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 뒤에 쌓이는 조정 비용

경제학자 로널드 코즈는 회사를 거래비용을 줄이는 장치로 봤다. 시장에서 정보를 찾고 협상하고 계약을 관리하는 비용이 조직 내부의 지시보다 클 때 회사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AI 에이전트는 이 과정을 자동화해 회사의 필요를 줄이는 듯 보인다. 하지만 실제로는 개인의 업무 비용을 낮추는 대신 부서 간 중복과 충돌, 시스템 연동과 사후 관리 부담을 키운다.

도입 속도는 이미 조직의 준비를 앞질렀다. Microsoft가 2026년 2만 명을 조사한 결과, Microsoft 365의 활성 에이전트는 1년 새 15배, 대기업에서는 18배 늘었다. 반면 개인 역량과 조직 준비도가 모두 높은 집단은 19%에 불과했다. 별도 조사에서는 CIO의 82%가 직원의 에이전트 제작 속도를 IT가 따라가지 못한다고 답했고 54%는 미승인 AI 사용을 발견했다.

개인의 처리량이 늘었다고 회사 전체의 성과가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는 권한, 데이터, 인수인계 문제가 있다.


회사가 잃어버린 명부

심리학자 대니얼 웨그너가 제시한 트랜잭티브 메모리는 집단 기억의 핵심을 ‘누가 무엇을 아는가’에서 찾는다. 팀은 모든 지식을 함께 외우는 대신, 필요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찾아간다. 104개 실무 팀을 조사한 연구에서도 이 체계는 팀 성과와 관련이 있었다.

개인 에이전트는 동료에게 묻는 과정을 건너뛴다. 답은 빨리 얻지만 어떤 부서가 판단의 근거를 관리하는지 확인하고 갱신할 기회는 줄어든다. 에이전트가 많아질수록 회사에는 새로운 명부가 필요하다. 다음을 기록해야 한다.

한 사람이 공용 캐비닛의 서랍 이름표들을 떼어내면서, 자기 앞에 있는 서랍 하나만 채워 넣는다

  • 누가 만들었는지
  • 어떤 데이터와 권한을 쓰는지
  • 언제 폐기할지

그래서 에이전트에 디렉터리 ID와 담당자를 붙이는 관리 제품이 등장했다.

개별 에이전트의 성능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회사 전체에서 누가 어떤 지식과 판단을 맡고 있는지 보여주는 공용 지도가 필요하다.


남의 땅 위의 회사

내부의 혼란을 외부 플랫폼에 맡기면 종속 비용이 생긴다. 특정 SDK로 쓴 코드, 특정 모델에 맞춘 프롬프트, 독자적 형식의 임베딩과 계약은 다른 서비스로 옮기기 어렵게 만든다. 오랜 시간 다듬은 프롬프트와 워크플로는 장부에 잘 드러나지 않아 전환 손실도 뒤늦게 확인된다. 이를 ‘디지털 봉건제’에 비유하는 이유다.

회사가 업무는 수행하지만 업무의 기반은 플랫폼이 소유한다.

상호운용 표준은 이런 종속을 줄이는 출발점이다. 미국 철도회사들이 지역마다 다른 시각 때문에 혼란을 겪다가 1883년 정부보다 먼저 표준시를 도입한 것과 비슷하다. MCP와 A2A 같은 규격도 도구 연결과 에이전트 간 통신 방식을 표준화한다.

그러나 연결 규격이 통치 규칙까지 정해주지는 않는다. 주요 프로토콜은 신원 확인과 메시지 교환은 지원하지만 승인, 이견 보존, 사람에게 넘길 조건은 충분히 다루지 못한다. 연결 방법은 표준에 맡기더라도 무엇을 허용하고 어디서 사람의 승인을 받을지는 회사가 정해야 한다. 일반 업무에는 자율성을 주고 가격 결정이나 고객 데이터 반출처럼 위험한 행위에는 승인과 기록을 요구하는 식이다.


AI 시대의 잔여통제권

노벨경제학상 수상 경제학자 올리버 하트의 불완전계약 이론에 따르면 현실의 모든 상황을 계약에 미리 담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계약에 없는 상황이 생겼을 때 누가 결정할지를 정하는 ‘잔여통제권’이 중요하다.

에이전트는 계약을 완전하게 만들기보다 작은 판단을 큰 폭으로 늘린다. 사람이 열 번 하던 판단을 여러 에이전트가 수백 번 내리면 예외와 충돌도 함께 늘어난다. 따라서 업무 경계는 사람과 AI의 구분보다 ‘되돌릴 수 있는가’를 기준으로 나누는 편이 낫다.

구분업무처리 방식
되돌릴 수 있는 일초안, 요약, 탐색, 후보 생성다시 만들기 쉬우므로 넓게 맡긴다
되돌릴 수 없는 일가격 확정, 채용과 해고, 고객과의 약속, 외부 데이터 전송책임자와 승인 조건, 정본 데이터, 감사 기록을 명확히 갖춘다

실제로 Microsoft 조사에서는 AI 성과를 좌우하는 요인 가운데 개인의 태도와 행동은 32%, 문화와 관리자 지원 등 조직 요인은 67%를 차지했다.

에이전트는 수많은 답과 행동 후보를 내놓는다. 하지만 회사가 채택할 단 하나의 답을 정하고 그 이름으로 약속하며 결과를 책임지는 일은 여전히 조직의 몫이다. 이 기능이 비어 있다면 에이전트가 늘수록 회사의 답은 더 빨라지는 대신 더 많이 나뉠 것이다.


#에이전트#기업 AI#플랫폼 비즈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