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AI를 빠르게 사고 있지만 일하는 방식은 그만큼 빨리 바꾸지 못했다. 속도만큼 성과도 따라왔을까? ServiceNow가 19개국 임원 4,500명을 조사한 결과, AI 지출은 1년 사이 110% 늘었다. 2027년에는 IT 예산의 20.4%를 차지할 전망이다. 그러나 기업의 평균 AI 성숙도는 100점 만점에 51점 에 그쳤다.

그중에서도 가장 뒤처진 영역은 AI가 실제로 일하는 방식인 워크플로였다. 핵심 업무 전반에 에이전트를 확대한 조직은 18%, 거버넌스 체계를 갖춘 조직은 26%뿐이었다. 71%는 데이터의 정확성과 접근성, 관리 문제를 겪었다. 산 도구를 조직의 일에 연결할 기반이 부족했다.

낡은 절차를 빠르게 만들 뿐

열 단계짜리 결재에서 세 단계를 30초로 줄였다고 하자. 나머지 일곱 단계가 담당자의 일정과 수작업에 묶여 있다면 전체 처리 시간은 거의 달라지지 않는다. 자동화한 구간의 비용은 줄어도 전사 성과로 이어지기 어렵다.

에이전트형 AI를 사용하는 기업은 59%지만, 자율 워크플로를 운영하는 곳은 9%, 업무 자체를 재설계하는 곳은 5%였다. 많은 기업이 사람이 있던 자리에 에이전트를 넣었을 뿐 단계와 순서는 그대로 뒀다. 개별 작업은 빨라지지만 전체 업무 속도는 그대로인 셈이다.

경영학자 마이클 해머는 1990년 포드의 매입채무 업무에서 이 차이를 이미 설명했다. 포드는 기존 절차를 전산화하려다가 계산서를 만들고 대조하는 절차 자체를 없앴다. 주문 정보와 입고 정보를 시스템이 직접 맞춰 보도록 업무의 순서와 기준을 다시 설계한 것 이다. 낡은 절차를 자동화한 것이 아니라 불필요한 절차를 없앴다.

그러나 권한 구조는 다르다. 하나의 업무가 여러 부서에 걸쳐 있는데도 각 부서는 자기 구간만 바꿀 권한을 갖는다. 전체 흐름의 책임자가 없으면 부서마다 비슷한 자동화를 따로 만든다.

반면 Cisco는 먼저 일의 지도를 그렸다. 직무, 활동, 도구에 걸친 4,000개 항목과 2만5,000개 관계를 Atlas에 담았다. 리더는 이를 통해 업무의 연결과 중복을 한눈에 파악했다. 프로젝트 관리 업무의 75%는 IT, 운영, 소프트웨어 개발 부문에서 사실상 같았다. 도구를 배치하기 전에 여러 부서의 일을 하나의 흐름으로 다시 정의했다. 워크플로 재설계는 실무자의 도구 설정이 아니라 부서 간 권한을 조정하는 리더의 일이다.


에이전트에는 주인이 필요하다

통제는 도입 속도를 따라갔을까? 보안업체 Gravitee의 조사에서 기술팀의 80.9%가 에이전트를 시험하거나 운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든 에이전트가 보안, IT 승인을 받았다는 응답은 14.4% 에 불과했다. 에이전트를 독립된 신원으로 관리하는 팀도 약 22%뿐이었고, 45.6%는 공유 API 키를 썼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가 어떤 권한으로 행동했는지 가리기 어려운 구조라는 말이다.

대시보드의 오류는 잘못된 정보를 보여 주지만 에이전트의 오류는 시스템을 직접 바꾼다.

실제로 2026년 3월 Meta에서는 내부 에이전트가 승인 없이 잘못된 기술 조언을 게시했고 이를 따른 직원 때문에 민감한 데이터의 접근 권한이 약 두 시간 동안 과도하게 확대됐다. 외부 공격이 아니라 정상 계정과 유효한 권한으로 벌어진 사고였다. 기존의 계정 보안만으로는 에이전트가 언제, 어디까지 행동해도 되는지 통제하기 어렵다.

그래서 에이전트를 운영하려면 세 책임자가 필요하다. 업무 전체를 맡을 사람, 결과의 품질을 평가할 사람, 예외가 생겼을 때 개입할 사람이다. 승인, 기록, 중단, 되돌리기 조건도 이 단계에서 설계한다. 나중에 덧붙이면 이미 만든 연결 구조를 다시 손봐야 한다.

이와 함께 인력 운영도 바뀐다. 예전에는 주니어가 처리하고 시니어가 검토했다면 이제는 에이전트가 처리하고 사람이 감독한다. 사람은 반복 작업보다 품질 판단과 예외 대응, 의사결정에 집중한다. 하지만 장기 인력 계획이 없는 조직은 59% 에 달했다. 에이전트 도입과 직무 재설계는 따로 떼어 추진할 수 없다.


선도 기업은 도구보다 무엇을 먼저 정했을까?

ServiceNow가 선도 기업으로 분류한 상위 21%의 평균 성숙도는 74점이었다. 나머지 기업보다 29점 높았고, AI 투자 수익률은 평균 160% 였다. 이 기업들은 도구를 고르기 전에 시스템과 팀, 의사결정을 잇는 업무 흐름부터 정했다. 기존 업무의 비용만 줄이지 않고 신제품과 새로운 수익원에도 AI를 활용했다.

그러나 개인의 AI 활용 능력만 높인다고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Microsoft가 10개국 AI 사용자 2만 명을 조사한 결과, 문화, 관리자 지원, 인재 제도 같은 조직 요인은 개인 요인보다 AI 효과와 두 배 이상 강한 연관성 을 보였다. 반면 경영진의 AI 전략이 명확하다고 답한 사용자는 26%뿐이었다.

그렇다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까? 여러 부서를 거치는 워크플로 하나를 고르고 처음부터 끝까지 책임질 사람을 지정한다. 이어서 불필요한 단계를 없애고 각 에이전트의 권한과 승인 조건, 품질 기준, 예외 담당자를 정한다. 성과 지표도 사용 횟수가 아니라 전체 처리 시간, 오류율, 의사결정 품질로 바꾼다.

AI 구매는 한 분기 안에 끝낼 수 있다. 그러나 업무의 권한과 역할을 다시 나누는 데는 더 오랜 시간이 든다. 업무의 단계, 책임자, 승인 조건이 투자 규모나 모델 성능보다 먼저다. AI의 성과를 가르는 것은 무엇을 샀느냐가 아니다. 그 전에 일을 어떻게 다시 지었느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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