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모르게 AI를 따라 말한다

AI가 인간의 언어를 바꾼 흔적은 글보다 말에서 먼저 드러났다. 막스플랑크 인간개발연구소 연구진은 학술 유튜브 영상 약 36만 건과 대화형 팟캐스트 82만여 편을 분석했다. 그 결과 ChatGPT 공개 뒤 delve, boast, meticulous처럼 AI가 즐겨 쓰는 단어가 자발적인 대화에서도 뚜렷하게 늘었다.

단순한 유행은 아니었다. delve가 늘어나는 동안 뜻이 비슷한 examineexplore는 같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플로리다 주립대학교 연구진도 2,210만 단어 규모의 발화 자료에서 underscore는 늘고 동의어 accentuate는 정체된 현상을 확인했다. AI가 선호하는 단어만 선택적으로 퍼졌다.

실험에서도 챗봇과 잠깐 대화한 참가자들은 이후 새로운 상황에서 챗봇이 쓴 동의어를 골랐다. 496명 가운데 이런 규칙을 알아챈 사람은 3%뿐이었다.

교정된 원고에 AI 표현이 남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그 말을 받아들였다고 보기 어렵다. 하지만 대본 없는 팟캐스트에서는 화자가 순간적으로 단어를 고른다. 자발적 대화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났다. 언어가 인간에게서 기계로, 다시 기계에서 인간으로 오간다는 뜻이다. LLM은 이제 문화를 전달하는 역할에 그치지 않고, 사람들이 따르는 언어의 기준 역할까지 한다.


전문가의 언어가 된 챗GPT

AI 어휘는 모든 분야에 똑같이 퍼지지 않았다.

분야delve 사용
과학·기술 팟캐스트예상치보다 약 44% 높음
비즈니스31% 높음
교육늘어남
스포츠오히려 조금 줄어듦

변화는 학술과 가까운 분야에서 가장 먼저 나타났다.

사람은 전문적이고 중요해 보이는 화자를 더 쉽게 따라 한다. AI가 논문과 보고서의 교정자로 자리 잡자 특정 단어는 세련됨과 전문성을 드러내는 ‘권위 방언’이 됐다.

한 사람이 같은 열쇠를 문 여러 개에 차례로 넣어보는데, 화려한 문들에서는 매끄럽게 돌아가고 수수한 문들에서는 들어가지 않는다

학술계에서는 이미 변화가 크다. 튀빙엔대 연구자 드미트리 코박 연구진이 2010~2024년 PubMed 초록 1,5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2024년 초록의 최소 13.5%가 LLM의 손을 거친 것으로 추정됐다. 일부 분야에서는 그 비율이 40%에 달했다. 코로나19 때보다 더 큰 어휘 변화가 관측됐다.

논문과 기업 문서에서 AI 선호어가 전문적인 표현으로 인정받고, 그 문체에 익숙해진 사람이 일상에서도 같은 말을 쓴다. AI 교정과 거리가 먼 분야에서는 접촉부터 적다.

이 ‘권위 방언’은 중립적인 표준어가 아니다. 코넬 연구진이 미국과 인도 참가자 118명을 조사했더니 AI 자동완성은 두 집단의 글을 비슷하게 만들었고, 인도 참가자의 문화적 표현을 더 많이 지웠다. 디왈리를 설명한 글에서도 고유한 의례와 음식 대신 행복과 따뜻함 같은 보편적인 말이 남았다. 글이 더 일반적이고 미국식으로 바뀌었다.

같은 표현이 권위의 상징이면서 AI의 흔적이 될 수도 있다. delve는 AI 문체라는 인식이 퍼진 뒤 일부 분야에서 줄었지만 boast, meticulous, showcase 등은 더 오래 증가했다. 매끈한 문체는 보고서에서 신뢰를 주고, 창작물에서는 개성 없는 합성물로 보일 수 있다.


모두 잘 쓰고, 모두 비슷해진다

사람이 받아들인 AI 문장이 다시 학습 데이터에 들어가면 순환 고리가 닫힌다. 생성 데이터로 모델을 거듭 학습하면 드문 사례부터 사라지고 결과가 점점 비슷해진다. 이른바 ‘모델 붕괴’다.

언어에서 ‘꼬리’는 다음과 같다.

  • 지역 표현
  • 소수 집단의 관용어
  • 독특한 문장 리듬

자주 쓰이지는 않아도 화자의 출신과 공동체, 세상을 해석하는 방식을 담고 있다. 평균적인 문장만 거듭 학습하면 이런 신호는 다음 데이터에서 더 발견하기 어려워진다.

줄어드는 것은 단어만이 아니다. USC 연구진은 LLM이 사람의 문체뿐 아니라 관점과 추론 방식까지 비슷하게 만들어 개인의 작업 효율은 높아져도 집단의 아이디어 다양성은 줄어들 수 있다고 지적했다. 어떤 답이 공손하고 명확한지 AI가 정해 주기 시작하면, 표현할 수 있는 사고의 경로도 좁아진다.

AI를 쓰지 않는 사람도 영향권 밖에 있지 않다. 논문과 뉴스, 발표 자료가 비슷한 문체로 채워지면 다른 방식의 말은 덜 세련되고 덜 믿을 만한 것으로 평가받기 쉽다. 사람들은 그 평가에 맞춰 스스로 표현을 고친다. 결국 AI 사용 여부와 관계없이 담화 환경 전체가 바뀐다.

웹도 빠르게 합성 텍스트로 채워지고 있다. AI 콘텐츠 분석 업체 Graphite의 영문 웹 기사 표본에서는 한때 AI 작성물이 인간 작성물을 앞섰고, 이후 두 비중이 비슷한 수준을 유지했다. AI 검색이 이런 글을 재료로 새 글을 만드는 검색 피드백 문제도 생겼다.

이럴수록 구술 기록과 지역어, 비영어권의 자발 발화가 중요해진다. 반복 생성 과정에서 사라지기 쉬운 인간 언어의 기준점이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이 이미 AI 문체에 맞춰 말한다면, ‘인간이 쓴 자료’라고 해서 원본성을 보장할 수는 없다.


언어의 평균이 다시 쓰이고 있다

이제 언어의 출처는 인간 공동체 하나가 아니다. 모델은 인간의 글을 학습해 고유한 어휘 취향을 만들고 사람은 이를 전문성과 권위의 신호로 받아들인다. 그렇게 바뀐 사람의 말은 다시 웹과 논문에 기록돼 다음 모델의 학습 자료가 된다.

비모국어 화자와 비전문가는 글쓰기의 장벽을 낮추고, 조직은 교정 비용과 의사소통 시간을 줄인다. 비슷한 문서 구조는 읽기도 쉽다.

지역과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 주던 표현, 여러 각도에서 문제를 바라보게 하던 언어와 추론 방식이 줄어들 수 있다. 표준화는 이해를 돕지만 화자의 경험과 생각을 구별해 주는 단서까지 지운다.

AI 문장을 찾아내는 데만 매달려서는 변화의 핵심을 놓친다. 동의어는 그대로인데 AI 선호어만 늘어나는지, 어떤 분야에서 권위의 표지가 되고 어디서 회피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자발 발화에 남아 있는 희귀 표현과 지역별 어휘 다양성도 꾸준히 기록할 대상이다.

누가 한 문장을 썼느냐보다 언어 분포의 어느 부분이 사라지고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delve가 대화에 등장했다는 사실보다 의미 있는 신호는, 비슷한 뜻의 단어는 그대로인데 그것만 유독 늘어난 곡선이다. 그 움직임이 여러 분야와 공동체로 번질 때, AI의 말투는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인간 언어의 새로운 평균으로 자리 잡는다.


#AI 글쓰기#진정성#인지#언어모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