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단위 규제가 사실상 국가 표준을 만들어가다
연방 공백을 메우는 주정부의 움직임
미국 연방 차원의 포괄적 AI 규제 법안이 여전히 지지부진한 가운데, 주 정부가 실질적인 기준을 먼저 만들고 있다. 2025년 캘리포니아와 뉴욕이 선제적으로 프론티어 AI 모델 규제를 도입한 데 이어, 2026년 7월 6일 일리노이 주지사 JB 프리츠커가 「Artificial Intelligence Safety Measures Act」(SB 315)에 서명하면서 이 흐름이 더욱 뚜렷해졌다.
이 법은 대규모 프론티어 AI 개발사에 안전 프레임워크 공개, 중대 사고 보고, 독립적인 제3자 감사를 의무화한다. 특히 연간 독립 제3자 감사를 의무화한 점은 캘리포니아와 뉴욕 법안보다 한 단계 강화된 조치로 평가된다. 법 자체는 2027년 1월 1일부터 시행되며, 감사 의무를 포함한 핵심 조항은 2028년 1월 1일부터 본격 적용된다.
세 주가 만드는 ‘사실상 국가 표준’
적용 대상과 핵심 의무
- 대상: 연 매출 5억 달러 이상, 일정 수준 이상의 연산량(대략 10²⁶ FLOPs 이상)으로 훈련된 프론티어 모델을 개발하는 대형 사업자
- 의무 사항:
- 재난적 위험(catastrophic risk) 평가·완화 프레임워크를 수립·공개·매년 업데이트
- 중대 안전 사고 발생 시 72시간(또는 즉각적 위험 시 24시간) 내 주 정부 보고
- 연 1회 독립 제3자 안전 감사 실시 및 결과 제출(2028년부터)
- 내부 고발자 보호와 기밀 보고 채널 마련
일리노이 법은 캘리포니아의 「Transparency in Frontier Artificial Intelligence Act」(2025년 9월 서명, 2026년 1월 시행)와 뉴욕의 「Responsible AI Safety and Education(RAISE) Act」(2025년 12월 서명, 2026년 3월 최종 수정안 확정, 2027년 1월 시행)를 기본으로 하되, 제3자 감사를 의무화했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세 주를 합치면 미국 AI 시장의 약 40%를 차지해, 사실상 전국적 기준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높다.
재난적 위험의 정의
법에서 말하는 ‘재난적 위험’은 일반적으로 50명 이상의 사망·중상 또는 상당한 재산 피해를 초래할 수 있는 사고를 의미한다. 생물·화학·핵 무기 개발 지원, 대규모 사이버 공격, 시스템 통제 상실 등이 주요 사례로 거론된다.
산업계와 전문가의 엇갈린 시선
찬성 측: 책임과 투명성의 필요성
Anthropic과 OpenAI 등 일부 주요 AI 기업은 법안에 명시적으로 지지 의사를 밝혔다. Anthropic은 “투명성 요구에 독립적 검증을 결합한 첫 사례”라며 평가했고, 안전 옹호 단체들은 “기업 스스로의 말에만 의존하지 않게 된 중요한 진전”이라고 평가했다. 주 정부는 연방 정부가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주민 보호를 위한 최소한의 가드레일이라고 강조한다.
우려 측: 규제 파편화와 준수 비용
산업계 일부와 정책 분석가들은 주마다 조금씩 다른 요구사항이 중첩되면서 준수 비용과 불확실성이 커진다고 지적한다. 특히 감사 기준, 보고 기한, 재난적 위험의 세부 정의가 주별로 미묘하게 달라 전국적으로 사업을 하는 기업에 부담이 될 수 있다. 연방 차원의 통일된 기준이 없는 상태에서 주 규제가 계속 늘어나면 혁신 속도가 둔화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방 선점(preemption) 가능성과 남은 불확실성
트럼프 행정부는 2025년 12월 행정명령을 통해 “최소한의 부담을 주는 국가 차원의 AI 정책 프레임워크”를 강조하며, 과도한 주 규제를 선점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법무부에 AI 관련 소송 전담 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의회에 선점 입법 권고안을 준비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2026년 7월 현재까지 포괄적인 연방 선점 법안은 통과되지 않았고, 기존 주 법은 여전히 유효하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주 법에 맞춰 시스템을 구축해야 하는지, 아니면 연방 선점을 기다려야 하는지”라는 이중 부담에 직면해 있다. 법원 판결이나 의회 입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불확실성이 지속될 전망이다.
장기적 함의: 규제 실험실로서의 주정부
일리노이 법안은 단순한 주 법률을 넘어, 미국 AI 규제 패러다임의 전환점을 보여준다. 연방 정부가 속도가 느린 동안 주 정부가 ‘실험실’ 역할을 하며 실질적 기준을 만들고, 그 기준이 다시 연방 논의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가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세 가지다.
- 다른 주들이 일리노이형 감사 의무를 따라갈지
- 연방 선점 논의가 실제 입법으로 이어질지
- 프론티어 모델의 기술 발전 속도에 맞춰 적용 기준(연산량·매출 임계치)이 유연하게 조정될지
주 단위 규제가 당분간 미국 AI 안전·컴플라이언스의 실질적 기준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