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의 박사가 산업계로 가는 이유
AI 거버넌스는 안전 기준이나 윤리 원칙을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다. AI가 만드는 이익과 피해는 누구에게 돌아가며, 그 분배 방식은 누가 결정하는가. 싱가포르국립대학교 법학 교수 사이먼 체스터먼은 미, 중 경쟁이나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격차보다 공공기관과 민간기업 사이의 권력 불균형이 더 심각하다고 진단한다.
오늘날 거대 기술기업은 AI 플랫폼과 모델, 기반시설을 장악하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규칙을 만들고, 분쟁을 판정하며, 사람들의 발언을 통제한다. 노동시장과 선거에도 영향을 미친다. 체스터먼이 이들을 ‘실리콘 주권자’라고 부르는 이유다. 규칙을 정하고 자원을 배분하며 공동체의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주권이라면, 그 권한의 일부는 이미 국가에서 기업으로 넘어갔다.
AI를 개발하는 데 필요한 자원도 기업에 집중돼 있다. 2022년 공개된 주요 AI 모델 가운데 학계가 만든 것은 세 개에 불과했다. 전년도 산업계 모델의 매개변수(모델이 학습으로 조정하는 내부 수치) 규모는 학계 모델의 약 29배였다. 미국 정부가 비국방 분야의 학계 AI 연구에 지원한 약 15억 달러는 Google이 DeepMind 한 곳에 투자한 금액과 비교될 정도다. 산업계로 진출한 AI 박사의 비율도 20여 년 사이 20%대에서 약 70%로 뛰었다.
기술 발전이 이러한 집중을 저절로 해소해 주지는 않는다. 노동자를 대체하고, 감시를 강화하며, 시장 지배력을 키우는 기업에 더 큰 보상이 돌아간다면 생산성 향상은 오히려 불평등을 심화한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이 얼마나 발전하느냐만이 아니다. 그 성과가 누구에게 돌아가고, 어떤 행위에 보상이 주어지며, 이를 누가 결정하는지가 AI 발전의 방향을 좌우한다.
외교 무대 앞줄을 차지한 AI CEO들
Starlink는 우크라이나군의 통신과 드론 작전을 지탱하는 핵심 기반시설이 됐다. 그만큼 SpaceX의 결정은 전쟁의 향방에도 영향을 미친다.
2022년 SpaceX는 크림반도 인근에서 우크라이나 해상 드론의 Starlink 접속을 허용하지 않았다. 한 기업인의 위험 판단이 국가의 군사작전을 제한할 수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 순간이었다. 반대로 2026년 2월 우크라이나 국방부의 허용 목록에 없는 단말이 차단되자, Starlink를 사용하던 러시아군의 통신과 드론 운용은 즉각 혼란에 빠졌다.
민간기업의 영향력은 전장에만 머물지 않는다. 같은 해 7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러시아 영내의 탄도미사일 발사대를 공격할 수 있도록 일론 머스크의 승인을 받아 달라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요청했다. 국가 정상들이 논의하는 군사적 선택지가 민간기업의 서비스 정책과 기술 설정에 좌우된 셈이다.
외교 무대의 풍경도 달라졌다. 6월 에비앙에서 열린 G7 회의에는 OpenAI CEO 샘 올트먼, Anthropic CEO 다리오 아모데이, Google DeepMind CEO 데미스 허사비스가 각국 정상과 자리를 함께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에서는 기술기업 경영자들이 내각 후보자보다 앞줄에 배치됐다. 모델과 기반시설을 보유한 기업이 국가의 규제 대상을 넘어 외교의 직접적인 상대가 됐음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각국은 이러한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권 AI’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의 안보 싱크탱크 신미국안보센터(CNAS)는 67개국에서 정부가 지원하는 관련 사업 184개를 집계했다. 2026년 상반기에만 41개가 새로 추가됐다. 신규 사업의 80%는 기반시설 구축에 집중됐다.
그러나 이름에 ‘주권’을 붙인다고 기술적 자립이 보장되는 것은 아니다. 공개된 파운데이션 모델(다양한 용도에 두루 쓰이도록 대규모로 사전학습된 범용 모델) 가운데 5분의 3은 미국산이었고, Meta의 Llama가 가장 널리 쓰였다. 국가가 자체 AI를 내세우더라도 모델의 가중치와 클라우드, 반도체 접근권을 외국 기업이 통제한다면 의존은 그대로 남는다.
교황 레오 14세도 기술 발전이 정부보다 많은 자원과 강한 개입 능력을 지닌 민간, 초국적 주체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제 문제는 누가 더 뛰어난 기술을 보유했느냐에 그치지 않는다. 기술적 능력이 통치 권한의 근거가 될 수 있는가. 이는 산업정책을 넘어 헌법에 준하는 질문이다.
국가 안보와 기술 기업의 거부권 충돌
Anthropic은 2025년 7월 자사의 AI 모델 Claude를 미군 기밀망에 공급하면서 두 가지 제한을 뒀다. 완전 자율무기와 미국 내 대규모 감시에는 사용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이듬해 미 국방부가 합법적인 모든 군사 목적에 제한 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요구했지만, Anthropic은 이를 거부했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2월 27일 연방기관에 Anthropic 사용 중단을 지시했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장관은 회사를 공급망 위험으로 지정했다.
이 조치는 그동안 외국 적성국과 연계된 업체에 적용하던 제도를 미국 기업에 처음 사용한 사례였다. 갈등의 핵심은 단순히 윤리 원칙의 문구가 아니었다. 정부가 승인한 작전이라도 기업이 서비스를 중단할 수 있다면, 민간기업의 안전정책이 국가의 행동을 가로막는 거부권으로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쟁점은 ‘레드라인’을 누가 정하고, 해석하며, 집행할 것인가였다.
6월에는 Anthropic의 미토스 5와 페이블 5에 대한 수출통제가 시행됐다. 외국 국적자의 접근을 막으려던 조치는 결과적으로 서비스 전면 차단으로 이어졌다. 유럽에서는 이를 미국이 작동시킨 ‘킬 스위치’로 받아들였다. 같은 달 발표된 행정명령 14409는 미국 AI 기업이 최신 모델을 공개하기 전에 정부에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AI 모델이 일반 상품이 아닌 전략자산으로 취급되기 시작하면서 기업의 약관과 안전정책, 정부의 수출허가는 단순한 운영 규칙을 넘어섰다. 이제 이 규칙들은 누가 기술에 접근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를 결정하는, 사실상의 공적 권한 배분 장치가 됐다.
유럽연합은 8월 2일부터 EU AI법의 투명성 조항을 집행했다. 그러나 고위험 AI에 관한 의무 적용은 별도형 모델의 경우 2027년 12월로, 제품 내장형 모델은 2028년 8월로 미뤄졌다. 기업의 반발과 유럽 산업의 경쟁력 약화에 대한 우려가 일정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규정의 존재만으로 권력관계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시장이 소수 기업에 집중돼 있고, 이들이 서비스를 거부할 권한까지 쥐고 있다면 규제가 마련돼도 기존의 힘의 구조는 유지된다.
중국은 다른 방식을 택했다. 2020년부터 2023년까지 기술기업을 강하게 단속했고, Alibaba를 여섯 개 사업 단위로 재편했다. 거대 민간기업에 집중된 지배력을 공산당의 감독 아래 두려는 조치였다.
미국과 유럽에는 이와 같은 경제적 비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기업 권력을 재편하려는 의지가 상대적으로 약하다. 반독점 소송을 제기하고 대형 플랫폼에 각종 의무를 부과하더라도, 기업이 이미 규제하기 어려울 정도로 커진 상태를 그대로 둔다면 한계는 분명하다. 그런 규제는 권력구조를 바꾸지 못한 채 절차 준수 여부를 확인하는 데 머물 가능성이 크다.
기계의 인간 지배보다 무서운 통치 조건
국가는 AI를 규제하지만, 기업은 국가가 무엇을 선택할 수 있는지 그 조건 자체를 좌우한다. Starlink의 접속 여부, 국가 정상과 직접 협상하는 AI 기업 경영자, 예고 없이 중단될 수 있는 모델 접근권, 소수 기업에 집중된 연구 역량과 컴퓨팅 자원은 모두 같은 권력 이동을 보여준다. 체스터먼의 지적처럼, 더 현실적인 위험은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기계를 통제하는 이들이 인간을 통치하는 조건까지 결정하는 것이다.
물론 국가가 무력한 것은 아니다. 중국은 기업을 재편하며 당의 감독을 강화했다. 미국도 공급망 지정과 모델 사전 제출, 수출통제를 통해 민간 기업을 국가안보 체계에 편입하려 했다. 그러나 중국의 방식은 당의 통제를 확대했고, 미국의 조치는 동맹국의 기술 접근까지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국가의 통제가 강화된다고 해서 공적 정당성까지 저절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민주국가에는 단순한 기술 규제를 넘어서는 제도가 필요하다. 자원의 분배 권한, 기반시설의 소유, 서비스 접근의 지속성, 독점적 시장구조를 함께 다뤄야 한다. 이를 위해 강력한 공공기관과 반독점 정책이 필요하며, 노동자, 이용자, 시민사회의 집합행동도 보장되어야 한다. 1858년, 국가의 기능을 대신하던 동인도회사가 왕실과 의회의 책임 아래 편입된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민간 기업이 공공질서를 좌우하기 시작하면, 문제는 규제의 강도가 아니라 최종 권위를 누구에게 귀속할 것인가로 바뀐다.
이를 판단하는 기준은 세 가지다.
- 첫째, 위기나 전쟁이 발생했을 때 기업이 독자적으로 서비스나 모델 접근을 중단할 수 있는가.
- 둘째, 연구 역량과 인재, 컴퓨팅 자원이 공적 감시가 미치지 않는 곳에 집중되어 있는가.
- 셋째, 현행 규제가 이익과 피해의 분배, 시장 집중, 민간 기업의 거부권을 실질적으로 제한하지 못하는가.
이 질문에 대부분 ‘그렇다’고 답해야 한다면, 국가는 AI를 다스리는 것이 아니다. 기업이 정해 놓은 범위 안에서 AI를 관리하고 있을 뿐이다. 국가가 AI를 다스린다는 말은 최종결정권이 책임 있는 공적 제도에 있을 때만 성립한다.
출처
- Silicon Sovereigns: Who Governs AI? — NUS Law Research Blog (Simon Chesterman, 2026-08-24)
- Silicon Sovereigns: Artificial Intelligence, International Law, and the Tech-Industrial Complex — American Journal of International Law / Cambridge (Simon Chesterman, 2026)
- AI is giving tech companies power that once belonged to governments — Rest of World (Simon Chesterman, 2026-02-18)
- Who Governs the Machine? — Hudson Institute (Tsiporah Fried, 2026-07-17)
- Magnifica Humanitas — Holy See / Pope Leo XIV (2026-05-15)
- Musk cuts Starlink access for Russian forces — BBC News (2026-02-19)
- Zelensky Asked Trump for a Favor From Elon Musk — The Atlantic (2026-07-30)
- AI in spotlight at G7 as Trump, world leaders joined by tech CEOs — CNBC (2026-06-17)
- Sovereign AI’s Second Wave Is Coming Into View — CNAS (2026-08-20)
- Commission starts enforcing AI Act rules and new transparency requirements on 2 August — European Commission (2026-07-31)
- EU AI Omnibus enters into force, amending the AI Act — White & Case (2026-08-04)
- AI Index Report 2023 — Stanford HAI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