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첨단 반도체의 물리적 반출을 막아도 중국 기업이 연산에 접근하는 경로가 남아 있다는 점이 정책 논쟁의 중심에 올랐다.

논쟁이 다시 커진 이유

9월 6일 《뉴욕타임스》가 미국 제재 대상인 중국 서버 업체 浪潮(Inspur)의 미국 자회사 Aivres를 중심으로 한 공급망을 보도한 뒤, 같은 주제가 주말–월요일에 걸쳐 재인용됐다.

핵심은 단일한 밀수 사건이 아니다. 수출통제가 칩의 ‘국경 통과’를 겨냥하는 동안, 실제 사용은 미국 내 자회사 구매, 동남아 데이터센터 배치, 클라우드 원격접속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이다. 상무부가 원격접속을 겨냥한 규칙 초안을 9월 중 업계에 돌릴 수 있다는 보도가 겹치면서, 논의는 “이미 나간 칩을 어떻게 단속할 것인가”에서 “누가 그 칩을 쓸 수 있는가”로 옮겨 갔다.

오는 9월로 예정된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동남아 데이터센터의 원격접속을 계속 허용할지 여부가 의제로 거론되고 있다.


확인된 세 갈래 우회 경로

제재 기업의 미국 자회사와 동남아 재수출

浪潮은 2023년 3월 미국 엔티티리스트에 올랐다. 이후 캘리포니아 프리몬트 사업장의 간판은 Aivres로 바뀌었고, 같은 인력·설비가 미국 안에서 첨단 서버를 조달하는 구조가 유지됐다.

《뉴욕타임스》와 무역데이터 업체 ImportGenius 분석에 따르면, 2024년 4월부터 2026년 2월까지 Aivres가 동남아로 보낸 첨단 기술은 최소 56억 달러다. 이 중 30억 달러 이상이 엔비디아 Blackwell급 칩을 탑재한 컴퓨터와 관련 장비였다. 도착지는 알리바바, 바이트댄스 등 중국 대형 기술기업에 클라우드 연산을 제공하는 동남아 데이터센터와 중개업체였다.

같은 보도는 중국 쪽 창구로 Maginfra를 지목했다. 이 업체는 말레이시아에서 6개월 사이 7억 달러 이상 서버를 들여왔고, 인력·특허·거래 관계에서 浪潮과 연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 당국은 Aivres 거래를 들여다보고 있으나, 조사 단계는 공개되지 않았다.

엔비디아는 자사 제품을 알려진 파트너에게 팔며 수출규제 준수를 파트너에 맡긴다고 밝혔다. 백악관은 현 행정부가 강한 수출통제를 유지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물리적 밀수와 서버 전용

합법·회색지대와 별개로, 단속 사례는 계속 쌓였다.

연구기관 Epoch AI는 2025년 말까지 중국으로 밀수된 연산량을 H100 환산 29만–160만 장, 중앙값 66만 장으로 추정했다. 중앙값 기준으로 중국이 합법 경로와 자국 생산으로 확보한 연산의 약 3분의 1에 해당한다. 상한이면 밀수가 중국 AI 연산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다만 이는 기소·보도를 바탕으로 한 추정이며, 미적발분을 포함한 확정 통계는 아니다.

제3국 클라우드 원격접속

현행 수출관리개혁법(ECRA)은 물품의 수출·재수출·국내 이전을 규율한다. 칩이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일본 데이터센터에 있고, 중국 본사 엔지니어가 네트워크로 접속하는 행위는 기존 조문만으로는 단속이 어렵다. 수출통제 변호사들 사이에서도 BIS가 현행법만으로 원격접속을 규제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있다.

공개된 사례는 다음과 같다.

Institute for AI Policy and Strategy는 2026년 기준 역외 연산 임대가 수출통제만 적용했을 때보다 중국의 미국산 첨단 연산 접근을 최소 60% 늘릴 수 있다고 추정했다. 별도 분석은 중국 기업이 임대한 연산을 최소 약 67만 H100 환산으로 보기도 한다. 둘 다 공개 보도를 합친 추정치다.

미국 안에서 중국 본사 기업이 합법적으로 첨단 칩을 산 뒤, 이를 본사에 임대하는 구조도 별도 허점으로 거론된다. 수출 통제는 ‘미국에서 중국으로 나가는 물품’에 맞춰져 있어, 미국 내 판매와 이후의 원격 사용은 다른 법역에 속한다.


미국이 이미 손본 부분, 아직 손대지 못한 부분

닫힌 허점: 해외 자회사 구매

2026년 5월 31일 BIS는 주말 지침을 냈다. Country Group D:5(중국 등) 또는 마카오에 본사·최종 모회사가 있는 기업에는, 납품지가 중국 밖이어도 첨단 연산 품목(엔비디아 Blackwell, AMD MI350X 등 ECCN 3A090 계열) 수출에 허가가 필요하다고 재확인했다. 2023년 11월부터 있던 요건을 다시 집행하겠다는 취지다.

이미 설치된 장비를 끄거나 유지보수를 끊는 조치는 포함되지 않았다. TSMC 등 파운드리의 강화된 실사 집행 여부는 지침에 명확히 적히지 않았다.

열려 있는 허점: 원격접속 권한

하원은 2026년 1월 12일 Remote Access Security Act(RASA, H.R. 2683)를 369대 22로 통과시켰다. ECRA에 ‘원격접속’을 수출·재수출과 별도 범주로 넣는 법안이다. 상원 은행위원회에서 멈춰 있다.

행정부는 법 통과를 기다리지 않고 원격접속 금지 규칙 초안을 준비 중이다. 대상은 태국·싱가포르 등 제3국 데이터센터에서 중국 AI 기업이 엔비디아 GPU 시간을 빌리는 행위로 보도됐다. 초안이 9월 업계 단체에 회람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법적 권한 논란은 남아 있다.

바이든 시기 AI Diffusion Rule의 고객확인(KYC) 의무는 2025년 5월 이후 집행이 사실상 중단됐다. 이후 원격접속 공백이 커졌다는 평가와, 당시 규칙이 산업계 반발로 작동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함께 나온다.


반대쪽 사실: 중국 내수 칩이 이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우회가 전부가 아니다. 중국 정부는 공공·국영 데이터센터에 국산 비중을 올리도록 유도하고, 기업들은 예산 배분을 바꾸고 있다.

  • Bernstein 추정치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중국 AI 가속기 시장에서 엔비디아 점유율은 2025년 약 40%에서 2026년 약 8%로 줄고, 화웨이는 약 50%까지 늘어날 수 있다. 조사 시점과 품목 범위에 따라 수치가 달라진다.
  • 블룸버그 설문에서는 중국 기업 임원들이 향후 12개월 AI 가속기 예산 중 국산 비중을 30%에서 46%로 올리겠다고 답했다.
  • 딥시크는 내몽골 데이터센터에 화웨이 Ascend 950DT 최소 16만 장을 배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학습용으로는 아직 엔비디아에 의존한다는 전언이 있다. 화웨이 공급 능력이 병목이다.

성능 격차는 남아 있다. Epoch AI는 2026년 화웨이 AI 연산 생산량이 엔비디아의 4% 미만이라고 봤고, HBM과 단칩 성능이 제약이라고 평가했다.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젠슨 황은 중국 첨단 AI칩 시장을 화웨이에 상당 부분 내줬다고 말한 바 있다.

따라서 “원격접속만 막으면 중국 연산이 바로 고갈된다”는 주장은 정책 주장이다. 공개된 독립 통계로 뒷받침되지 않는다. 반대로 “국산 칩이 수요 대부분을 대체했다”는 주장도, 학습용 최전선 연산과 추론·중저성능 연산을 구분하지 않으면 과장된다.


동남아는 우회 통로인 동시에 대체 시장이다

말레이시아·싱가포르는 미국 칩의 경유지이자, 화웨이가 미국 통제망 밖에서 고객을 찾으려는 시장이다.

9월 7일 블룸버그는 말레이시아가 20억 링깃(약 4억 9,400만 달러) 규모 주권 AI 사업의 기반 하드웨어로 화웨이 Ascend 910C를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외국 정부가 미국산 대신 중국산 AI 가속기를 공식 채택하는 첫 사례가 될 수 있다. 워싱턴은 지난해 910C 사용이 미국 수출규제를 위반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말레이시아 쪽은 상업적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라이선스·원격접속 규제가 강화되면 동남아 데이터센터 투자 조건이 바뀐다. 미국산 GPU를 들여와 중국 고객에게 빌려주던 사업 모델은 위축되고, 화웨이·국산 스택을 쓰는 제3국 인프라는 상대적 공간을 얻는다. 봉쇄가 중국 대체 칩과 제3국 스택을 키운다는 산업 쪽 반론은 이 지점에서 나온다.


입장 차이

수출통제 강화 쪽

밀수와 클라우드 우회를 두면 Blackwell 금지가 실효를 잃는다고 본다. 하원 대중국특별위원회는 밀수·합법 조달·모델 증류를 함께 적시하고, RASA·칩 위치추적·셸컴퍼니 규제 입법을 권고했다.

산업·시장 쪽

추가 규제가 미국 서버·클라우드·네오클라우드 매출을 줄이고, 중국 내 대체 생태계만 가속한다고 본다. 엔비디아는 아시아 고객 화이트리스트를 줄이고 현장 실사를 강화했다고 보도됐으나, 중국 시장 자체는 이미 상당 부분 포기한 상태다.

제3국 인프라 쪽

말레이시아·싱가포르 사업자는 미국 라이선스 범위가 넓어지면 투자와 고객 구성이 흔들린다고 본다. 동시에 화웨이 채택은 미국과의 통상·안보 마찰을 각오해야 한다.


아직 확정되지 않은 점

  • Aivres 수출분 중 얼마가 중국 본토 학습에 쓰였는지는 무역기록만으로 확인되지 않는다. 동남아 클라우드 합법 임대와 재반출이 섞여 있다.
  • 문샷의 태국 GB300 사용은 백악관 당국자 주장이다. 회사 측 해명은 없다.
  • Epoch·IAPS 수치는 공개 사건과 보도를 외삽한 추정이다.
  • 원격접속 규칙 초안의 적용 범위(미국 하이퍼스케일러만인지, 제3국 네오클라우드까지인지, 기존 계약 소급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이 주제가 합의문으로 나올지는 미정이다. 5월 베이징 회담에서는 칩 수출통제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앞으로 달라지는 지점

AI 경쟁의 제약 조건은 칩 스펙에서 ‘실제로 쓸 수 있는 연산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원격접속 규제가 도입되면 영향은 세 층에서 동시에 나타난다.

  • 클라우드·네오클라우드: 중국 본사 고객을 받는 제3국 GPU 임대 계약이 허가 대상으로 바뀐다.
  • 동남아 데이터센터 투자: 미국산 첨단칩을 전제로 한 자금 조달과 전력·용지 계획이 재작성된다.
  • 중국 내부: 학습용 최전선은 우회 연산과 제한된 밀수·잔여 재고에, 추론·서비스는 화웨이·캠브리콘 등으로 더 빠르게 나뉠 가능성이 있다.

물리적 봉쇄만으로는 이미 충분하지 않다는 점은 무역기록과 기소, 클라우드 계약으로 확인된다. 원격접속까지 막을 수 있는지는 법 권한과 동맹국 데이터센터 협조, 중국 내수 칩 공급 속도에 달려 있다. 세 변수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점이 현재 논쟁의 핵심이다.


#AI 정책#반도체#지정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