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개국이 택한 WAICO, 규칙보다 인프라
2025년까지만 해도 AI 거버넌스 경쟁은 규제를 먼저 마련한 유럽과 기술 개발, 보급을 앞세운 미국의 대립으로 설명됐다. 한 거버넌스 분석가는 2026년 8월 유럽의 시행 연기와 미국 연방정부, 주정부의 충돌, 중국 주도의 세계인공지능협력기구(WAICO) 출범으로 경쟁 구도가 세 진영으로 나뉘었다고 분석했다.
각 진영의 철학이 바뀐 것은 아니다. 확실한 규제를 내세웠던 유럽은 시행을 미뤘고, 유연성을 중시했던 미국은 전국에 적용할 단일 규칙을 요구했다. AI 도입 경쟁이 빨라지고 규정을 이행할 인력과 예산이 부족해지자 두 진영 모두 기존 방식을 수정했다.
중국은 브뤼셀과 워싱턴의 규정에 모두 대응하기 어려운 국가를 대상으로 삼았다. 2026년 7월 16일 29개국이 창설 협정에 서명한 WAICO는 상하이에 본부를 두고 인력과 제도 역량 강화, 기술 호환, 오픈소스 생태계 조성을 함께 추진한다. G7과 EU 회원국은 창설 명단에 포함되지 않았다.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개발도상국에 5년간 AI 연수 5,000석을 제공하고 아세안, 아프리카연합, 중남미카리브국가공동체 등과 AI 응용 협력센터를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전체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작은 규모다. 다만 규정만 제시하지 않고 교육과 모델, 인프라를 함께 제공한다는 방향은 분명하다.
EU의 디지털 옴니버스
EU의 ‘디지털 옴니버스(Digital Omnibus on AI)‘는 고위험 AI 관련 규정의 시행 시점만 늦췄다. 독립형 고위험 시스템은 2026년 8월에서 2027년 12월 2일로, 제품안전법 적용 대상 제품에 탑재된 시스템은 2028년 8월 2일로 연기됐다. 적합성 평가에 필요한 조화 표준과 인증 역량이 부족한 데다 미국보다 저조한 투자와 산업계의 압력까지 겹쳐 기존 일정을 유지하기 어려웠다. 안전성이 높아져 일정을 늦춘 것은 아니다.
파운데이션 모델을 뜻하는 범용 AI(GPAI) 관련 의무는 2025년 8월부터 시행됐다. 2026년 8월부터는 위반 시 전 세계 연 매출의 3% 또는 1,500만 유로까지 벌금이 부과된다. 챗봇과 합성 콘텐츠를 기능에 따라 규제하는 제50조의 투명성 의무와 금지 관행 관련 규정도 그대로 유지된다. 고위험 AI와 GPAI는 별도의 규제 체계를 따르므로 모델 제공자와 해당 모델을 이용해 시스템을 개발하는 사업자에게 각기 다른 의무가 적용된다.
기업이 준비해야 할 일정도 사업 영역에 따라 다르다. EU 시장에 공급할 모델과 API에는 문서화, 저작권 준수, 시스템 위험 평가 체계를 먼저 마련해야 한다. 고용, 신용, 생체인식 분야의 고위험 서비스와 기기에 탑재되는 제품은 개발 기간이 늘어났다. 고위험 AI 규정의 연기를 EU AI 규제 전체의 유예로 받아들이면 이미 시행된 투명성 의무와 표시 의무를 지키지 못할 수 있다.
연방의 단일 규칙 vs. 캘리포니아의 주법
미국에서는 규제 강도보다 누가 규칙을 정할지가 쟁점이다. 연방 하원이 예산 법안에 담았던 주 정부의 AI 규제 10년 유예안은 상원에서 99대 1로 삭제됐고 국방수권법에도 포함되지 않았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는 주마다 별도의 승인을 받을 수 없다며 전국에 적용할 단일 규칙을 주장했다.
2025년 12월 행정명령 14365호는 법무부에 소송 전담반을 두고 상무부가 주법을 평가하도록 했다. 광대역 지원금도 각 주의 규제 기조와 연계했다. 다만 행정명령으로 주법을 폐지할 수는 없다. 의회가 연방법의 우선 적용을 명시하지 않는 한 연방정부와 주 정부의 권한 다툼은 이어진다.
이 문제를 두고 같은 당 안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텍사스주 상원의원 테드 크루즈는 전국 단일 체계를 지지하지만 플로리다 주지사 론 디샌티스는 초대형 데이터센터의 전기요금과 아동, 소비자 보호 문제를 주와 지방정부가 다뤄야 한다고 주장한다. 캘리포니아의 학습데이터 공개법과 AI 투명성법, 텍사스와 일리노이의 규정은 이미 기업에 의무를 부과하고 있다. 콜로라도의 기존 AI법은 xAI의 소송과 법무부 개입을 거쳐 2026년 5월 새 법으로 대체됐지만 다른 주의 법까지 효력을 잃은 것은 아니다.
기업은 연방정부가 권한 다툼에서 이길 것으로 보고 준수 체계를 하나로 통합하기 어렵다. 같은 서비스라도 EU에서는 고위험 AI로 분류될 수 있고 중국에서는 알고리즘 신고와 학습데이터 안전기준을 적용받을 수 있다. 미국에도 행정명령의 적용 대상에서 빠진 아동 안전, 데이터센터, 주 정부 조달 규제가 남아 있다. 기업이 준수 체계와 클라우드 리전, 데이터센터 입지를 관할 지역에 따라 나누는 것도 이 때문이다.
Qwen 모델 15만1,448개는 왜 먼저 퍼졌나?
세 체제를 모두 감당하기 어려운 국가와 기업은 윤리 원칙보다 당장 쓸 수 있는 컴퓨팅 자원과 모델, 인력을 먼저 찾는다. WAICO가 제공하는 연수와 협력센터, 저비용 오픈웨이트(가중치를 공개한) 모델은 이런 수요에 맞는다. 2026년 여름 AI 모델 공유 플랫폼 Hugging Face에는 Qwen 계열을 바탕으로 만든 모델이 15만1,448개에 달했다. 현지에서 미세조정할 수 있는 모델이 규범 문서보다 먼저 개발자에게 보급된 사례다.
공약을 실행하기는 쉽지 않다. 서명식을 열고 연수를 제공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국경을 넘는 공동사업을 추진하려면 자금과 호환 가능한 표준, 안전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 WAICO 회원국은 주로 글로벌 사우스와 러시아에 가까운 국가이며 G7은 참여하지 않았다. 이에 따라 서구와 다른 표준과 클라우드, 데이터 체계가 생길 수 있다. 다만 창설국인 브라질처럼 미주 공급망과도 연결된 국가는 가입했다고 해서 기술 체계가 하나로 통일되지는 않는다.
기업과 기관이 따르는 체계는 용도와 시장에 따라 달라진다.
- EU에서 매출을 올리는 모델 제공자는 GPAI 규정과 투명성 의무를 먼저 적용하고 고위험 분야는 2027년 말 시행 일정에 맞춰야 한다.
- 개발도상국의 공공 서비스와 현지 언어 제품에는 중국의 오픈웨이트 모델과 역량 강화 사업을 활용하고, 서구에서 판매하는 제품에는 별도의 준수 절차를 적용할 가능성이 크다.
- 미국에서는 주별 규제와 아동 보호 규정, 전력, 용수 관련 규제를 고려해 여러 지역에 서비스를 배치해야 한다.
결국 더 많은 국가와 기업이 채택하는 체제는 가장 엄격한 규범을 내세우는 쪽보다 기술과 인프라를 먼저 제공하는 쪽에 가까울 것이다.
출처
- Beyond rules and tools: AI governance’s three-body problem — SpeakUp (Robert Greco)
- Artificial Intelligence: Council gives final green light to simplify and streamline rules — Council of the EU
- Questions and answers on the code of practice for General-Purpose AI — European Commission
- China’s New AI Club: The World Artificial Intelligence Cooperation Organization — The Diplomat
- Ensuring a National Policy Framework for Artificial Intelligence — White House
- Trump wants ‘ONE’ national AI rule as states seek to curb impacts on energy costs — Utility Dive
- State AI law moratorium omitted from 2026 defense bill — StateScoop
- Where State AI Legislation Stands Half Way Into 2026 — Tech Policy Press
- State of Open Models: Summer 2026 — Hugging Fac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