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의 플랫폼 접근을 ‘사용자 행위’로 본 첫 항소심 판결… 에이전트 커머스 법적 경계 시험대에
2026년 8월 4일, 미국 제9순회 항소법원은 Amazon이 Perplexity AI를 상대로 제기한 예비 금지명령(preliminary injunction)을 파기했다. 이 사건은 에이전트형 AI(agentic AI)가 사용자 계정을 통해 이커머스 플랫폼에 접근하는 행위가 컴퓨터 사기 및 남용 금지법(CFAA) 위반에 해당하는지 여부를 연방 항소심 차원에서 처음으로 본격 다룬 사례다.
판결은 “접근(access)의 주체는 Perplexity가 아니라 사용자”라는 법리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이로써 에이전트 기반 쇼핑·자동화 도구의 법적 공간이 일부 열렸지만, 최종 본안 판결이 아니며 Amazon의 추가 대응 가능성이 남아 있다.
사건의 경과와 확인된 사실
Perplexity는 2025년 AI 기반 브라우저 ‘Comet’을 출시했다. Comet에는 사용자가 지시한 작업을 수행하는 ‘Assistant’라는 선택적 에이전트 기능이 포함돼 있으며, 이를 통해 Amazon 계정에 로그인해 상품 검색·장바구니 담기·구매까지 자동화할 수 있다. 브라우저는 사용자 기기에서 실행되고, Assistant가 페이지 스크린샷을 Perplexity 서버로 전송한 뒤 지시를 받아 다음 행동을 수행한다.
Amazon은 2025년 11월 소송을 제기하며, Perplexity의 에이전트가 자사 시스템에 무단으로 접근해 고객 데이터를 확보하고 쇼핑 경험을 저해한다고 주장했다. 2026년 3월 북부 캘리포니아 지방법원(Maxine Chesney 판사)은 CFAA 및 캘리포니아 주법인 CDAFA 위반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예비 금지명령을 발령했다. 제9순회는 항소 절차 중 이 명령을 일시 정지한 뒤, 8월 4일 3인 합의체(Milan D. Smith 주심, Eric C. Tung, John C. Hinderaker)가 만장일치로 명령을 파기하고 사건을 하급심으로 환송했다.
법원은 Amazon이 CFAA의 핵심 요소인 ‘무단 접근’을 입증할 가능성이 낮다고 판단했다. Assistant는 법적 인격이 아닌 ‘도구’이며, 실제 접근 주체는 이를 지시·운영하는 사용자라는 것이다. Perplexity 서버가 스크린샷을 받아 지시를 내리더라도, 이것이 Amazon 서버에 직접 진입하는 행위로 보기 어렵다고 명시했다. 규칙의 원칙(rule of lenity)도 적용해, 형사 성격이 강한 CFAA를 모호하게 확장 해석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핵심 법리: ‘접근’의 주체를 어디에 둘 것인가
사용자 중심 해석의 근거
- CFAA는 보호된 컴퓨터에 ‘무단으로 접근’해 정보를 획득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대법원 Van Buren 판결 이후 ‘접근’은 시스템 자체에 진입하는 행위로 좁게 이해된다.
- Comet은 사용자 기기에서 로컬로 실행되며, Amazon 페이지 요청과 응답은 사용자 브라우저를 통해 이뤄진다. Perplexity는 사후적으로 스크린샷을 받을 뿐이다.
- 법원은 “Assistant는 도구이지, 법정 목적상 인격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사용자가 도구를 사용해 접근하는 경우, 도구 제작자가 접근 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논리다.
형평성 요소의 재평가
하급심이 Amazon의 회복 불가능한 손해와 형평성을 인정한 것과 달리, 항소법원은 다음을 지적했다.
- Amazon이 주장하는 쇼핑 경험 저하·보안 위험 등은 구체적 증거가 약하다.
- 금지명령이 Perplexity의 제품 운영을 과도하게 제한하고, 소비자 선택권과 신생 기술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 위법 가능성이 낮은 행위에 대한 금지명령은 공익에 부합하지 않는다.
심층 분석
에이전트·스타트업 진영의 시각
이번 판결은 에이전트 커머스와 브라우저 기반 자동화의 ‘법적 출발점’으로 평가된다. 사용자가 자신의 계정과 자격 증명을 바탕으로 에이전트를 운용하는 한, 플랫폼이 CFAA를 무기로 즉시 차단하기 어려워졌다는 의미다. EFF는 이 판결이 “웹 브라우저를 만드는 행위 자체가 CFAA 위반이 아니다”라는 상식적 해석을 확인했다고 환영했다. 특히 사용자가 도구를 통제하는 구조를 유지할 경우, 에이전트 개발사가 직접 접근 책임을 지지 않을 여지가 열렸다.
동시에 이 판결은 ‘기술 설계’의 중요성을 부각시킨다. 사용자 기기에서 실행되고, 서버 간 직접 통신을 최소화하며, 사용자 지시를 명확히 받는 아키텍처가 법적 방어에 유리하다는 신호가 됐다.
플랫폼 사업자 관점의 우려와 대응 전략
Amazon은 “판결에 동의하지 않으며 다음 단계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플랫폼 입장에서는 에이전트가 광고·추천·업셀 구조를 우회하고, 고객 데이터를 간접적으로 활용하며, 보안·남용 위험을 높일 수 있다는 점이 핵심 불만이다. CFAA 경로가 막히더라도, 이용약관 위반, 계약 청구, 기술적 차단(봇 탐지·CAPTCHA 강화), 데이터 남용 관련 다른 청구 등으로 대응할 여지가 남아 있다.
실제로 이번 판결은 CFAA의 ‘접근’ 요소에 한정된 것이다. 의도적 사기나 데이터 부정 사용 등 다른 이론이 본안에서 다시 다뤄질 수 있다. 플랫폼들은 약관에 에이전트 사용을 명시적으로 금지하거나, 사용자 동의 구조를 더 엄격히 설계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가능성이 크다.
규제·정책과 기술 진화의 교차점
1986년 제정된 CFAA를 2020년대 에이전트 AI에 적용하는 과정 자체가 이번 사건의 본질이다. 법원은 에이전트 AI에 대한 기존 판례가 거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형사법의 확장을 경계했다. 사용자가 자신의 도구를 사용하는 행위를 범죄화할 경우, 일반 이용자까지 형사 책임에 노출될 위험이 있다는 점도 고려됐다.
이 판결은 ‘에이전트 = 사용자 대리인’이라는 관점과 ‘에이전트 = 독립적 행위자’라는 관점 사이의 긴장을 드러낸다. 앞으로 에이전트가 더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다중 플랫폼을 넘나들며, 장기 메모리와 목표 지향적 계획을 수행하는 단계로 진화할수록, ‘사용자 통제’의 실질적 의미가 다시 시험받을 것이다.
향후 전망과 남아 있는 쟁점
이번 판결은 예비 금지명령에 대한 것이며, 본안 소송은 계속된다. Amazon은 전원합의체 재심리나 대법원 상고를 검토할 수 있고, 하급심에서 다른 청구를 강화할 수 있다. 동시에 유사한 분쟁이 다른 플랫폼·다른 에이전트 사이에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법적 경계를 넘어, 실질적 경쟁의 장은 기술과 제품 설계로 이동할 전망이다. 플랫폼은 에이전트 친화적 API를 열어 파트너십을 구축할지, 아니면 기술적·계약적 장벽을 높일지 선택해야 한다. 에이전트 개발사는 사용자 통제권을 명확히 유지하면서도, 플랫폼의 정당한 보안·비즈니스 요구를 존중하는 설계를 고민해야 한다.
결국 이 사건은 ‘누가 웹을 통제하는가’라는 오래된 질문을 에이전트 시대에 다시 던지고 있다. 사용자가 선택한 도구가 자신의 계정으로 행동하는 것을 허용할 것인지, 아니면 플랫폼이 그 경계를 정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이제 막 시작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