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기술은 종종 익숙한 감각을 빌려 쓴다. 그런데 친숙함을 만드는 장치가 눈에 익는 순간, 안심은 의심으로 바뀐다.

모두가 따뜻해지면

AI 기업의 디자인이 빠르게 닮아가고 있다. Anthropic은 세리프, 산세리프, 모노 전용 서체에 점토와 양피지색을 쓴다. OpenAI도 2025년 리브랜드에서 미세한 불완전함을 살린 서체를 선보이고 실사 사진과 Sora 텍스처를 함께 배치했다. Anthropic의 서체는 종이와 지식을, OpenAI의 실사 이미지는 연산보다 성장을 떠올리게 한다. 두 회사 모두 사람의 손길을 빌렸다.

하지만 이런 모방은 드물 때만 힘을 발휘한다. 독 없는 나비가 독 있는 나비의 무늬를 따라 하는 경우에도, 모방자가 많아지면 보호 효과가 떨어졌다. 실제로 두 종의 수가 비슷한 지역에서는 모방자가 더 자주 공격받았다.

AI 디자인도 마찬가지다. 세리프와 흙빛 화면이 넘쳐나면 더는 인간적인 인상을 주지 못한다. 오히려 인간처럼 보이려는 공식으로 읽힌다. 생성형 AI의 결과가 등대, 성당, 화려한 실내 등 소수의 이미지로 수렴하고 AI의 도움을 받은 작가들의 이야기가 좋은 평가를 받으면서도 서로 비슷해진 것도 같은 문제다. 개별 결과는 나아져도 전체 풍경은 단조로워진다.


첫눈엔 정성, 스무 번째엔 템플릿

익숙한 디자인은 이해하기 쉽고 편안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처리 유창성’으로 설명한다. 쉽게 처리되는 대상을 더 아름답고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연구도 있다. 그래서 따뜻한 색과 고전적인 활자는 처음에는 정성스럽게 느껴진다.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는 등불이 사람을 거칠 때마다 조금씩 어두워진다

다만 반복될수록 이 인상은 옅어진다. 첫 번째 AI 사이트의 갈색 세리프는 새롭지만 스무 번째에는 템플릿처럼 보인다. 자연을 더 사실적으로 보여준다고 효과가 계속 커지는 것도 아니다. 고등교육 학생을 다룬 24개 연구를 검토한 결과, VR 자연은 평면 화면의 자연 이미지보다 불안, 기분, 스트레스 개선에서 뚜렷한 우위를 보이지 않았다. 실제 자연에는 냄새와 온도, 움직임과 장소의 경험이 함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AI가 만든 흔적에도 빠르게 익숙해지고 있다. 한 조사에서는 83%가 AI로 의심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고 답했고 어색한 동작과 목소리, 감정 부족을 단서로 꼽았다. 같은 글도 AI 생성 표시가 붙으면 정확도 평가가 낮아진다. 출처를 숨기면 신뢰를 잃고 밝히면 편견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다.


오래가는 픽셀에는 이유가 있다

초기 아이폰의 캘린더에는 가죽과 박음질이 있었고 메모장은 종이를 닮았다. 낯선 터치스크린의 사용법을 익숙한 사물로 알려주었다. 사용자가 화면에 익숙해지자 이 장식은 역할을 잃었다. 애플의 전 디자인 총괄 조너선 아이브가 물리적 은유는 오래가기 어렵다고 본 까닭도 화면 안에는 실제 가죽과 종이가 없다는 불일치 때문이었다.

AI 콘텐츠에 얹는 종이 질감과 필름 그레인도 같은 기준으로 본다. 장식이 기능을 돕는가, 아니면 인간적으로 보이기 위한 위장에 그치는가.

따뜻한 미학이 흔해지면서 굵은 테두리, 시스템 글꼴, 강한 색을 쓰는 브루탈리즘과 안티디자인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이것도 피그마 컴포넌트로 복제되는 순간 또 하나의 공식이 된다. 세리프를 거친 테두리로 바꾸는 것만으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모양이 아니라 선택의 이유가 갈림을 만든다.

긴 글을 편하게 읽히려고 세리프를 쓰는 데는 기능이 있다. 인간적인 분위기를 내려는 세리프에는 겉모습만 남는다. 같은 픽셀이라도 전자는 오래가고 후자는 유행과 함께 낡는다.


디자인의 이유만 남겨라

쉽게 만드는 표면은 오래도록 특별하지 않다. 값비싼 물건이 흔해지자 지위 경쟁이 교육과 건강, 지식과 경험으로 옮겨갔다는 관찰은 디지털 디자인에도 들어맞는다. 누구나 곧바로 만드는 세리프 로고와 자연 사진은 더 이상 시간이나 안목의 증거가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을까. 한 사이트의 요소를 다른 곳으로 옮겨 보면 드러난다.

  • 어디에 붙여도 자연스러운 요소는 유행에 가깝다.
  • 옮기는 순간 의미와 기능을 잃는 요소는 그 콘텐츠만의 선택이다.

성장과 부패, 계절을 다룬 글의 식물 이미지는 논지와 연결돼 있다. 반면 차가운 인상을 피하려고 넣은 숲 사진은 어느 AI 회사나 블로그에도 붙고 빼도 내용이 달라지지 않는다. 인공적인 표현도 글의 생성 방식을 드러내기 위해 썼다면 이유가 있지만 단지 유행이라면 금세 복제된다.

생성 비용이 0에 가까워질수록 복사 가능한 표면은 더 빨리 평균이 된다. 결국 희소한 것은 새로운 스타일이 아니라, 특정한 내용과 조건에서만 성립하는 결정이다. 다른 곳에도 쉽게 옮겨 붙는 장식을 하나씩 덜어내면 끝까지 남는 것이 그 디자인의 이유다.

다음에 따뜻한 화면을 마주치면 첫인상은 전과 같지 않다. 보기 좋은 장식보다 없어졌을 때 무엇이 달라지는지가 먼저 보인다.


#AI 산업#창작#AI 글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