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쓴 글과 기계가 만든 글을 구분하려는 수요가 커지면서 AI 탐지기는 학교를 넘어 출판과 심사 현장에도 들어왔다. 그러나 문장만 보고 내린 판정이 작가의 자격과 작품의 평가를 좌우하기 시작하면서 검증 방식과 책임도 논쟁의 대상이 됐다.

오탐률 0%의 사각지대

2026년 5월, 트리니다드 작가 자미르 나지르의 《The Serpent in the Grove》가 영연방 단편소설상 카리브 지역 수상작으로 뽑혔다. 곧 소셜미디어에서 반복되는 나열과 특정 문장 구조가 AI의 흔적으로 지목됐다. 탐지기 Pangram과 WIRED의 검사 결과는 모두 ‘100% AI 생성’이었다. 다른 지역 수상작 두 편에도 비슷한 의혹이 제기됐다.

하지만 ‘100%‘는 작가가 AI를 썼을 확률이 아니다. 문장이 탐지기가 학습한 AI 문장과 통계적으로 비슷하다는 뜻이다. 분류 결과를 실제 작성 경위에 대한 확률로 받아들이면 오해가 생기기 쉽다. 영국의 샐리 클라크 사건에서도 잘못 해석한 통계가 유죄의 근거처럼 쓰였고 문제점이 드러난 뒤 판결이 파기됐다.

같은 맥락에서 Pangram은 비원어민 영어 오탐률(사람이 쓴 글을 AI 글로 잘못 판정하는 비율)이 0~0.019%라고 밝힌다. 기존 탐지기보다 크게 나아진 수치지만, 검증 자료는 네 종류의 공개 ESL 데이터셋이었다. 지역의 문화와 언어가 짙게 밴 카리브 문학에도 같은 정확도가 나온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표준 영어가 기준이 되면

영연방재단 사무총장 라즈미 파룩은 탐지기의 정확도뿐 아니라 어느 지역의 영어로 학습했는지를 물었다. 대도시의 표준 영어를 기준으로 삼은 기계는 다른 문화권의 표현을 오류나 교정 대상으로 보기 쉽다.

실제로 코넬 연구진이 인도인과 미국인에게 같은 AI 글쓰기 도구를 제공하자 두 집단의 문체가 비슷해졌다. 그러나 도구의 제안을 받아들인 비율은 인도인 25%, 미국인 19%로 달랐다. AI가 비서구권 사용자의 글을 표준 영어에 맞춰 바꾸는 힘이 더 컸다는 뜻이다. 그 결과 표준 영어를 잘 다듬어 쓰는 비서구권 작가의 문장이 오히려 AI 문장으로 의심받는 역설이 생긴다.

그 의심이 제도로 옮아간 자리에서 문예지 Granta는 6월 19일 편집권이 없는 외부 출판사와의 협약을 전부 정리했고, 자미르 나지르와 맺은 협약도 그 조치에 포함됐다. 조사보다 제재가 앞섰던 셈이다. 영연방재단은 같은 달 말 AI가 쓰이지 않았다고 결론 내렸다. 물론 의문은 남았다. 나지르가 큰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 시인 데릭 월컷의 시를 대지 못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재단의 검증이 충분했는지는 따져볼 문제다. 그러나 탐지기 점수만으로 먼저 불이익을 줘도 되는 걸까?


문체보다 창작 과정

영연방재단은 탐지기를 다시 돌리는 대신 한 달 동안 수상자들의 초고와 메모, 타임스탬프(기록에 남은 작성 시각)를 확인했다. 미발표 원고를 외부 검사기에 넣으면 소유권과 동의 문제가 생기고 검사 결과도 일관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작품마다 최소 일곱 명이 참여한 기존 심사에 제작 과정 검증을 더한 뒤 수상을 유지했다.

그림은 벽을 보게 돌려놓고 서류 더미만 들여다보는 두 사람

그 검증에서 자미르 나지르는 여섯∼일곱 차례의 초고를 제출했다. 만성질환 때문에 안드로이드폰에 음성으로 입력한 뒤 한 줄씩 고쳤다는 작업 방식도 설명했다. 완성본의 인상만 볼 때보다 문장이 만들어진 과정을 확인했을 때 판단은 더 또렷해졌다.

이 점에서 미술계도 작품의 겉모습과 함께 소장 이력을 살핀다. 뉴욕의 M. Knoedler & Co. 화랑은 로스코와 폴록의 미공개 작품이라며 위작 약 8천만 달러어치를 팔았다. 사기를 드러낸 가장 강한 단서는 무엇이었나. 붓질이 아니라 조작된 소장 이력이었고 화랑은 2011년 문을 닫았다. 마찬가지로 AI가 몇 초 만에 글을 만드는 시대에는 문체보다 오랜 수정 기록이 더 위조하기 어려운 단서가 된다.


원고가 증거가 되는 시대

2026년 8월 소개된 Vellumproof는 초고의 작성 시각을 남기고 버전을 암호학적으로 연결한다. 원고를 중간에 끼워 넣거나 날짜를 바꾸면 연결이 끊긴다. 첫 원고는 무료이고 추가 이용료는 월 5달러다.

이 서비스도 인간 저작을 완벽히 증명하지는 못한다. 시간을 들여 AI 문장을 조금씩 입력하면 가짜 이력도 만들어진다. 다만 여러 달의 집필 과정을 꾸미려면 비용이 크게 든다.

그런데 유료 편집기를 쓰는 사람만 확실한 기록을 남길 수 있다면, 휴대전화 음성 입력이나 간단한 메모앱을 쓰는 작가는 다시 불리해진다. 작업 이력은 별도 인증 상품보다 워드프로세서와 메모앱, 휴대전화 키보드의 기본 기능에 담기는 편이 접근성엔 낫다.

작가의 도구만이 아니라 심사 기관도 탐지기 점수는 조사 여부를 정하는 참고 자료로만 써야 한다. 의혹이 생기면 창작 이력을 확인하되,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게재와 수상을 유지하는 편이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막는다.

결국 《The Serpent in the Grove》는 7,806편 가운데 대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장은 이 작품이 보여준 시의 완성도와 독창성을 높게 평가했다. 의혹 뒤에도 그 평가를 지탱한 것은 탐지기 점수가 아닌 여러 초고와 타임스탬프였다.

이제 원고는 작품인 동시에 제작 과정의 기록이 되고 있다. 비용과 사용 기기에 관계없이 누구나 이 기록을 남길 수 있으면, 낯선 문체만으로 의심받는 작가가 줄어든다.

창작의 진위를 둘러싼 분쟁은 작품 안의 문장만으로 끝나지 않게 됐다. 앞으로 작가의 작업 환경과 도구 선택은 표현 방식뿐 아니라, 의혹이 생겼을 때 스스로를 설명하는 범위까지 좌우한다.


#AI 글쓰기#진정성#창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