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산 법정에 매물로 나온 40년의 업무 기억
2026년 8월, 파산한 스피릿항공의 내부 업무 데이터가 구글에 1천만 달러로 낙찰됐다. 다만 노조가 이의를 제기해 법원의 최종 승인은 남아 있다. 무엇이 이례적일까? 항공기나 공항 슬롯이 아니라 직원들이 약 40년 동안 만든 기록에 붙은 가격이다.
매물에는 이메일 약 1억 건, Teams 메시지 5억 건, OneDrive 파일 1,700만 개와 SharePoint 항목 2,000만 개 가 포함됐다. 516개 코드 저장소와 198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급여 기록, 가격 모델, 예약, 결항, 환불 이력도 묶였다. 회사가 무엇을 검토하고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복원할 수 있는 자료다.
전문가의 업무 데이터를 AI 기업에 공급하는 Mercor는 750만 달러를 제시했고, 구글은 그보다 250만 달러를 더 냈다. 재무제표에 나타나지 않던 이메일과 업무 절차는 회사의 영업이 끝난 뒤 매각 자산이 된 셈이다.
데이터의 양만으로 학습 가치가 생긴다는 착각
그런데 1천만 달러는 기록의 양에 비하면 크지 않다. 뉴스코퍼레이션의 OpenAI 콘텐츠 계약은 5년간 2억5천만 달러, Reddit의 AI 라이선스 매출은 연간 약 1억3천만 달러로 거론된다. 계약 조건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데이터의 양만으로 학습 가치가 생기지는 않는다.
Teams 메시지 5억 건이면 충분할까? 어떤 판단이 좋은 결과를 냈는지는 알 수 없다. 결정의 근거와 실행 과정, 매출, 정시 운항 같은 결과가 연결돼야 모델이 업무를 배울 수 있다. 구매자가 중복과 오류를 없애고 맥락을 복원하는 데 드는 비용과 위험은 입찰가를 낮춘다.

AI 기업이 강화학습 환경에 큰돈을 쓰는 이유도 같다. 원시 기록과 달리 이런 환경은 업무와 도구, 성공을 판정할 기준을 함께 제공한다. Anthropic은 1년 동안 이 분야에 10억 달러 이상을 쓰는 방안을 논의했고, 독점 계약은 비독점 계약보다 약 4~5배 비싸다. 평가 기준을 붙인 데이터일수록 가격이 높아진다.
그러나 회계 기준은 기업이 내부에서 만든 데이터를 일반적으로 자산으로 인식하지 않고, 관리 비용만 당기 비용으로 처리한다. 데이터 정리가 장부상 자산을 늘리지 않는 지출로 보이는 까닭이다. 한 조사에서는 자사 데이터가 AI에 완전히 준비됐다고 답한 기업이 7%에 그쳤다. 대부분이 아직 준비가 안 됐다는 말이다.
익명화만으로 거래의 정당성이 생긴다는 착각
가격을 낮춘 또 다른 요인은 권리의 불확실성이다. 스피릿 승무원 5,500명을 대표하는 항공승무원노조가 이의를 제기하면서 법원 심리는 9월 9일로 연기됐다. 노조 국제위원장 세라 넬슨은 직원 관련 기록이 팔릴 이유가 없다고 비판했다. 법원은 비식별 처리를 감독할 프라이버시 옴부즈맨도 지정했다.
이름을 지운다고 문제가 끝나지는 않는다. 날짜와 직책, 특정 운항 사건을 결합하면 개인을 다시 알아낼 수 있다. 자료의 연결을 보존할수록 학습 가치는 높아지지만 재식별 위험도 커진다. 문제는 재식별만이 아니다. 매물 범위도 불분명하다. 승객과 로열티 회원 정보가 제외됐다는 설명과 승객 이름, 활성 이메일, 직원 기록이 포함됐다는 보도가 엇갈린다.

직원들은 업무 이메일과 메신저 대화가 훗날 상업용 AI의 학습 재료로 팔릴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 퇴직과 해고로 사람들이 흩어진 뒤에는 새로운 이용 목적을 설명하고 이의를 조정하기도 어렵다. 직원과 사전 합의가 없었다는 논란 이 일었다. 익명화만으로 거래의 정당성이 확보되지는 않는다. 이용 권한이 불분명하면 거래가 무산된다.
파산 때 데이터가 매물로 평가된 선례는 있다. 2015년 시저스엔터테인먼트 파산 때도 고객 데이터베이스의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으로 추산됐다. 그러나 스피릿 사례에서는 직원이 일하며 남긴 대화와 판단 과정이 직접 매물이 됐다는 차이가 있다.
개인의 기억 vs. 권리가 정리된 학습 자산
업무 지식을 개인의 기억과 부서별 폴더에서 떼어내, 권리가 정리된 학습 자산으로 만들 수 있는가.
데이터 영역마다 예산과 승인권을 가진 책임자를 두고, 중요한 결정은 근거와 실행 과정, 결과에 연결해 기록한다. 직원과 고객 데이터의 이용 근거와 범위, 제3자 제공 조건은 수집 단계에서 정한다. 사후 정리로는 누락된 근거를 되살리거나 퇴직자와 이용 조건을 협의하기 어렵다.
최고데이터책임자(CDO)를 두는 기업은 늘었지만 권한은 함께 늘지 않는다. 대기업의 CDO 도입률은 84%를 넘지만 평균 재임 기간은 약 30개월이며, 모호한 권한이 잦은 퇴임 사유로 거론된다. 사업부의 기록 방식과 데이터 이용 조건을 바꿀 권한이 있어야 한다. 직함만으로는 부족하다.
업무 기록을 일방적으로 회사 자산이라 선언하면 직원은 이를 감시로 받아들일 수 있다. 내부 AI 학습과 외부 매각을 구분하고 거부 절차와 보상 여부를 미리 협의해야 한다. 스피릿은 이 논의를 파산 법정에서 뒤늦게 시작했다. 1천만 달러는 데이터의 총량이 아니라 관리 책임, 결정과 결과의 연결, 이용 권리를 미리 정리하지 못한 조직이 치른 값이다. 문 닫힌 뒤에는 사람과 합의의 여지까지 함께 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