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취미가 셋 있다. 피아노 치기, 헬스장에서 하는 근력 운동, 그리고 글쓰기. 세 가지에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좀처럼 잘 안 된다는 것이다. 운동을 하루 더 한다고 근육이 0.1밀리미터 늘었는지는 알 길이 없고, 그냥 땀 흘린 것으로 만족하며 한다. 안 되는 날은 안 되는 대로 하고, 피아노도 손가락이 말을 안 들으면 될 때까지 치다 보면 조금씩 느는 게 느껴질 뿐이다. 그냥 하는 것이다.

최근 여가와 취미를 지원하는 도구들이 그 활동의 성격을 바꾸고 있다. 쉬려고 연 앱이 실시간으로 활동량과 목표 달성률을 알려주고 다음 행동을 제안하면서, 여가 시간마저 관리와 최적화의 대상이 된다. 효율을 높인다는 명분 아래 진행되는 이 변화는 활동 자체를 즐기는 경험을 줄이는 방향으로 작동한다. 측정과 목적이 여가의 기본 조건이 되는 순간, 그 시간에 원래 무엇이 있었는지를 다시 보게 된다.

일이 되는 순간 재미없어지는 취미

러닝 앱이 페이스 저하를 알리고 독서 앱이 진도를 표시하며 여행 앱이 동선 비효율을 지적하는 화면은 이제 일상이 됐다. 쉬기 위해 켠 앱이 또 다른 관리 도구로 바뀌는 지점에서 변화가 시작된다. 피트니스 앱들은 AI를 통해 운동을 넘어 회복, 영양, 일정까지 사용자의 하루 전체를 관리하는 방향으로 확장되고 있다. 정량화 자체는 AI 이전부터 존재했다. 구간 경쟁, 연간 챌린지, 연속 기록 같은 장치들이 이미 활동을 숫자로 바꿔왔다. AI는 여기에 실시간 개인 코칭 역할을 더하며 데이터를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취미를 수익화하려는 압력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많은 사람들이 재정적 필요 때문에 취미를 사업으로 전환하려 하면서, 돈이 되지 않는 활동은 스스로 존재 이유를 찾아야 하는 처지가 된다. 최적화는 분명 기록을 높이고 산출량을 늘릴 수 있다.

문제는 같은 활동을 이전보다 덜 즐겁게 만드는 경우가 반복해서 나타난다는 점이다. 측정이 활동 자체를 일처럼 느끼게 만드는 데서 역설이 생긴다.


지표, 지표, 지표…

측정 장치를 사용한 집단은 활동량이 늘었지만 즐거움은 줄었다. 듀크대 조던 에트킨의 연구에서 걷기, 독서, 색칠하기 등 여러 활동을 대상으로 확인된 결과다. 측정 도구를 치운 뒤에도 즐거움 감소는 이어졌고, 일부 참가자는 독서 자체를 피하기까지 했다. 측정이 활동을 일로 전환하는 효과가 나타난 셈이다.

비슷한 기제는 더 이른 실험에서도 드러났다. 어린이들이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데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미리 알게 되자, 자유 시간에 그림을 그리는 비율이 절반 가까이 떨어졌다. 기대되는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밀어내는 현상이다. 경제학자 브루노 프라이(Bruno Frey)는 이를 동기 구축 배제 이론으로 설명했다. 외적 유인이 강해지면 내적 동기가 대체되면서 총 성과가 오히려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몰입 상태에서는 자의식이 사라지고 활동 자체가 목적이 된다는 이론도 있다. 실시간 지표는 이와 반대로 자의식을 계속 불러일으킨다. 페이스나 진행률 숫자를 보는 순간 활동은 평가 대상으로 바뀐다. 측정 기준이 목표가 되면 그 기준 자체가 왜곡을 일으킨다. 가령 독서 앱이 이런 목표를 들이민다고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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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와 그래프에 둘러싸여 머리를 짚은 채 책을 읽는 사람

연간 권수가 중요해지면 얇은 책을 고르고, 완독률이 강조되면 어려운 책을 피하게 된다. 좋은 척도였던 것이 목표가 되는 순간 제 기능을 잃는 셈이다.

AI는 이 과정을 강화한다. AI 코치가 페이스 저하를 실시간으로 지적하는 순간, 그 문장은 중립적 정보가 아니라 즉각적인 보상 신호로 작용한다. 강화학습 시스템에서 반복적으로 관찰되는 현상처럼, 주어진 지표를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의도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초심자 학습이나 재활, 건강 관리처럼 측정이 분명히 도움이 되는 영역은 있다. 다만 측정이 모든 활동의 기본 조건이 되는 순간 문제가 생긴다.


쉬기 위해 일한다는 착각

철학자 요제프 피퍼(Josef Pieper)는 여가와 노동의 관계를 재정의했다.

우리는 여가를 갖기 위해 일하는 것이지, 일을 하기 위해 여가를 갖는 것이 아니다.

고대 그리스어에서 여가를 뜻하는 스콜레(scholē)가 라틴어를 거쳐 학교의 어원이 됐다는 사실은, 과거 사회에서 노동이 여가라는 중심을 도는 궤도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 근대에 들어 노동이 삶의 중심이 되면서 여가는 노동을 위한 수단으로 전환됐다.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라는 표현 자체가 이미 여가를 노동의 보조 수단으로 본다는 지적도 있다.

오랜 기간 기량을 쌓는 활동 자체를 가리키는 진지한 여가라는 개념도 있다. 문제는 그 숙달 과정을 AI에 맡기고 활동을 기록과 공유 중심으로 바꾸는 데 있다. 요한 하위징아는 놀이의 조건 중 하나로 비생산성을 강조했다. 놀이는 자유의지로 선택되고 일상 밖의 시간과 공간에서 이루어지며 그 자체로 생산적 결과를 목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목적 없는 활동은 인간 활동의 한 영역으로서 본래의 자리를 갖는다. 목적을 부여하는 장치가 여가 시간에 들어오는 순간 활동의 성격은 달라진다.


목표부터 묻는 취미앱

AI 시대의 최적화는 시스템이 먼저 사용자를 찾아와 제안을 건네는 형태로 나타난다. 생체 데이터를 운동 시간에 국한하지 않고 하루 전체 일정에 적용해 무엇을 언제 할지를 먼저 알려주는 서비스가 늘고 있다. 코칭 앱과 대화형 AI의 온보딩은 첫 화면에서 목표를 정하게 만드는 구조를 따른다. 사용자가 목표를 입력하면 이후 진행 상황을 계속 추적하는 흐름이 이어진다. 목표 없음을 허용하지 않는 인터페이스 문법이 만들어지는 셈이다.

창작 취미에서는 형태가 다르게 나타난다. 그림이나 글, 작곡에서 AI는 조언을 넘어 결과물을 대신 생성할 수 있다. 과정 자체가 활동의 전부였던 영역에서 결과로 향하는 지름길이 생기면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보게 된다. 판별 기준은 활동 시간과 관리 시간의 비율이다. 도구가 실제로 활동을 하는 시간을 늘리는지, 아니면 계획과 기록, 분석, 공유에 쓰는 시간을 늘리는지를 보면 된다. 후자가 전자를 넘어서는 지점이 최적화가 활동의 성격을 바꾸는 경계다.

접근성 향상은 분명한 이득이다. 코드를 몰라도 게임을 만들고 악보를 몰라도 곡을 쓸 수 있게 된 사례가 늘었다. 다만 도구를 언제 끌지를 아는 것이 도구 자체의 존재보다 더 중요한 지점이다.


AI는 가질 수 없는 것, 바로 비효율

여가에서는 비효율을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결함이 아니라 한 가지 방식이 될 수 있다. AI 시대에는 무엇을 최적화하고 무엇을 최적화하지 않을지를 구분하는 일이 새로운 형태의 자기 관리가 된다. 개인적으로는 특정 취미를 측정과 기록에서 완전히 배제하는 영역으로 정해 둘 수 있다. 실시간 지표 확인을 자제하거나, 준비 단계에서만 AI를 쓰고 실제 수행 단계에서는 끄는 규칙을 세우기도 한다. 과정 자체에 시간이 더 들어가는 필름 카메라나 손뜨개 같은 도구를 의도적으로 선택하는 것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어릴 때부터 한 종목만 파고들도록 아이들을 몰아가는 분위기도 비슷한 신호다. 몇 급인지, 대회에 나가는지를 묻는 질문은 취미를 스펙으로 바꾸는 출발점이 된다. 잘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애초에 다른 얘기이고, 둘을 굳이 하나로 포갤 이유도 없다.

강화학습 에이전트는 주어진 보상 함수를 끝까지 수행할 뿐 그 함수 자체를 거부할 수 없다. 표적 주변을 계속 맴돌거나 카메라 시야에서만 과제를 수행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사례들이 보여주듯, 에이전트에게는 목적함수를 벗어나는 선택지가 구조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인간은 특정 영역을 보상과 측정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내릴 수 있지만, 이는 AI에게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최적화의 질문은 결국 무엇을 위한 최적인가로 이어진다. 취미는 그 질문에 대해 생산적인 답을 내놓지 않는다. 목적을 부여하지 않는 시간이 유지되려면 그 선택을 반복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측정과 최적화가 삶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되는 상황에서, 일부러 아무것도 하지 않을 수 있는 시간을 남겨두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AI는 주어진 목적함수를 끝까지 수행할 뿐 그 목적 자체를 거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특정 영역을 보상과 측정에서 제외하는 선택을 할 수 있고, 그 선택을 반복하지 않으면 여가는 더 이상 여가로 남지 않는다. 결국 비효율을 지킬 수 있는 권리는 기술이 아니라, 그 권리를 계속 행사할 의지에 달려 있다.

공장과 기계로 뒤덮인 길을 휘파람 불며 걷는 사람

우리는 이미 AI가 온갖 것을 최적화해 주는 세상에 산다. 그러나 사람이 하는 일이 전부 그렇게 다듬어져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 가끔은 그냥 하이킹을 가자. 하루쯤은 아무 쓸모 없는 일에 통째로 빠져 보자. 삼십 분이면 갈 거리를 네 시간 걸려 걸어가 보거나,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반려동물을 곁에 두거나. 그것은 비효율에 떠밀리는 일이 아니라, 비효율을 스스로 택할 수 있는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권리는 사람만이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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