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채용 과정에서 AI를 도입하면서 지원자와 기업 양측이 동일한 도구를 사용하게 된 상황은, 기존에 존재하던 평가 신호의 신뢰성을 근본적으로 흔들고 있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 그리고 실시간 면접이라는 전통적 관문들이 AI에 의해 최적화되거나 우회되면서, 기업이 지원자를 판단하는 데 의존해 온 정보의 질과 양이 동시에 변화하고 있다. 이 변화는 단순히 기술 도입의 결과가 아니라, 채용이라는 상호 탐색 과정 자체의 구조가 달라지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지원자와 채용팀이 동시에 AI를 쓰면

2026년 기준 기업 인사 담당자의 87%가 채용 과정에서 AI를 활용한다. 이 가운데 82%는 이력서 검토를 AI에 맡긴다. 포춘 500대 기업의 97.8%는 지원자 추적 시스템을 통해 1차 심사를 이미 자동화했다. 채용의 입구를 지키는 주체가 사람에서 알고리즘으로 넘어간 것이다.

구직자 측도 같은 도구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구직자의 51%가 챗GPT로 이력서를 작성했고, 72%는 자기소개서를 AI로 만들었다. 이들 중 70%는 이전보다 높은 응답률을 경험했고, 59%는 실제 합격으로 이어졌다고 밝혔다. 지원자 역시 AI를 통해 필터를 통과할 가능성을 높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인사 담당자의 80%는 AI가 작성한 자기소개서에 거부감을 느낀다고 답했다. 39%는 AI 문장이 티 나는 경우를 탈락 사유로 꼽았다. 그러나 AI로 다듬은 지원서의 합격률이 더 높다는 결과도 동시에 보고된다. 채용 담당자가 느끼는 불편함과 실제 통과 여부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는 셈이다. 이 간극은 AI 필터가 정확히 어떤 기준으로 지원자를 선별하는지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과정에서 지원자와 기업 사이를 오가는 정보의 총량은 줄어든다. 이력서에 담겨야 할 지원자의 구체적인 역량과 경험 정보는 오히려 획일화되는 경향을 보인다. 대신 그 문장이 AI 필터나 ATS를 통과하도록 설계된 패턴이 정교해진다. 채용은 본래 지원자와 채용팀이 서로의 필요를 탐색하는 과정이었으나, 이제는 두 알고리즘이 서로를 대상으로 최적화하는 대결 구도로 바뀌었다. 그 결과 실제 정보 교환은 줄고, 형식적 통과 여부만 남는 구조가 자리 잡는다.

붉은 여왕

1973년 진화생물학자 리 반 발렌은 화석 기록을 분석하던 중 한 가지 규칙성을 발견했다. 한 계통이 멸종할 확률은 그 종이 존재해온 기간과 무관하게 시간이 지나도 거의 일정하게 유지됐다. 기후나 지형 같은 외부 조건이 개선돼도 멸종 위험은 줄지 않았다. 그는 그 원인을 종 자체가 아니라 종을 둘러싼 경쟁자·포식자·기생체와의 공진화에서 찾았다. 각 종은 상대의 진화 속도에 맞춰 계속 적응해야만 기존의 생존 확률을 유지할 수 있다. 그는 이 현상을 붉은 여왕 가설이라고 이름 붙였다.

채용 시장에 이 구조를 대입하면 지원자의 문장 최적화와 기업의 스크리닝 정교화는 전형적인 붉은 여왕 경쟁이다.

지원자가 AI로 이력서를 더 정교하게 다듬을수록 기업은 더 강력한 필터를 도입하려 한다. 필터가 정교해지면 지원자는 다시 그 필터를 통과하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추가 자원을 투입한다. 양쪽 모두 작년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만, 지원자가 다른 지원자 대비 상대적 우위를 얻는 정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기업이 우수한 인재를 선별하는 정밀도 역시 실질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이 경쟁의 진짜 비용은 승패가 아니라 소모에 있다. 지원자는 문장 다듬기에 몇 주씩 시간을 쓰고, 기업은 스크리닝 도구 구매와 튜닝에 예산을 투입한다. 그 자원은 정작 이 지원자가 해당 업무를 잘 수행할 수 있는지를 판단하는 데는 거의 배분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채용 과정 전체의 효율은 떨어지고, 양측은 더 많은 자원을 들이면서도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매칭 품질을 유지하는 데 머문다.

이메일도 비슷했다

1990년대 말 등장한 베이지안 스팸 필터는 단어 출현 확률만으로 스팸을 상당히 정확하게 걸러냈다. 스패머들은 필터가 단어를 통째로 인식하지 못하도록 이미지를 활용하거나 HTML 태그를 조작하는 방식으로 즉시 대응했다. 이러한 우회 수법은 필터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며칠 안에 새롭게 등장했다. 한쪽의 기술적 개선이 다른 쪽의 새로운 회피 전략을 곧바로 유발하는 순환이 20년 가까이 이어졌다.

결국 이메일 생태계는 문장 내용 자체의 정직성을 판별하는 시도를 사실상 포기했다. SPF·DKIM·DMARC 같은 발신자 인증 체계가 표준이 된 것은 텍스트 안에서 발신자의 진위를 끝내 가려낼 수 없다는 업계의 판단이 반영된 결과다. 현재의 스팸 방어는 문장에 무엇이 쓰여 있는지가 아니라 누가 보냈고 어떤 경로로 왔는지를 검증하는 다층 구조로 작동한다.

채용의 텍스트 대결도 같은 방향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이력서와 자기소개서에서 AI 작성 흔적을 탐지하려는 시도는 초기 스팸 필터가 콘텐츠 자체를 판별하려 했던 전략과 구조적으로 동일하다. 스팸 필터가 내용 분석에서 벗어나 발신자 인증으로 이동했듯, 채용에서도 문장 판별 게임 자체가 비효율적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누가 이 사람을 보증하는지에 무게가 옮겨갈 수 있다. 스팸 필터의 20년 역사는 그 전환 경로를 미리 보여주는 사례다.

필터가 과연 정교해졌을까

2018년 아마존은 10년치 이력서 데이터로 훈련한 채용 AI를 폐기했다. 그 데이터의 대다수가 남성 지원자였기 때문에 시스템은 남성 엔지니어들이 자주 사용하는 특정 동사 패턴을 선호했다. women’s라는 단어나 여자대학 이름이 포함된 이력서에는 자동으로 감점이 부여됐다. 아마존은 편향을 수정하려 했으나 다른 곳에서도 동일한 문제가 반복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프로젝트를 중단했다.

HireVue의 안면·음성 분석 채용 도구도 유사한 한계를 드러냈다. 2019년 미국 전자프라이버시정보센터의 민원 이후 HireVue는 2021년 안면분석 기능을 완전히 폐지했다. CEO가 밝힌 바에 따르면 비언어적 데이터가 예측 정확도에 기여하는 비중은 대부분 직군에서 약 0.25% 수준에 불과했다. 표정과 음성을 분석한다는 기술이 실제 직무 성과 예측에 거의 기여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AI 도입 이전부터 존재했다.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이 정리한 바에 따르면 표준적인 비구조화 면접의 예측 타당도는 상관계수 약 0.28에 그친다. 면접관의 주관적 인상이 실제 직무 성과를 맞히는 능력이 우연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의미다. 반면 미리 정해진 항목을 개별적으로 채점한 뒤 종합하는 구조화 면접은 상관계수가 0.7대까지 상승한다. 판단의 정교함은 AI 사용 여부가 아니라 판단 절차 자체가 구조화되어 있는지에 달려 있었다.

세 사례를 종합하면 붉은 여왕 경쟁에서 예상되는 결과가 나타난다. 필터가 아무리 빠르고 대규모로 작동해도 그것이 원래 예측하려던 대상과의 연결고리는 처음부터 약했다. AI가 여기에 더한 것은 판단의 정밀도가 아니라 처리 속도와 규모뿐이다. 기존의 약한 예측 구조를 더 빠르고 넓게 적용한 결과, 비용은 증가했으나 채용 결정의 품질은 실질적으로 개선되지 않았다.

두 번째 유형의 대필

2025년 7월부터 2026년 1월까지 진행된 화상 면접 1만 9,368건을 분석한 결과 전체의 38.5%에서 부정행위 의심 정황이 포착됐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 면접에서는 그 비율이 48%까지 상승한 반면 영업직에서는 12%에 그쳤다. 텍스트나 코드로 답을 내는 직군일수록 AI 개입이 더 깊게 나타났다. 2025년 6월부터 12월 사이 기술직 면접에서 실시간 AI 도구 사용 비중은 15%에서 35%로 반년 만에 두 배가 됐다.

부정행위 수법은 비교적 단순하다. 별도 프로그램이나 숨겨진 브라우저 창이 시스템 오디오로 면접관의 질문을 받아 적어 LLM에 전달한다. 화면 위 보이지 않는 레이어에 생성된 답이 표시되면 지원자는 웹캠을 바라보는 척하면서 그 내용을 읽는다. 이 방식으로 실시간 대화처럼 보이는 응답을 만들어낼 수 있다.

걸려도 불이익이 크지 않다는 점이 확산을 부추긴다. 부정행위로 적발된 지원자의 61%가 여전히 합격 기준선을 넘겨 다음 라운드로 진출했다. 완전히 자연스러운 답변보다 어색한 수준의 대필조차 통과선을 넘기에는 충분했다. 스크리닝 단계에서 시작된 붉은 여왕 경쟁이 실시간 면접까지 확장된 것이다.

이 변화는 면접이 사람 대 사람의 직접적인 판단이라는 전제를 더 이상 유지하기 어렵게 만든다.

텍스트에서 시작된 대결이 이미지, 음성, 실시간 발화로 계속 확대되어 온 흐름을 고려하면 남은 것은 화면을 통한 모든 상호작용이 같은 경쟁에 편입되는 시간 문제다. 결국 채용 과정에서 신뢰할 수 있는 인간적 신호를 확보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게임의 룰은 달라진다

일부 기업들은 필터를 더 정교하게 만드는 대신 평가가 이루어지는 장 자체를 바꾸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구글과 맥킨지 등은 최종 평가 단계에 대면 방식을 다시 필수로 도입했다. 원격 도구가 개입할 수 없는 물리적 공간으로 평가를 되돌린 것이다. 소프트웨어 회사 리니어는 후보자에게 2–5일치 급여를 지급하며 실제 팀과 실제 코드베이스에서 함께 일하게 하는 유급 워크트라이얼을 운영한다. Gumroad는 4–6주 계약직 형태로 채용해 실제 로드맵 과제를 맡기고, 그 과제가 트라이얼러용임을 명시한다.

추천 채용의 데이터는 이 방향의 효과를 보여준다. 레퍼럴로 입사한 사람의 1년 잔존율은 46%로 공고 지원자의 33%보다 높다. 4년 이상 근속 비율은 45% 대 25%로 차이가 더 벌어진다. 성과 또한 33% 더 높고, 지원 대비 채용 전환율은 28.2%로 공고 지원의 2–5%와 비교 자체가 어려운 수준이다. 이 신호가 강한 이유는 이미 신뢰 관계가 검증된 누군가가 자기 평판을 걸고 보증한다는 데 있다.

대면 평가 재도입, 유급 워크트라이얼, 레퍼럴은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된 지점을 겨냥한다. 실물 결과물, 함께 보낸 시간, 이미 쌓인 평판처럼 AI가 대신 생성하기 어려운 신호로 평가의 중심을 옮기는 것이다. 이력서와 면접 답변이라는 텍스트 신호가 AI로 대체되는 상황에서, 사람과 사람이 실제로 만나는 지점은 화면 앞의 문답이 아니라 실제 업무를 함께 수행한 기간이나 평판을 건 보증 쪽으로 이동하고 있다.

붉은 여왕 경쟁에서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보다 빨리 달리는 게 아니라 아예 다른 경기장으로 옮겨가는 것뿐이다.

결국 기업이 마주한 선택은 필터를 얼마나 더 정교하게 만들 것인가가 아니라, 평가 자체를 어떤 자리에서 수행할 것인가로 귀결되고 있다. AI가 생성하고 AI가 걸러내는 순환이 계속될수록, 조직은 점점 더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 — 실제로 함께 일해본 결과, 이미 검증된 관계가 걸린 평판, 물리적 공간에서 주고받는 판단 — 쪽으로 평가의 무게를 옮기고 있다. 이 이동이 일시적인 반응인지, 아니면 채용에서 기술이 감당할 수 있는 경계가 명확해지는 과정인지가 앞으로 조직이 치러야 할 비용의 크기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ai-hiring#red-queen-effect#recruitment-screening#work-trial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