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발전은 더 나은 모델이 나오는 순간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워졌다. 소프트웨어가 빨라질수록 전력망과 실험, 조직의 판단처럼 속도를 맞추지 못하는 조건이 더 크게 작용했다.

초지능으로 가는 네 갈래 길

Google DeepMind는 AGI(범용 인공지능) 이후의 발전 경로를 네 가지로 나눈다.

  • 연산 규모 확대
  • 새로운 알고리즘
  • 재귀적 자기개선
  • 대규모 에이전트 집단

재귀적 자기개선은 AI가 연구와 코드, 학습 절차를 스스로 개선하고 그 개선이 다음 세대 AI의 추가 개선을 가속하는 되먹임 구조를 말한다. 네 경로는 서로 맞물려 있다. 좋은 칩과 알고리즘은 더 많은 에이전트를 돌리고 에이전트가 찾은 개선안은 다음 모델의 학습에 쓰인다.

이 경로들이 향하는 ASI는 천재 한 명보다 뛰어난 모델이 아니다. 잘 조직된 대규모 인간 집단을 거의 모든 지적 영역에서 꾸준히 앞서는 시스템이다. 따라서 모델 자체의 성능뿐 아니라 복제, 배치, 검증 능력까지 지능의 일부로 봐야 한다.

연산 규모 확대만 해도 지난 10년간 칩과 투자, 알고리즘 효율을 합친 유효 연산량은 해마다 약 10배 늘었다. 하지만 전력과 데이터에는 한계가 있고 새로운 알고리즘이 언제 나올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자기개선에는 검증이, 에이전트 집단에는 조정이 필요하다. 결국 어느 한 경로만으로 초지능에 도달할 수 있을까.


가장 먼저 커지는 것은 에이전트 집단

에이전트는 인간 조직보다 쉽게 규모를 키울 수 있다. 같은 모델을 그대로 복제하고 작업 과정과 실패 기록까지 공유하며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Anthropic의 멀티에이전트 연구 시스템은 단일 Claude Opus 4보다 내부 평가 점수가 90.2% 높았다. 다만 토큰은 단일 대화형 에이전트보다 약 15배 더 썼고 별도 평가에서는 성능 차이의 80%가 사용한 토큰 양으로 설명됐다. 협업 구조의 힘도 있었지만 더 많은 연산으로 탐색 범위를 넓힌 효과가 컸다는 뜻이다. 그래도 새 모델이나 발전소를 기다리지 않고 기존 장비로 성능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은 매력적이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병렬화에 맞을까. 조사처럼 독립적으로 나눌 수 있는 작업에는 여러 에이전트가 유리하다. 반면 하나의 코드베이스를 함께 고치는 일은 서로 다른 판단이 충돌하기 쉽다. Cognition도 공유 상태가 많은 코딩 작업에서는 단일 작업 흐름이 더 안정적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에이전트 수보다 조정과 검증이 성과를 좌우한다. 역할과 정보 공유 방식을 분명히 정하고 잘못된 결과를 빠르고 싸게 걸러내야 한다. 검증이 느리면 오류도 병렬로 증식한다.


에이전트에게 지갑이 생기면

에이전트끼리 가격과 거래로 일을 나누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Google의 AP2(에이전트 결제 프로토콜)는 암호 서명으로 구매 권한을 구분하고 Coinbase의 x402는 HTTP 요청 안에서 기계 간 결제를 처리한다. x402는 Base(Coinbase의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2026년 1분기까지 누적 거래 1억 건을 넘겼다.

그러나 거래가 많다고 실질적인 수요가 검증된 것일까. 초기 성장은 밈코인 발행 실험의 영향을 받았고 반복해서 돈을 낼 만한 서비스도 아직 많지 않다. 현재까지 확인된 것은 결제망의 처리 능력에 가깝다.

수요 검증과 별개로 돈이 걸리면 평가 지표를 속이는 편이 일을 제대로 하는 것보다 쌀 때 에이전트는 속임수를 택할 수 있다. 그래서 위조하기 어려운 신원과 결제 수단, 독립적인 평가, 잘못했을 때 손실을 지는 담보나 평판이 필요하다. 에이전트 경제의 성장은 기술만큼 제도에 달려 있다.


초지능은 분야별로 차례차례 온다

재귀적 자기개선은 코드 작성과 실험 자동화에서 먼저 나타나고 있다. Anthropic에서는 2026년 5월 기준 병합된 코드의 80% 이상을 Claude가 작성했다. 하지만 어떤 문제를 풀고 어떤 개선안을 채택할지는 여전히 사람이 결정했다. 실행이 빨라질수록 판단과 검증이 새로운 병목이 된다.

반면 물리적 확장은 더 느리게 이뤄진다.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는 2023년 23GW에서 2026년 42GW로 늘었지만 발전, 저장 설비의 전력망 연결 대기 물량은 2023년 말 기준 약 2,600GW에 달한다. 새 데이터센터가 전력망 연결 승인을 받는 데도 24~36개월이 걸린다. 발전소와 송전망을 짓는 시간을 소프트웨어처럼 단축할 수 있을까.

분야별 도입 속도 역시 검증 비용에 좌우된다. 수학과 코드는 답을 자동으로 확인하기 쉬워 수많은 후보를 빠르게 시험할 수 있다. 반면 화학, 재료, 임상 연구는 시료를 만들고 반응을 기다리며 결과를 측정해야 한다. 실험을 자동화해도 병목은 다음 단계로 옮겨간다.

따라서 초지능은 어느 날 모든 분야에 동시에 등장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먼저 코드와 수학에서 인간 조직을 넘고 시뮬레이션이 쉬운 공학을 거쳐 물질과 생명과학으로 번질 것이다.

그래서 하나의 기준일을 정하려는 시도는 변화가 먼저 나타난 영역과 아직 현실의 제약을 받는 영역 사이의 차이를 감춘다. 이후의 논쟁에서는 능력의 출현보다 그 능력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조건이 더 자주 쟁점이 될 것이다.


#에이전트#자동화#AI 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