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분 만에 사라진 모델
2026년 6월 12일 오후 5시 21분, 미국 상무부는 Anthropic에 외국 국적자의 Fable 5, Mythos 5 접근을 즉시 끊으라고 통보했다. 국적을 실시간으로 가릴 수 없었던 회사는 90분 만에 미국 고객까지 모두 차단했다. 정작 문제가 된 탈옥 기법은 경미한 취약점 몇 개를 찾는 데 그쳤다.
상무부는 EAR 734.13을 들었지만 과거에는 같은 조항에 따른 원격 접근을 관할 밖으로 봤다. 규정이 아니라 해석이 바뀌었다. 통제는 18일 뒤 풀렸지만 ‘신뢰 기업’만 복구됐고 명단과 허용 범위는 상무부가 계속 바꿨다. 한 로펌의 표현대로 평화조약이 아닌 휴전이었다. API로 사는 것은 자산이 아니라 언제든 취소될 수 있는 이용권이다.
파리를 지키려고 뉴욕을 포기할 수 있는가
1961년 샤를 드골은 존 F. 케네디에게 물었다.
미국은 파리를 지키려고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는가.
확답을 듣지 못한 프랑스는 독자 핵전력을 만들고 1966년 NATO 통합군사령부를 떠났다. 자체 역량에 드는 비용은 중복 투자가 아니라, 지켜질지 모르는 약속에 대비하는 보험료다.

2026년 6월 G7에서 에마뉘엘 마크롱도 하루아침에 끊길 제품을 계속 사기 어렵다고 경고했다. 미국 모델을 일부 국가와 기업에 제공하는 ‘신뢰 파트너’ 구상도 나왔지만 허용과 중단 권한은 여전히 미국에 있다.
각국은 이미 대비에 나섰다.
- 한국은 연내 사이버보안 특화 주권 AI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 인도에서는 인도의 IT서비스 대기업 타타컨설턴시서비스(TCS)가 5만 명 규모의 Anthropic 교육 협력을 발표한 다음 날 최상위 모델이 사라졌다. 당시 Anthropic의 인도 매출은 빠르게 늘고 있었다.
접속이 복구돼도 자체 역량 투자는 계속된다.
멀티벤더가 위험을 못 나눈 이유
차단 당시 조사한 145개 기업 중 약 3분의 2는 여러 모델을 쓰고 있었고 충격을 피했다. 업체가 달라도 모두 미국 정부의 통제를 받았기 때문이다. OpenAI나 Google을 예비 수단으로 두면 기술 장애에는 대비하지만 정책 차단에는 취약하다. 벤더를 여러 곳으로 나눠도 관할권이 같으면 위험은 분산되지 않는다.
회수가 어려운 오픈웨이트는 다른 성격의 대비책이다. AI 모델 사용량 집계 플랫폼 OpenRouter에서는 2026년 5월 사용량의 약 61%를 중국계 오픈웨이트가 차지했고 알리바바의 오픈웨이트 모델군 Qwen은 누적 다운로드 10억 건을 넘었다. 다만 후속 모델이 없으면 성능 격차가 벌어지고 전 세계 데이터센터도 주권 AI 프로젝트의 52%가 엔비디아 GPU에 의존한다.
AI 운영의 N-1 원칙
전력망의 ‘N-1’은 설비 하나가 고장 나도 운영을 이어가는 기준이다. ‘블랙스타트’는 외부 전력 없이 정지된 전력망을 되살리는 능력, 즉 평소 효율과 별개로 마련한 복구 수단이다.
오픈웨이트도 이렇게 봐야 한다. 주력 모델보다 성능이 낮아도 비상시 업무를 복구한다. 업무별로 허용 가능한 중단 시간과 성능 저하 폭을 정하고 핵심 업무에는 국내 컴퓨트를 배정한다. 나머지는 오픈웨이트로 축소 운영하거나 잠시 중단하면 된다.
진짜 멀티벤더 전략은 업체뿐 아니라 관할권까지 분산한다. 국내 컴퓨트, 오픈웨이트, 해외 API는 복구 단계마다 쓰이는 자원이다. 차단 기준과 통보, 이의 절차가 불투명한 한 자체 복구 투자는 계속된다. 90분 통보 이후 기업들이 지불하는 비용은 미국 모델 없이도 업무를 다시 시작하게 하는 체계의 유지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