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확산 예산을 붙잡고 있는가?

가트너의 C레벨 임원 커뮤니티가 임원 75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0%는 이미 일부 업무 프로세스에 AI를 넣고 돌리고 있다고 답했고 38%는 시험 운영 단계라고 했다. 도입할지 말지를 고민하던 단계는 사실상 지났다.

같은 조사에서 보안, 통제를 AI 도입의 걸림돌로 꼽은 비율은 2024년 70%대에서 2026년 20%대 초반으로 줄었다. 임원들의 관심은 투자한 만큼 성과가 나오는지, 그리고 사람이 일일이 지시하지 않아도 일을 처리하는 AI로 옮겨갔다. 문턱을 넘는 문제는 한풀 꺾인 셈이다.

그런데 우려가 줄었다고 전사 확산이 따라오지는 않았다. 걱정은 처음 발을 들이는 문턱이었을 뿐 조직 전체로 밀어 나가게 하는 동력은 아니었다. 문턱이 낮아지면 시도는 늘어나지만 시도가 늘었다고 그다음이 자동으로 오지는 않는다.

우려가 빠진 자리는 성과 증명 요구가 채웠다. 위험하니 조심하자는 심사가 값이 되는지 보여달라는 심사로 바뀌었고 확산 예산은 그 증명에 묶였다. 확산 결정의 기준은 이제 안전 심사에서 회계 심사로 옮겨갔다.


시험 운영이 알려주지 않는 원가

그렇다면 확산을 가로막는 장벽은 어디에 있을까. 같은 조사에서 임원들이 꼽은 가장 큰 장벽은 AI 성능보다 조직 내부의 조건이었다. 데이터 품질, 오래된 시스템과의 연결, 인력 준비도, 누가 어떻게 쓸지 정하는 규칙이 앞자리를 차지했다. 현장 발언에서는 부서마다 따로 굴러가는 낡은 시스템과 그 사이에서 데이터를 옮기는 비용이 직접 거론됐다.

시험 운영과 전사 도입의 원가 구조는 다르다. 시험 운영은 대개 한 부서 안에서, 이미 정리된 하나의 데이터 위에서 끝난다. 반면 옆 부서로 같은 AI를 옮기면 필요한 데이터가 다른 시스템에 다른 형식으로 들어 있어 연결 작업을 처음부터 다시 한다. 한 부서에서 통했던 설정과 전제를 그대로 가져갈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 작업장에서는 배관이 이어져 돌아가고, 바로 옆 별도의 작업장에는 똑같은 배관 자재가 포장도 뜯지 않은 채 따로 놓여 있다

AI 확산은 한 번 만든 것을 복사해 붙이는 일이 아니다. 부서 수만큼 데이터 연결 공사를 반복하는 일에 가깝고 그래서 첫 번째 성공이 두 번째를 싸게 만들어 주지도 않는다.

그런데 그 공사의 규모는 이미 드러나 있다. 데이터 연결 도구 회사 Fivetran이 2026년 3월에 발표한 대기업 조사에서, 대상 기업들은 서로 다른 시스템 사이에서 데이터를 자동으로 옮기는 통로를 평균 300~400개 넘게 운영하고 여기에만 엔지니어 35~50명을 붙이고 있다. AI를 쓸 곳을 하나 늘린다는 것은 이미 이만큼 복잡한 배관 위에 또 하나의 연결 작업을 얹는 일이다.


한 구간만 빨라지면 아무것도 안 줄어든다

그렇다면 현장은 그 공사를 감수했을까. 48%는 기존 업무 흐름을 그대로 둔 채 그 안에 AI를 끼워 넣는 데 그쳤고, 일하는 방식 자체를 새로 설계한 곳은 15%에 불과했다. 사람 쪽도 비슷해서 기존 역할을 손본 곳은 20%, 새 역할을 만든 곳은 14%였고 감원을 택한 곳은 5%에 미치지 못했다. 일자리를 줄이기보다 기존 역할과 업무 흐름을 손보는 쪽이 더 흔한 선택이었다.

배관도 깔리지 않았고 성과 증명까지 요구받는 상황에서 프로세스를 새로 짜는 일은 몇 분기가 걸리고 실패하면 책임만 남는다. 끼워 넣기는 다음 주에 시작할 수 있고 기존 구조를 건드리지 않는다. 일정과 리스크만 놓고 보면 선택이 한쪽으로 기운다.

길게 이어진 녹슨 배관 한가운데 반짝이는 새 이음쇠 하나만 끼워져 있고, 앞뒤 배관은 여전히 낡은 채로 남아 있다

그러나 흐름을 그대로 두면 그 한계도 함께 남는다. 중간의 승인 단계, 부서 사이의 서류 넘김, 사람이 확인해야 다음으로 넘어가는 대기 시간이 그대로인데 한 구간만 빨라지면 전체 처리 시간은 거의 줄지 않는다. 직원 개인은 일이 빨라졌다고 느끼는데 회사의 손익 숫자에는 잡히지 않는다.

성과를 보여달라는 심사 앞에서 이 결과는 설득력이 약하다. 지금의 도입 방식은 확산을 정당화할 성과를 만들어 내지 못한다. 끼워 넣기는 시작을 쉽게 만드는 대신 설득할 근거를 남기지 않고 근거가 없으니 배관과 프로세스를 다시 짤 예산도 나오지 않는다.

40%가 넘은 문턱과 15%가 넘은 문턱은 같은 문턱이 아니다. 앞의 것은 AI를 써 보기로 하는 결정이고 뒤의 것은 일하는 방식을 바꾸기로 하는 결정이다. 전사 확산은 첫 번째 결정의 다음 단계로 저절로 오지 않으며 두 번째 결정을 내린 곳에서만 일어난다. 첫 문턱을 넘었다고 두 번째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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