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ude가 쓴 논문이 익명 심사를 통과했다

2026년 8월 《Philosophy & Public Affairs》는 Simon Goldstein의 논문을 게재했다. 논문의 문장 대부분은 Claude가 썼지만 익명 심사를 통과했다. 투고문의 약 95%를 거부하는 저널 이 기존 기준으로는 출판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Goldstein은 AI 사용을 숨기지 않았다. 아이디어 구상과 개요, 초고와 심사 답변에서 AI가 맡은 부분을 별도 보고서에 공개했다. 편집진도 이를 알고 출판을 결정했다.

그러나 열흘 뒤 저널은 AI가 상당 부분 작성한 논문의 투고를 금지했다. 연구 과정에서는 AI를 쓸 수 있지만 집필에 사용했는지는 신고하게 하고 탐지 소프트웨어로 확인하겠다는 정책이었다. 저널의 기능은 좋은 지식을 출판하는 일과 유능한 연구자를 인증하는 일로 나뉜다. 새 정책 은 두 번째 기능을 지키려는 조치였다.

두 기능은 더는 하나의 절차로 해결되지 않는다. Goldstein의 논문은 저널의 품질 심사를 통과했다. 하지만 게재 실적이 저자의 독자적인 집필 능력까지 보증한다고 보는 순간, 같은 논문이 문제가 됐다. 좋은 논문을 고르는 기준과 유능한 연구자를 가리는 기준을 나누지 않은 데서 모순이 생겼다.


탐지기는 사용이 아니라 편집 솜씨를 잰다

완성된 원고에서 AI 흔적을 찾는 탐지기는 실제 사용 여부보다 편집 정도에 크게 좌우된다. 한 연구에서 세 도구가 AI 글을 AI로 판정한 비율은 손대지 않은 AI 생성 글에서 50.0~92.5%였다. 반면 사람이 쓴 글을 AI가 가볍게 다듬은 글에서는 판정 비율이 3.0~24.8%로 낮았다. 인간이 쓴 글도 같은 도구들이 1.6~6.5%는 AI 글로 분류했다. 사람의 판별 정확도도 19%에 그쳐 재검토로 오류를 보완하기 어려웠다.

탐지를 통과하려면 AI를 쓰지 않는 태도보다 전형적인 AI 문체를 지우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 5,114개 저널의 논문 520만 편을 분석한 연구 를 보면 AI 규정의 유무와 추정 사용량 사이에 유의한 차이가 없어, 규정의 억제 효과도 뚜렷하지 않았다. 반면 2023년 이후 논문 75,172편 가운데 사용 사실을 밝힌 논문은 76편, 0.1%뿐이었다.

공시에는 평판 비용도 따른다. 13개 실험에서는 AI 사용을 공개한 전문가와 조직에 대한 신뢰가 낮아졌으며 자발적 공시와 의무 공시 모두 같은 경향 이 나타났다.

금지, 공시, 탐지를 결합하면 정직하게 신고한 사람이 오히려 불리해지는 구조가 생긴다. 규정을 지켜 사용 사실을 밝힌 저자는 평판 위험에 노출된다. 신고하지 않은 사람 가운데서는 흔적을 잘 지우지 못한 사람만 탐지될 가능성이 크다. 능숙하게 편집하고 신고하지 않은 사용자는 두 장치를 모두 통과한다. 이 체계는 AI 사용자를 공평하게 가리기보다 정직하거나 미숙한 사용자만 골라낸다.


개요만 AI에게 받고 문장은 직접 쓰면 그만이다

N. Ángel Pinillos는 정책의 경계가 얼마나 쉽게 우회되는지 지적한다. AI에게 반례와 예상되는 반론을 개요로 받은 뒤 저자가 문장만 직접 쓰면 원고에는 탐지할 AI 문체가 남지 않는다. 게다가 연구 단계의 AI 사용은 새 정책도 허용한다.

연구 보조는 허용되고 집필은 금지되지만, 그 경계가 철학 능력의 경계와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철학자의 능력은 개념과 전제를 선택하고 반례의 힘을 판단하며 반론에 맞춰 논지를 수정하는 데서 드러난다. 문장 표현도 사고의 일부지만, 문장을 누가 처음 생성했는지만으로 이 모든 것을 측정할 수는 없다.

Goldstein의 기록에서도 AI는 논지 확장과 심사 대응에 참여했고 사람은 수백 건의 의견을 남기며 무엇을 채택하고 버릴지 결정했다. 그의 역량을 평가하려면 AI가 쓴 문장의 비율보다 그 선택과 수정의 이유를 물어야 한다.

LLM 사용을 예외로만 보기도 어렵다. PubMed Central의 어휘 변화를 분석한 연구는 2025년 말 논문의 89%에서 LLM 관련 어휘가 예상보다 많이 나타났다고 추정했다. 이 수치를 곧 AI 사용이나 부정행위 비율로 보기는 어렵다. 다만 학술 글쓰기 관행이 넓게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런 관행을 일률적으로 금지하고 원고의 흔적만 검사하면 같은 정도로 AI를 써도 사실대로 밝힌 사람은 제재를 받고 편집으로 흔적을 지운 사람은 빠져나간다.

이에 대해 철학자 Daniel Muñoz는 철학의 목적에 인간의 지혜와 판단력을 기르는 일도 포함되며 그 역량은 직접 철학을 해야 생긴다고 반박한다. AI 의존이 훈련을 약화한다는 우려는 교육과 연구 과정에서 다뤄야 한다. 그러나 그 우려가 있다고 해서 완성 원고의 문체 검사가 정확해지는 것은 아니다. 교육의 목표, 저널의 출판 기준, 채용 기관의 역량 평가는 서로 다른 층위의 문제다.


문체 검사 vs. 구조화된 구술 심사

Pinillos는 저술 방식과 무관하게 가장 좋은 논문을 싣고 연구자의 자격 인증은 다른 제도로 옮기자고 제안한다. 다만 게재 실적 중심 평가를 줄이는 데서 멈출 수는 없다. 대학과 연구기관에는 지원자의 능력을 직접 확인할 절차가 필요하다.

DORA에는 174개국의 개인과 기관 2만7,260곳이 이미 참여하고 있다. DORA는 저널 지표를 개인의 연구 능력과 동일시하지 말자는 취지로 만들어졌다. 연구평가 개혁 연합인 CoARA도 2026년 6월 840개 기관 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저널의 명성과 논문 수보다 연구 내용과 기여를 직접 평가하자는 원칙은 낯설지 않다.

학계는 저널에는 질 좋은 논문을 싣되, 채용과 승진에서는 지원자가 고른 논문을 놓고 구조화된 구술 심사를 한다. 박사 구술심사와 비슷하게 전제와 반례를 묻고 저자에게 선택의 이유와 수정 가능성을 설명하게 한다. 이 방식은 문체의 흔적이 아니라 저자가 논증을 이해하고 방어하며 수정할 수 있는지를 확인한다.

물론 구술 심사는 비싸고 평가자 편향에도 취약하다. 질문과 채점 기준을 표준화하고 장애와 언어,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그 비용을 피한 채 부정확한 탐지에 의존하면 AI 사용은 줄이지 못하고 공시만 위축된다. 저널은 논문의 질을 심사하는 자리이고 채용과 승진을 결정하는 기관은 그 사람의 이해와 판단을 직접 검증하는 자리다.


#AI 정책#AI 글쓰기#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