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을 시간으로 재다
AI 평가기관 METR가 제시한 ‘시간지평’은 AI의 능력을 점수 대신 시간으로 나타낸다. 50% 시간지평이 1시간이라면 숙련자가 1시간 걸리는 과제를 모델이 절반의 확률로 끝낸다. 시간에는 시험 점수처럼 상한이 없다. 모델이 발전할수록 맡기는 일의 범위도 분 단위에서 시간 단위로 길어진다.
2026년 1월 공개된 TH1.1(METR의 평가 벤치마크 개정판)은 평가 과제를 170개에서 228개로 늘렸다. 50% 시간지평이 두 배가 되는 기간은 전체 구간에서 약 196일이었지만 2023년 이후 130.8일, 2024년 이후 88.6일로 짧아졌다. 다만 8시간 이상 걸리는 과제 31개 중 사람의 수행 시간을 직접 측정한 것은 5개뿐이다. 최신 수치에는 오차가 크다.
Claude Opus 4.6의 50% 시간지평은 약 719분이다. 그러나 성공률을 80%로 높이면 약 70분으로 줄어든다. AI에게 맡기는 시간은 모델의 고정된 능력치가 아니라 조직이 요구하는 신뢰도에 따라 달라진다.
현장의 자동화는 이미 빠르게 늘고 있다. Anthropic Economic Index에서 자동화형 대화는 48.6%였고 사람이 약 5시간 걸릴 일이 40분가량의 대화로 처리된 것으로 추정됐다. 다만 대화 내용을 분류한 결과일 뿐, 고용 감소의 증거는 아니다. EU는 고위험 AI 의무를 2027년 12월로 미뤘지만 챗봇 고지와 AI 생성물 표시 같은 투명성 의무는 2026년 8월부터 시행했다.
비행기는 60년을 증명했다
능력을 시간으로 허가하는 제도는 항공 분야에 먼저 있었다. 미국이 1953년 도입한 ‘60분 규칙’은 쌍발기가 엔진 하나만으로 대체 공항까지 가는 거리를 제한했다. 기준은 최고 성능이 아니라 외부 도움 없이 안전하게 버티는 시간이었다.
허용 시간은 1985년 120분, 1988년 180분으로 늘었고 A350은 취항 전 370분을 승인받았다. 60분이 370분이 되기까지 60년 넘게 걸린 이유는 한 번의 시험이 아니라 오랜 고장 기록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ETOPS-120은 엔진 정지율이 2만 시간당 1회 미만이어야 한다. 180분은 5만 시간당 1회, 그 이상은 10만 시간당 1회 미만을 요구하며, 항공당국은 무엇을 할 수 있는지와 얼마나 드물게 실패하는지를 따로 본다.

AI 시간지평에는 두 번째 정보가 없다. 과제를 성공할 확률은 보여주지만 어떤 오류가 얼마나 자주 생기는지는 알려주지 않는다. 현재의 에이전트 배포는 장기 운용 기록 대신 제한된 평가와 통제 장치를 근거로 자율 시간을 먼저 부여한다. 운항 실적이 없는 새 기종에 설계와 시험만으로 180분을 허용한 ‘조기 ETOPS’와 닮았다.
하지만 항공기에는 이상이 생겼을 때 향할 대체 공항이 있다. 에이전트가 실행한 송금이나 발주, 외부 공개는 중단해도 원래대로 되돌아가지 않는다. 에이전트의 무인 시간은 단순한 성능 수치가 아니다. 사람이 개입하지 못하는 동안 바뀌는 외부 상태의 범위까지 뜻한다.
로그 없는 자율성은 감시 공백이다
원전에서도 무인 지속 시간은 설계 기준이다. AP1000은 교류전원과 운전원 조작 없이 72시간 동안 노심을 냉각한다. 중력과 자연순환을 이용해 상태 변화를 억제하기 때문이다.
원자로의 72시간과 에이전트의 12시간은 다르다. 원자로는 변화를 줄이지만 에이전트는 파일을 수정하고 시스템을 호출하며 변화를 만든다. 따라서 자율 시간이 길어질수록 중간 상태를 얼마나 자주 확인할지가 중요하다.
빠른 신호를 드물게 측정하면 변화가 사라지거나 전혀 다른 신호로 보이기도 한다. 시간 단위로 진행된 실패를 주간 검토에서만 보면 정상적인 결과 변동으로 착각하기 쉽다. 결재 단계보다 사건의 속도에 맞춘 관측 주기가 먼저다.
2026년 Cloud Security Alliance가 418개 조직을 조사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 65%가 최근 1년 사이 AI 에이전트 관련 보안 사고를 겪었다
- 82%는 조직이 모르던 에이전트를 발견했다
- 공식 폐기 절차를 둔 곳은 21%뿐이었다
결과만 사후 검토해서는 실패가 커지는 과정의 징후를 놓친다. 실행 중간의 로그와 상태 변화, 권한 사용 내역부터 남긴다.
무사고 기록이 자율 한도를 정한다
모델의 시간지평은 빠르게 늘지만 안전성의 증거는 실제 운용한 만큼만 늘어난다. 사고 없이 운용한 시간이 n시간이라면 실패율의 95% 상한은 대략 3/n이다. 실패율이 10만 시간당 1회 미만임을 보이려면 약 30만 시간의 무사고 기록이 필요하다. 모델 능력이 넉 달마다 두 배가 돼도 안전성 증거는 그렇게 빨리 늘지 않는다.
에이전트의 무인 시간은 시험 점수로 얻는 권한보다 운항 실적에 따라 넓어지는 면허에 가깝다.
조직은 감독 없이 실행된 시간과 이상이 사람에게 전달되기까지 걸린 시간을 함께 관리한다. 결국 일관된 장기 로그를 가진 운영자가 더 높은 자율 한도를 먼저 확보한다.
실적이 부족한 조직은 자율 구간을 짧게 두고 설계 검증이나 보험, 외부 인증으로 빈틈을 메운다. 조직 내부의 실제 권한도 직급보다 누가 무인 실행의 상한을 정하고 사고 기록을 다음 배포에 반영하는지에 달려 있다.
개인의 경험도 시스템을 맡은 기간보다 이상을 얼마나 빨리 찾아 안전하게 복구했는지로 평가될 것이다. 조종사의 비행시간 기록처럼 자율 시스템의 운용 기록에는 맡긴 시간과 관측한 사건이 함께 남는다. AI가 혼자 일하는 시간은 빠르게 늘어난다. 다만 검증된 무사고 시간과 이를 직접 다뤄 본 사람의 경험은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