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MA 2를 넘어 연속 학습·장기 계획·다중 에이전트 한계에 도전하다

Google DeepMind가 2026년 8월 21일 공식 블로그를 통해 Fenris Creations(구 CCP Games)와의 연구 파트너십을 구체화했다. 이번 발표는 단순히 새 모델을 공개하는 수준을 넘어, 기존 단기 에피소드 중심의 에이전트 평가 환경을 영구적으로 지속되는 3D 세계로 확장하려는 시도로 읽힌다.

발표의 핵심 내용

DeepMind는 15년 넘는 게임 AI 연구 역사를 정리하며, SIMA 2를 기반으로 EVE Online 계열 환경에서 네 가지 핵심 능력을 탐구하겠다고 밝혔다.

  • 연속 학습(Continual Learning):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면서 기존 지식을 잊지 않는 능력
  • 깊은 메모리: 현재 모델의 컨텍스트 창을 훨씬 넘는 시간 스케일에서 정보를 축적·검색
  • 장기 계획(Long-horizon Planning): 수주에서 수년 단위의 목표 설정과 실행
  • 다중 에이전트 역학: 협력·경쟁·협상·경제·창발적 사회 행동

연구 프로그램은 단계적으로 진행된다. 우선 라이브 서버와 분리된 오프라인 EVE Online 인스턴스에서 안전하게 시작하고, 이후 EVE Frontier에서 인간과 에이전트의 공존을 살핀 뒤, 성숙도가 확인되면 라이브 환경으로 확장하는 구조다.


SIMA 2가 남긴 성과와 남은 벽

2025년 11월 공개된 SIMA 2는 Gemini를 핵심으로 통합한 일반화 에이전트다. 화면 픽셀을 입력으로 받고 키보드·마우스만으로 행동하는 ‘인간 방식’ 인터페이스를 유지하면서, 단순 지시 따르기를 넘어 목표 추론·대화·자기 개선이 가능해졌다.

주요 성과는 다음과 같다.

  • 훈련 환경에서 태스크 성공률이 SIMA 1 대비 대략 두 배 수준으로 상승하며 인간 성능 격차를 크게 줄였다.
  • 한 번도 보지 못한 게임(ASKA, MineDojo 등)에서도 일반화 성능을 보였다.
  • Gemini 기반 피드백으로 스스로 태스크를 생성하고 보상 신호를 받아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는 자기 개선 루프를 시연했다.

그러나 DeepMind 스스로도 한계를 인정한다. 매우 긴 호라이즌의 복잡한 태스크, 낮은 지연 시간을 유지하기 위한 짧은 메모리 제약, 저수준 행동의 정밀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이번 EVE 파트너십은 바로 이 ‘남은 벽’을 정면으로 겨냥한 실험으로 볼 수 있다.


왜 EVE Online인가

EVE Online은 2003년 출시 이후 단일 서버(single-shard)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온 영구 세계다. 수천 명의 플레이어가 동시에 참여하는 경제·정치·동맹 구조가 플레이어에 의해 자발적으로 형성되고, 자원 희소성·불완전 정보·장기 결과의 누적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다른 게임이 ‘에피소드가 끝나면 리셋되는 벤치마크’라면, EVE는 ‘시간이 흐르고 역사가 쌓이는 시스템’에 가깝다. DeepMind와 Fenris 측 모두 이 환경을 “다른 어떤 게임도 요구하지 않는 시간 스케일에서 AI가 배우고 적응하고 기억해야 하는 미지의 영역”으로 평가한다.

오프라인 인스턴스를 사용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라이브 플레이어 경험에 직접 영향을 주지 않으면서, 역사 데이터와 시뮬레이션을 통제된 조건에서 다룰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 목표가 의미하는 기술적 전환

현재 대부분의 에이전트 벤치마크는 짧은 에피소드와 명확한 성공/실패 기준을 전제로 한다. 이번 연구는 그 전제를 깨려는 시도다.

연속 학습과 망각 문제

카타스트로픽 포겟팅을 어떻게 제어할 것인가는 오랜 과제다. 영구 세계에서는 환경 자체가 계속 변하므로, 새로운 기술 습득과 기존 지식 유지의 균형이 실전에서 테스트된다.

컨텍스트 창을 넘는 메모리

현재 대형 모델의 컨텍스트 한계는 장기 상호작용의 병목이다. EVE처럼 수개월·수년 단위의 사건이 누적되는 환경은 ‘외부 메모리 + 검색 + 요약’ 아키텍처를 강제하는 실험장이 된다.

장기 계획의 현실성

수주–수년 단위 계획은 단순한 목표 분해를 넘어, 불확실성·기회비용·다른 에이전트의 반응까지 고려해야 한다. 이는 기존 RL이나 LLM 기반 플래너의 한계를 드러낼 가능성이 높다.

다중 에이전트 역학

경제·협상·동맹은 제로섬 게임이나 협력 게임으로 단순화하기 어렵다. 창발적 행동이 실제로 관찰되는지, 아니면 설계된 규칙 안에서만 머무는지가 관건이다.


에이전트 평가 패러다임의 변화

SIMA 계열의 의미는 ‘게임에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처럼 3D 세계를 이해하고 행동하는 것’으로 평가 기준을 옮긴 데 있다. EVE 파트너십은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시간과 다른 주체가 존재하는 세계에서의 지속 가능성’을 평가 기준으로 삼는다.

이는 로보틱스와 실세계 에이전트 연구에도 직접적인 함의를 가진다. 물리적 세계는 리셋되지 않으며, 장기 결과와 다중 주체 상호작용이 일상이다. 게임이 여전히 ‘안전한 프록시’로 기능할 수 있는 이유다.

동시에 한계도 분명하다. 게임이 아무리 복잡해도 물리 법칙·감각·신체 제약은 실제 세계와 다르다. DeepMind가 이번 연구를 “가상과 물리적 세계 모두에서 지속적으로 학습하는 다목적 에이전트로 가는 경로를 검증하는 작업”으로 표현한 것도 이 점을 의식한 결과로 보인다.


게임 산업과 실세계 적용에의 시사점

Fenris Creations 입장에서는 AI를 플레이어 대체가 아닌 ‘도구’로 위치시킨다. 새로운 플레이어 온보딩, 경제 시스템 테스트, 거버넌스 실험 등에서 가치를 찾으려는 태도다. 이미 Gemini를 활용한 루키 도움말 시스템(Aura Guidance)이 제한적 A/B 테스트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더 넓은 시각에서 보면, 이번 움직임은 ‘에이전트가 단기 벤치마크를 넘어 실제 운영 환경에 들어갈 준비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실험이다. 성공한다면 게임 내 NPC·동료·경제 주체 설계 방식이 근본적으로 바뀔 수 있고, 실패하더라도 장기 호라이즌 에이전트의 구체적인 실패 모드를 공개적으로 축적할 수 있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부분과 과제

현재까지 공개된 내용은 연구 방향과 환경 선택에 집중되어 있다. 구체적인 성능 수치, 아키텍처 세부사항, 상용화 일정, 안전·정렬 관련 실험 설계는 아직 나오지 않았다. 오프라인 환경에서조차 장기 실험이 실제로 얼마나 오래 지속될 수 있는지, 메모리 시스템의 확장성이 어느 정도인지 등은 후속 발표를 기다려야 한다.

또한 영구 세계에서 에이전트가 경제·정치에 미치는 영향이 통제 가능한지, 인간과 에이전트의 비대칭 정보·능력 차이가 공정성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지도 중요한 연구 주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번 발표는 ‘더 똑똑한 에이전트’를 만드는 경쟁에서 ‘더 오래, 더 넓게 살아남는 에이전트’를 만드는 경쟁으로 무게 중심이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단기 성공률 경쟁이 여전히 중요하지만, 이제는 ‘시간이 흘러도 무너지지 않는 구조’를 설계하는 능력이 새로운 차별화 지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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