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에이전트가 대화창에서 시연을 마치는 시점과 기업 업무에서 거래가 완료되는 시점은 서로 다르다. 모델이 답을 내놓은 뒤 어떤 시스템이 그 결과를 검증하고 기록할지가 운영 단계의 과제가 된다.

AI 예산은 늘었는데 성과는 어디에 있나

기업의 약 80%가 생성형 AI를 한 개 이상의 업무에 활용한다. 하지만 전사 EBIT(이자, 법인세 차감전이익)가 개선됐다고 답한 기업은 약 40%에 그친다. McKinsey 조사 에 따르면 성과를 낸 기업은 좋은 모델 도입에 그치지 않고 업무 흐름을 다시 설계하며 에이전트를 빠르게 확장했다.

그런데 AI에 쓰는 예산은 늘어나는데 ERP, 데이터 기반 투자는 오히려 줄고 있다. 요약이나 문서 작성은 AI만으로도 가능하지만, 발주 확정, 지급 승인, 재고 차감처럼 정확한 거래 기록과 권한 체계가 필요한 업무까지 같은 방식으로 해결될까? 실제로 고객 대면 에이전트를 도입한 기업의 74%가 서비스를 되돌리거나 중단했다는 조사 에서도 데이터 파편화와 시스템 통합, 거버넌스가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결국 AI는 분석하고 제안하는 데 강하지만 거래를 책임지는 시스템은 아니다. ERP에는 원장과 결재선, 권한 통제가 있고, 이 차이는 데모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다가 실제 운영 단계에서 문제로 나타난다.


오래된 ERP에는 부채만 있는 게 아니다

ERP에는 낡은 코드뿐 아니라 오랜 업무 지식도 담겨 있다. 승인된 공급업체, 금액별 결재선, 주문 상태, 재고와 신용의 예외 조건이 대표적이다. 이런 정보를 AI가 짐작해서는 곤란하다. 마스터데이터와 규칙에서 직접 확인해야 할 사실이다.

그렇다고 기존 시스템을 통째로 유지할 필요는 없다. SAP의 커스텀 코드 상당수는 더 이상 실행되지 않거나 현재 업무와 맞지 않는다. S/4HANA 전환 과정에서 커스텀 객체의 25~40%를 폐기할 수 있다는 분석 도 있다. 남길 업무 규칙과 버릴 코드를 가려내면, 에이전트에게 줄 권한의 범위도 함께 정해진다.

그렇다고 해서 ERP를 한꺼번에 교체하기도 쉽지 않다. 2026년 조사 에서는 기업의 4분의 1 이상이 ERP 프로젝트 예산을 초과했고, 약 4분의 1은 일정도 넘겼다. 독일어권 SAP 담당자 조사에서도 2027년까지 S/4HANA 전환을 마치겠다는 응답은 27%에 불과했고 절반은 2030년을 목표로 잡았다. 기존 ECC는 상당 기간 더 쓰인다.

그래서 에이전트는 최신 시스템만 보지 않고 오래된 ERP에 남은 업무의 맥락까지 함께 읽는다.


에이전트에게 업무의 언어를 가르쳐라

ERP 속 업무 개념을 공통 언어로 정리하는 일이 출발점이다. ‘주문 확정’이나 ‘승인 공급업체’, ‘조달 예외’가 무엇인지 합의하고 관련 테이블과 필드, 이벤트, 규칙을 연결하는 식이다. 이를 온톨로지로 정리하면 에이전트가 원시 테이블 대신 업무의 맥락을 읽는다.

승인 공급업체의 조건을 정하면 에이전트가 자율적으로 발주할 범위도 함께 정해진다. 온톨로지는 업무 사전이자 권한 명세서 역할을 한다.

실제로 ERP 업체들도 이런 계층을 제품에 넣고 있다.

MCP 같은 연결 표준이 생기면 의미와 권한은 저절로 정리될까? 그렇지 않다. 공개 MCP 서버가 1만 개를 넘었지만, 인증과 허용 도구 목록, 감사 로그는 여전히 기업이 설계해야 한다. 한 에이전트가 계산서 생성과 지급 승인을 모두 맡는다면 사람에게 금지된 직무 겸직과 다르지 않다. 따라서 자율 처리 한도와 사람의 승인 조건, 작업별 비용 상한도 함께 정하는 대상이다.


작은 실험 대신 한 업무를 끝까지

성과를 내려면 작은 실험을 여러 부서에 흩뿌리기보다 조달이나 매입채무처럼 하나의 업무 영역을 고르는 편이 낫다. 같은 데이터와 규칙을 반복해서 활용할 수 있고, 예외 처리 기준과 담당자도 이미 정해져 있어 권한을 어디까지 넘길지 측정하기 쉽다.

예를 들어 매입채무 에이전트는 발주서와 계약 조건, 공급업체 이력을 대조해 지급, 보류, 상신을 구분한다. 한 글로벌 유통기업은 사전학습된 에이전트 21종을 적용해 무접촉 처리율을 7%에서 65%로 끌어올렸다. ERP 자동 연계율도 15%에서 95%로 뛰었고, 정시 지급률은 60%에서 95%로 개선됐다.

지표도입 전도입 후
무접촉 처리율7%65%
ERP 자동 연계율15%95%
정시 지급률60%95%

연간 약 350만 건의 계산서를 처리한 이 사례 의 핵심은 AI 자체보다 공급업체와 발주 기록을 대조할 수 있는 통합 원장이었다.

이처럼 기반이 갖춰진 뒤 권한은 읽기, 제안, 쓰기 순서로 넓어진다. 정확도뿐 아니라 잘못 실행했을 때 되돌리는 비용과 감사 가능성도 승격 기준에 들어간다. 에이전트가 판단에 필요한 정보를 ERP에서 찾지 못한다면, 모델을 더 개발하기보다 마스터데이터부터 정비하는 쪽이 먼저다.

에이전트의 성과는 ERP를 벗어나는 데서 나오지 않는다. ERP에 담긴 데이터와 규칙, 권한을 얼마나 명확하게 읽고 안전하게 실행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에 따라 에이전트가 맡는 일이 늘수록 ERP 현대화의 우선순위도 달라진다. 기술을 고를 때는 새 기능의 수보다, 업무 개념과 책임 범위를 시스템에서 얼마나 일관되게 관리하는지를 본다.


#에이전트#기업 AI#자동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