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 화면 앞에서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입력하는 손길이 늘고 있다. 예전 같으면 점집을 찾아가거나 역술가를 만났을 사람들이, 이제는 앱을 켜고 AI에게 사주를 묻는다.
14배 늘어난 접속
2026년 6월 27일 벤처스퀘어 보도에 따르면 AI 사주 서비스 타이트사주의 20·30대 여성 이용자는 지난해 말 대비 약 1400% 늘었다. 전체 이용자 중 75.4%가 여성이고, 그중 61.8%가 20~30대다. 월간활성이용자(MAU)도 전월 대비 28%, 지난해 말 대비 81% 증가하며 상승세가 이어지고 있다. 같은 시기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85.5%가 운세 서비스를 이용해본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AI 기반 서비스 이용 비율은 20대 52.1%, 30대 45.1%로 다른 연령대보다 뚜렷이 높았다.
글로벌그로스인사이츠는 전 세계 점성술 앱 시장이 2025년 50억 달러에서 2026년 62억 4000만 달러로 커지고, 2035년에는 457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성장률은 24.76%이며, 이용자의 59% 이상이 밀레니얼과 Z세대다. 헬로우봇, 점신, 포스텔러, 사주핑 같은 서비스가 이미 여럿 나와 있다. 청월당 사주처럼 특허를 받은 서비스나, 이전 대화를 기억하고 실시간 음성으로 응대하는 에이전트 스테이션의 ‘연아’처럼 단순한 텍스트 응답을 넘어 대화를 이어가는 형태로 바뀌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비스 사업자들이 공통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접근성이다. 예약이나 대면, 상담료가 필요 없고 스마트폰만 있으면 새벽 세 시에도 바로 풀이를 받을 수 있다. 이용자 조사에서도 긴 명리학 해설보다 웹툰이나 숏폼, 대화형 인터페이스를 더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사주를 읽는 행위보다 대화로 소비하는 방식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러나 접근성만으로 이용 증가를 다 설명하기는 어렵다. 역술가를 찾든 앱을 켜든 사람들이 궁극적으로 확인하려는 것은 풀이가 얼마나 용한가이며, 그 느낌은 접근성이 아니라 다른 지점에서 만들어진다.
다 맞는 말은 아무 말도 아니다
1948년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는 학생 39명에게 성격 검사를 실시한 뒤 전원에게 같은 결과지를 나눠 줬다. “당신은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평가와 존경을 받고 싶어 한다”처럼 거의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문장을 점성술 책에서 모아 놓은 것이었다. 학생들은 이 결과가 자신에게 얼마나 정확한지 5점 만점에 평균 4.30점으로 평가했다. 이후 이 현상은 바넘 효과로 불리게 됐다. 포괄적이고 모호한 진술일수록 오히려 자신만을 위한 말처럼 느껴지는 착각을 가리킨다.

모두가 같은 결과지를 받았지만, 각자는 자신만을 정확히 묘사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였다.
상대의 옷차림이나 말투 같은 관찰 가능한 단서와 포괄적 진술을 조합해 신비한 능력으로 알아맞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화법이 콜드리딩이다. 이 착각을 기술로 다듬은 결과다. 점쟁이나 심령술사가 쓰는 화법에는 이름이 붙은 기법들이 여럿 있다. 거의 모든 사람에게 들어맞는 포러식 문장, 어떤 부정도 긍정으로 되받아치는 사라지는 부정, 정반대 특성을 동시에 짚어 둘 중 하나는 맞도록 만드는 무지개 속임수, 여러 추측을 빠르게 늘어놓고 맞은 것만 기억에 남기는 샷건 기법이다.
개발자 발두르 뱌르나손은 이 기법들이 챗봇 대화에서 거의 그대로 재현된다고 지적했다. 회의적인 사람은 애초에 챗봇에 정성껏 묻지 않으니 첫 관문에서 걸러진다. ‘아직 초기 단계’라거나 ‘환각’이라는 표현이 인격체를 상대하는 듯한 기대를 심어 주기도 한다. 맥락에 맞춘 응답에 사용자 스스로 의미를 채워 넣는 주관적 검증이 뒤따르고, 대화가 길어질수록 확신은 반복 속에서 굳어진다. 뱌르나손은 이를 LLMentalist 효과라 이름 붙였다. 의도된 사기가 아니라 산업 스스로도 이 메커니즘 위에서 작동한다는 사실을 잘 모른 채 벌어진 일이라고 설명했다.
챗봇 응답을 다듬는 인간 피드백 기반 강화학습(RLHF) 단계에서 평가 인력은 사실관계를 낱낱이 검증하기보다 어조와 문체로 좋고 나쁨을 판단한다. 그 결과 모델이 최적화하는 목표는 맞는 답이 아니라 맞아 보이는 답이 된다. 사주 풀이가 원래 추구해 온 목표와 다르지 않다. 20대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AI 사주를 쓰는 이유는 정확도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생년월일 하나로 매번 다른 사람에게 다른 말을 건네는 것처럼 보이는 반응은 실은 누구에게 건네도 크게 틀리지 않을 문장들을 정교하게 재배열한 결과에 가깝다.
지켜보는 눈이 사라진 자리
전통 역술가라고 콜드리딩과 무관한 것은 아니다. 사주를 보는 역술가도 옷차림과 말투, 표정, 나이, 동행한 사람을 관찰해 정보를 읽어낸다. 콜드리딩의 오래된 원형에 가깝다. 다만 점집에는 목격자가 있다. 가족이 함께 앉아 있거나, 최소한 역술가라는 존재가 얼굴과 이름을 걸고 그 동네에서 계속 마주쳐야 하는 사람이다. 풀이가 틀렸다는 소문은 평판으로 되돌아오고, 다음 손님을 잃는 형태로 대가를 치른다.
반면 AI 역술가 앞에는 이용자 한 명과 화면 하나만 있다. 얼마나 자주 접속해 같은 질문을 반복하는지, 그 결과 확신이 얼마나 부풀었는지는 아무도 지켜보지 않는다. 역술가를 다시 찾아가려면 예약을 잡고 상담료를 내고 그 자리까지 다시 가야 한다. 이 물리적 마찰이 상담 빈도에 자연스러운 제동을 건다. AI 사주에는 이런 제동장치가 없다. 새벽이든 낮이든 즉시, 무제한으로, 같은 질문을 다른 말로 바꿔가며 반복해 물을 수 있다.

대면 상담에는 얼굴과 동행자와 이동의 수고가 있었지만, 화면 앞에는 이용자 한 명과 즉시 돌아오는 답만 남는다.
AI에게는 침묵도 표정도 없다. 역술가가 확신을 유보하며 남기는 여백, 이를테면 잠시 뜸을 들이거나 이번엔 애매하다고 말하는 순간은 확신을 매번 100%로 채우지 않는 자연스러운 브레이크였다. 텍스트든 음성이든 AI는 매번 완결된 확신을 즉시 돌려준다. 이 여백이 원천적으로 없다. 콜드리딩이라는 엔진은 그대로 옮겨왔지만, 그 엔진에 브레이크 역할을 하던 목격자와 마찰만 사라졌다.
제동장치 없는 위안
아동복지 전문기관 초록우산이 2026년 3~4월 국내 청소년 3300명을 조사한 결과, 94.4%가 생성형 AI 챗봇을 써본 적이 있고 49.5%는 AI가 자신을 이해한다고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41%는 챗봇의 답변을 실제 행동으로 옮긴 적이 있다고 밝혔으며, 6%는 자해나 자살, 폭력, 성적인 내용처럼 위험한 질문을 AI에게 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유럽에서도 비슷한 신호가 잡힌다. 프랑스 개인정보보호기관(CNIL)과 보험사 브이와이브이(VYV)가 의뢰한 입소스 조사에서 프랑스·독일·스웨덴·아일랜드의 11~25세 청소년 3800명 중 51%가 심리상담사보다 AI 챗봇에게 정신건강 문제를 이야기하는 게 더 쉽다고 답했다. 국내 전문가들의 경고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AI와의 감정적 대화가 깊어질수록 망상이나 왜곡된 인식이 강화될 수 있다. 그 사이 필요한 정신건강 치료나 상담의 시기를 놓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람 사이의 상호작용이 줄면서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질 위험도 함께 거론된다. 이 위험은 사주·운세 앱에서 상담 챗봇으로 넘어가며 이름만 바뀐 같은 구조다. 확신은 반복될수록 굳어지는데, 그 반복을 막아설 목격자도 마찰도 없다. 역술가 앞이라면 다음 상담까지 며칠의 틈이라도 있었을 자리에, 화면 앞에서는 같은 질문을 형태만 바꿔 몇 번이고 되물을 수 있는 공간만 남는다.
AI 사주가 위험해지는 지점은 오답이 아니라 애매함이 사라진 자리다. 역술가라면 다음에 다시 봐야 안다며 유보했을 순간을 AI는 매번 완결된 확신으로 채운다. 반복해서 물을수록 위험해지는 이유다.
사람들은 확률을 사지 않는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이 불확실성 자체를 견디기 어려워한다고 본다. 그 불편을 없애기 위해 확률이 아니라 확신을 소비하는 쪽을 택한다. 보험이 위험을 없애 주는 게 아니라 위험 앞의 불안을 상품화하듯, 운세도 미래를 알려 주는 게 아니라 지금의 불안을 잠재울 확신 한 조각을 판다. 이 관점에서 보면 85.5%라는 운세 이용 경험률은 미신을 믿는 크기가 아니라 불확실성 앞에서 확신을 사려는 소비 행동의 크기에 가깝다. 취업, 이직, 연애, 건강처럼 결과를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일수록 이 소비는 늘어난다.

AI는 미래를 맞히는 능력보다, 불확실성을 잠시 잠재우는 확신을 대량으로 생산한다.
역술가는 하루에 볼 수 있는 손님 수와 상담료, 틀렸을 때의 평판 리스크로 공급이 제한된다. AI에게는 이런 제약이 없다. AI는 콜드리딩이 만들어 내는 확신을 24시간, 거의 무료에 가까운 비용으로 무제한 생산해 배급한다. 확신이라는 상품도 규모의 경제를 갖게 된다. 이 소비를 평가하는 기준은 얼마나 용한가보다 확신에 제동이 걸리는가에 있다. 정확도는 애초에 역술가에게도 AI에게도 검증된 적 없는 기준이었다.
믿음이 아니라 확신을 산다
역술가 대신 AI에게 사주를 묻는 사람들이 실제로 바꾼 것은 예언자가 아니다. 콜드리딩이라는 오래된 기술을 사고파는 방식이다. 목격자도 마찰도 없이 더 빠르고 값싸고 무제한으로 살 수 있는 곳으로 옮겨 갔을 뿐이다. 애초에 예지력은 없었으니 사라질 예지력도 없다. 사라진 것은 얼굴과 평판을 걸고 답하던 사람, 그리고 그 사람과의 관계가 자연스럽게 만들어 내던 마찰이다. 다음에 다시 오라는 권유, 확신을 100%로 채우지 않는 여백, 소문이 나면 손님을 잃는 위험이 모두 확신이 무한히 부풀지 않도록 걸어 놓은 제동장치였다.
반복해서 묻고 싶어질수록 그 답을 검증 없이 받아들이기보다 곁에 있는 사람에게 다시 물어보는 편이 낫다. 화면이 줄 수 없는 것, 즉 그건 아닌 것 같다고 말해 줄 목격자를 스스로 마련해 두는 일이다.
역술가 대신 AI에게 사주를 묻는 사람들이 실제로 하는 일은 사주의 형식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 검증 없이 무한히 배급되는 확신을 아무 목격자도 없는 자리에서 혼자 받아 마시는 일이다.
화면 너머에는 아무도 없다. 그 사실을 오래 기억하는 일이, 어쩌면 유일하게 남은 제동장치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