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진서 9단의 2승 1패를 “인간의 창의성이 AI를 넘어섰다”는 이야기로 포장하면, 정작 승리의 핵심은 놓치게 되는 것 아닐까. 두 점 접바둑은 신진서 9단이 약 18집 반을 앞선 채 시작하는 조건이었다. 카타고가 표시한 초기 승률도 99%였다. 인간이 AI보다 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이미 가진 우위를 세계 최강 AI 앞에서 끝까지 보존할 수 있는가를 시험한 승부에 가깝다.
그조차 쉽지 않았다. 신진서 9단은 대국 전 비슷한 AI와의 연습에서 두 점으로는 한 판도 이기지 못했고, 세 점으로는 한 번도 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두 점은 승패의 경계였다. 카타고에는 매 수 20초와 RTX 3090 네 장이, 신진서 9단에게는 5시간이 주어졌다. 인간이 속도가 아니라 시간 배분과 판의 설계로 맞서야 하는 조건이었던 셈이다.
1국: 준비했던 것에 실패
카타고는 세 번째 수에 화점에서 세 칸 높은 곳을 두었다. 걸침도 갈라침도 아닌 수였다. 신진서 9단은 “한 달 준비한 것이 두 번째 수 만에 날아갔다”고 했다. 이후 중앙의 백 대마를 공격할 수 있다고 판단했지만, 카타고는 그 돌이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계산했고, 102수 만에 형세가 뒤집혔다.
낯선 수 하나가 신진서 9단의 준비된 의사결정 구조를 흔든 듯하다. 우위를 지키던 자세에서 상대를 잡아야 한다는 자세로 넘어간 것으로 보인다. 앞선 사람이 스스로 변수를 늘린 순간, 카타고의 압도적인 탐색 능력이 살아나기 시작한 게 아닐까.

2국과 3국: 선택지의 수를 줄이다
2국에서 신진서 9단은 우하귀 삼삼 침입을 기다렸다가 53수까지 이어지는 초대형 정석으로 들어가, 불과 5분 만에 바둑판의 4분의 1을 사실상 확정지었다. 해설진이 주목한 이유도 같았다. 판이 줄어든 만큼 미래의 변수도 줄었다. 이는 카타고보다 더 많은 수를 읽으려는 전략이 아니라, 읽어야 할 수 자체를 없애는 전략에 가깝다.
그렇다고 무조건 피한 것은 아니다. 160수에는 중앙을 끊어 전투를 선택했다. 승률이 한때 89%까지 내려갔지만, 피할 수 없는 승부처에 계산 자원을 집중해 4집 반을 남겼다. 3국에서는 그 원칙을 더 밀어붙인 것으로 보인다. 초반부터 집을 확보하고 80수의 공격을 영토로 전환한 뒤, 반복해서 계가하며 99%를 끝까지 지켰다. 결과는 11집 반 승이었다.

인간의 무기는 창의성이 아니라 불확실성의 통제
카타고는 신경망이 유망한 수를 고르고 몬테카를로 트리 탐색으로 이후 변화를 계산한다. 승률뿐 아니라 집 차이도 함께 최적화해 접바둑에서도 강하다. 이런 상대에게 계산량으로 정면으로 맞붙는 것은 답이 되기 어렵다.
신진서 9단이 이긴 이유를 이 세 가지로 해석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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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할 수 있는 구간은 정석으로 잠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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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위가 있을 때는 성과보다 변동성을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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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워야 할 한 지점에만 시간과 집중력을 몰았다.
신진서 9단은 최종국 뒤 “내 스타일을 완전히 버리고 수비 지향적으로, 오직 이기기 위한 바둑을 두는 게 힘들었다”고 말했다. 자신의 장점을 더 강하게 밀어붙였다기보다, 상대의 장점이 발휘되지 않도록 자신의 본능을 억제한 셈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교훈을 떠올릴 수 있다.
AI보다 더 많은 답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라, 어떤 문제를 닫아도 되는지 결정하고, 실패 경로를 미리 제거하며, 남은 불확실성 가운데 어디에 인간의 시간을 써야 하는지 정하는 사람이 강해진다.
AI를 이기는 방법은 더 영리한 한 수를 찾는 데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어쩌면 AI가 잘하는 무한한 탐색을 애초에 허용하지 않도록, 판을 먼저 설계하는 데 있는 것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