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교실에 들어온 뒤 학교는 사용법보다 금지 기준부터 묻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작 그 기준으로 평가받고 처벌받는 학생에게는 규칙을 설계할 권한이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규칙을 만들지 않은 어른들
2026년 7월, 미국 50개 주를 대표한 고교생 98명이 보스턴에 모였다. 이들은 사흘 동안 토론해 학교의 AI 사용 규칙을 만들었다. 법안은 케네디 인스티튜트의 상원 회의장 복제 공간에서 82대 16으로 통과했다. 법적 효력은 없지만 전문을 학교 지도자 1만여 명에게 배포한 곳은 학교 행정가 단체 AASA(The School Superintendents Association)다.
학생들이 직접 나선 이유는 학교에 뚜렷한 기준이 없기 때문이다. 공식 AI 지침을 받았다는 공립학교 교사는 18%에 불과했다. 학업 진실성(academic integrity) 정책이 있다는 교사도 34%뿐이었다. 같은 AI 사용이 수업에 따라 학습 보조가 되기도, 부정행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판정과 처벌까지 사라지지는 않는다. AI 탐지기 7종을 시험했더니 비원어민 영어 작문의 61%가 AI 글로 잘못 분류됐다. 제도가 늦어지는 동안 그 피해는 어디로 갔을까. 학생의 성적과 징계로 나타났다.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선
- 채점 대상 시험과 글 생성에는 AI를 쓸 수 없다.
- 9학년부터는 교사의 허가를 받아 브레인스토밍이나 편집에만 활용할 수 있다.
- 사용 사실을 밝히고 필요하면 구술 답변이나 필기시험으로 실제 이해도를 증명해야 한다.
학생들이 만든 규칙은 생각보다 엄격하다.
학생들은 AI의 편리함과 유혹을 잘 알기에 미리 사용 범위를 제한했다. 소셜미디어와 스마트폰의 부작용을 뒤늦게 논의했던 경험도 영향을 줬다. 기술이 퍼진 뒤 절제만 요구하면 책임과 피해는 개인의 몫이 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규칙을 직접 만들면 지키려는 의지도 커진다. 사람은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 참여했을 때 그 권위를 더 인정한다. 예일대 법학자 톰 타일러의 절차적 정의 연구 결과다. 일방적인 통보와 토론을 거친 합의는 받아들이는 방식부터 다르지 않은가.
생각을 돕는 AI, 생각을 대신하는 AI
학생들은 AI가 생각을 돕는 것과 대신하는 것을 구분했다. 브레인스토밍과 편집은 허용하되 문장 생성을 막은 이유다. 답을 직접 만드는 어려움 속에서 이해가 깊어지고 무엇을 모르는지도 드러난다.
실제로 MIT 미디어랩의 소규모 실험에서도 LLM으로 에세이를 쓴 집단의 83%가 자기 글의 문장 하나를 정확히 인용하지 못했다. 아직 동료심사(peer review)를 거치지 않은 연구라 단정하기는 이르지만 이 집단의 글에 대한 소유감과 회상 능력이 가장 낮았다는 결과는 학생들의 우려와 일치한다.

그래서 학생 법안은 탐지기보다 작성 과정을 보도록 했다. 사용 사실을 밝히고 제출한 내용을 자기 말로 설명하게 한다. 의심 사례는 학교 관계자 두 명이 함께 검토하며 학생에게 이의 제기 기회도 준다. 소프트웨어의 확률값만으로 부정행위를 확정하지 않는다.
정서 지원에는 더 분명한 제한을 뒀다. 미국 청소년의 72%가 AI 컴패니언(사람처럼 대화하는 AI 챗봇)을 써봤고 이 중 약 3분의 1은 중요한 문제를 사람 대신 AI와 상의했다. 하지만 챗봇이 정신건강 위기의 신호를 놓친 사례도 있다.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돌보는 책임까지 자동화해서야 되겠는가. 학생들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봤다.
교칙의 주인을 교실로 돌려보내라
좋은 규칙은 당사자가 이해하고 고칠 수 있어야 오래간다. 실제로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경제학자 엘리너 오스트롬은 오래 유지된 공유자원(CPR) 제도를 연구해 이용자가 규칙 수정과 감시에 참여할 때 제도가 더 안정적으로 작동한다고 정리했다.
학생 법안도 학교가 AI 지침과 거부 절차를 미리 공개하고 교사가 과제별 허용 범위를 밝히도록 했다. 징계와 이의 제기 절차도 사전에 알린다. 교사의 수업 재량은 보장하되, 성적이나 징계를 AI만으로 결정하지는 못한다.
이처럼 학교의 AI 규칙은 학생과 교사가 초안을 만들고 행정기관이 법률과 집행 가능성을 검토하는 편이 낫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규칙을 만드는 사람과 평가받는 사람이 멀어질수록 정책은 현장보다 조직 보호에 치우치기 쉽지 않은가.
결국 학생들은 자신이 쓴 문장을 기억하고 설명할 수 있는 학습과, 위기의 순간 AI가 아닌 사람에게 도움받을 수 있는 관계를 지키려 했다. 82대 16이라는 표결은 이 두 가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에서 AI의 편리함을 받아들이겠다는 선택이었다.
규칙에 참여할 기회와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기회는 서로 떨어진 절차가 아니라, 학생을 관리 대상이 아니라 판단에 참여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데서 함께 출발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