의 AI 기업 G42가 OpenAI, Oracle, NVIDIA, 소프트뱅크와 추진하는 ‘스타게이트 UAE’는 총 5GW 규모 단지의 첫 1GW 사업이다. 사우디아라비아 국부펀드가 세운 AI 기업 HUMAIN도 11개 단지에 총 2.2GW 규모의 시설을 짓기 위해 1,00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한다. AI 시설의 입지는 전력과 기후뿐 아니라 지역사회가 허가 과정에 얼마나 개입할 수 있는지에 따라서도 결정된다.
지역의 거부권이 얼마나 중요한지는 지방정부의 권한을 회수하려는 법안에서도 확인된다. 웨스트버지니아주는 카운티와 시가 데이터센터와 마이크로그리드(독립적으로 운영 가능한 소규모 전력망)를 규제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에 일부 의원은 지방정부의 통제권을 되돌리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펜실베이니아주의 SB 991 법안은 25MW를 초과하는 사업을 심사할 주 위원회를 신설하고, 폐쇄된 발전소 등을 활용해 후보 부지 15곳을 미리 지정하도록 한다. 형식상 지방정부의 토지이용 규제권은 유지되지만, 사업을 거부할 수 있는 사유는 제한된다. 이 때문에 지방정부가 실질적인 결정권자에서 단순한 의견 제출자로 밀려난다는 비판이 나온다.
AI 전기료는 누가 내는가
주민이 문제 삼은 비용 중 일부는 이미 전기요금에 반영됐다.
| 구분 | 용량가격(MW-day) |
|---|---|
| 2024, 25년 | 28.92달러 |
| 2026, 27년 | 329.17달러 |
미국 최대 전력망 운영기관 PJM의 용량가격은 11배 넘게 뛰었다. 상승분의 63%는 데이터센터 수요에서 비롯됐고, 그 결과 연간 93억 달러가 이용자 요금으로 회수됐다. 2028년까지 이 권역 가구의 전기요금이 월 70달러 더 늘어날 것이라는 추정도 나왔다.
이에 미국에서는 데이터센터가 유발한 비용을 별도 요금제로 부담시키는 움직임이 확산하고 있다. 2026년 7월 기준 24개 주가 대규모 전력 사용자를 위한 전용 요금제를 하나 이상 승인했고, 6개 주가 도입 여부를 심사하고 있었다. 핵심은 신규 대형 고객에게 발전설비와 전력망 확충 비용을 전액 부담시키는 것이다. 이후 AI 전력 수요가 줄어 설비가 남더라도 그 비용을 기존 이용자에게 떠넘기지 못하도록 막는다.
펜실베이니아주는 이 원칙을 허가 절차에도 반영했다. 주 정부의 ‘2026-05 행정명령’에 따라 8월 18일부터 데이터센터 사업자는 허가를 받기 전에 전력망 신설 비용을 전액 부담하겠다고 법적으로 약속하고, 지역사회의 승인도 먼저 받아야 한다. 데이터센터를 무조건 받아들이거나 거부하는 대신, 수용에 필요한 조건을 법적 의무로 만든 것이다.
한국에는 이 같은 협상 절차가 아직 충분하지 않다. 과천 주암지구에서는 아파트와 보육시설에서 불과 수십 미터 떨어진 데이터센터를 둘러싸고 이격거리 조례의 적용 여부가 쟁점이 됐다. 영등포구는 서울시 구청장협의회의 만장일치 의결을 거쳐 2, 3종 일반주거지역의 데이터센터 건립을 제한하고, 자치구에 허가 반려 권한을 부여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주민에게 언제, 무엇을 알려야 하는지에 관한 기준조차 없다. 이런 상태에서는 AI 시설을 어디에 세울지뿐 아니라, 누가 어떤 비용을 부담하고 어떤 조건을 지켜야 하는지를 협상할 자리도 생기기 어렵다.
출처
- I Expected Tech Fatalism. Americans Are Putting Up a Remarkable Fight Instead. — The New York Times
- Management and Leadership 블로그의 해당 칼럼 인용 — kipcurriermanagementleadership
- Q1 2026: Data Center Watch Report — Data Center Watch
- Data center opponents have blocked or delayed projects worth nearly $130 billion in 2026 — NBC News
- DOE Announces Site Selection for AI Data Center and Energy Infrastructure Development on Federal Lands — U.S. Department of Energy
- Trump Administration Announces Another Data Center on Federal Land — NOTUS
- Gulf AI infrastructure and the limits of technological sovereignty — IISS
- Uniformity vs. Authority: Data Center Preemption of Pennsylvania Municipalities — The Pennsylvania Municipal League
- State Data Center Laws vs. Federal AI Push: 2026 Tracker — MultiState
- Projected data center growth spurs PJM capacity prices by factor of 10 — IEEFA
- Data Center Regulation: What Local Governments Should Know about Large-Load Tariffs — Columbia Climate Law Blog
- Pennsylvania Executive Order 2026-05 Makes Data Centers Pay Full Grid Costs and Win Local Approval First — mgrid.org
- 데이터센터 지어도 된다더니⋯과천 주암 ‘뒤늦은 규제’에 갈등 — 이투데이
- 도심 데이터센터 갈등 반복…주민고지 기준 여전히 공백 — 뉴스토마토
- 안전한 주거환경 조성을 위한 데이터센터 입지 관련 건축법 개정 촉구 건의안 — 서울특별시의회 주택공간위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