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AI가 예술가의 화풍을 몇 분 만에 따라 할 수 있게 되면서, 모방이라는 행위의 의미가 다시 질문받고 있다. 전통적인 예술 수련에서는 오랜 시간에 걸친 반복이 단순히 기술을 익히는 수단이 아니라, 판단의 원칙을 몸에 새기는 과정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AI의 모방은 그 과정을 대부분 생략한 채 결과만을 빠르게 생산한다. 이 차이가 창작자에게, 그리고 창작 생태계 전체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글의 출발점이다.
5초 만에 도둑맞은 화풍
2022년 화가 그렉 루트코스키(Greg Rutkowski)는 자신의 이름을 검색하다가 이전에 그린 적 없는 그림들을 발견했다. 그 그림들에는 그의 서명이 들어 있었고, Midjourney는 독특한 화풍을 원하는 사용자에게 그의 이름을 프롬프트에 입력하라고 안내하고 있었다. 그는 이후 Stability AI, DeviantArt, Midjourney, Runway AI를 상대로 집단소송에 참여했다. 같은 소송에는 카를라 오르티즈를 비롯한 다른 아티스트들도 이름을 올렸다.

“누군가는 단 5초 만에 내 이름을, 내 스타일의 지침으로 삼아 무언가를 만들어낼 수 있다”
루트코스키는 당시 이렇게 말했다.
2026년 기준으로 스테이블 디퓨전 계열 모델에서 특정 화풍을 학습시키는 LoRA 작업은 대표 이미지 20–50장과 15–45분 정도의 GPU 시간으로 가능하다. 일부 환경에서는 1분 이내에 완료되기도 한다.
반면 스시 장인 지로 오노의 도제 시스템에서는 수련생이 1–2년차에 설거지와 밥 짓기만 맡고, 3–5년차가 되어야 계란말이를 담당하며, 6–8년차에 이르러 직원 식사용 니기리(손으로 쥐어 만드는 초밥)를 쥘 수 있다. 손님에게 초밥을 내기까지는 총 10년이 걸린다. 달걀 하나를 제대로 굽는 데 10년이 걸린다는 말은 이 수련 과정의 실제 구조를 요약한 표현에 가깝다.

동아시아 서예의 임서(臨書, 스승의 글씨를 그대로 따라 쓰는 수련)도 같은 원리를 따른다. 스승의 글씨를 옆에 두고 형태를 따라 쓰는 형림(形臨, 글자의 겉모양을 그대로 본떠 쓰는 단계)부터 시작해, 붓질에 담긴 정신을 옮겨 쓰는 의림(意臨, 글씨에 담긴 뜻과 정신까지 옮겨 쓰는 단계)까지 나아가는 데 수십 년이 소요된다. 이 단계를 건너뛰고 자신의 서체를 주장하는 서예가는 없다. 중국 화단에서도 옛 대가의 작품을 그대로 본떠 그리는 린모(臨摹) 전통이 도제 수련의 기본을 이룬다. 2024년 OpenAI의 GPT-4o가 스튜디오 지브리풍 이미지를 빠르게 생성하자 많은 사용자가 프로필 사진을 지브리 스타일로 바꿨다. 스튜디오 지브리가 그 화풍을 만드는 데는 반세기 가까운 시간이 걸렸다. 미야자키 하야오는 AI가 생성한 움직임을 두고 생명 그 자체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사람은 몸으로 익힌다
같은 동작을 반복할 때 신경과학이 주목하는 변화는 단순한 기억이 아니라 물리적 구조의 변화다. 반복이 이어지면 관련 신경 경로를 감싸는 마이엘린(신경을 감싸 신호 전달 속도를 높이는 절연 물질) 층이 두꺼워지고, 신호 전달 속도가 빨라진다. 붓질을 수없이 반복한 손은 정보를 머릿속에 저장한 것이 아니라, 신경 회로 자체를 다르게 배선한 손이다. 운동 학습은 보통 세 단계를 거친다.
- 동작 하나하나를 의식적으로 생각하는 인지 단계
- 반복하며 점점 덜 생각하게 되는 연합 단계
- 생각 없이 손이 저절로 움직이는 자동 단계
이 전환은 시간과 반복이라는 물리적 조건을 거쳐야만 가능하다.
AI가 화풍을 익히는 과정은 이와 다른 층위에서 일어난다. 확산모델은 수백만 장의 이미지에서 붓터치의 색 분포나 구도의 확률 같은 통계적 패턴을 추출해 파라미터 행렬에 저장한다. 몸이 없기 때문에 마이엘린이 두꺼워질 일도, 근육의 저항을 느끼거나 실패한 붓질에서 좌절을 겪을 일도 없다. 같은 단어 ‘학습’을 쓰지만, 가리키는 물리적 사건은 완전히 다르다.
인간과 AI의 모방을 가르는 실질적인 차이는 그 느림이 몸 안에 남기는 구조적 흔적의 유무에 있다.
느림이나 자의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며, 반복이 실제로 신경 배선을 바꾸었는지, 아니면 벡터 하나를 조정한 것에 불과한지가 구분의 기준이 된다.
슈하리(守破離)
일본 다도·서예·무도에는 슈하리(守破離)라는 3단계 수련 개념이 있다. 슈(守)는 스승의 규칙을 한 치도 어기지 않고 따르는 단계, 하(破)는 그 규칙을 의식적으로 깨며 자기 것을 실험하는 단계, 리(離)는 규칙 자체를 벗어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하는 단계다. 다도의 대가 센노 리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이 틀은 이후 가라테 등 여러 전통 수련 체계로 퍼졌다. AI가 순식간에 해내는 일은 이 가운데 정확히 슈(守) 단계뿐이다. 스승, 곧 학습 데이터의 규칙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다. 하(破)와 리(離)는 정의상 규칙을 깰 자격을 요구하며, 그 자격은 규칙을 몸으로 완전히 통과해본 사람만 얻는다.
AI는 규칙을 깨는 게 아니라 확률적으로 재조합할 뿐이다. 깰 규칙이 몸에 없으니 깨는 행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확산모델은 학습 데이터 분포 밖의 요청, 이를테면 익숙한 구도를 벗어난 새로운 시점이나 낯선 물리적 제약이 걸린 장면에서 자주 무너진다. 손가락 개수가 틀리거나 원근이 붕괴하는 흔한 실패들은 화풍을 표면적으로는 복제했지만, 그 화풍을 낳은 원리를 새 상황에 확장할 능력이 없다는 증거다.

반면 오노의 제자는 10년을 거쳐 새로운 생선, 새로운 손님, 새로운 계절 앞에서도 같은 원칙을 응용해 판단을 내린다. 창작자가 AI로 대가의 스타일을 몇 초 만에 복제할 수 있게 됐어도 사라지는 것은 표면 양식을 흉내내는 데 걸리던 시간, 곧 슈(守) 단계뿐이다. 하(破)와 리(離)가 요구하는, 새로운 문제 앞에서 원칙을 확장하는 능력은 여전히 몸을 통과하는 시간을 요구한다.
자격은 시간을 건너뛸 수 없다
독자나 관객이 모방으로 배운 창작자와 모방만 하는 창작자를 한 장의 결과물만으로 구별하기는 갈수록 어려워진다. 스타일 자체가 이미 복제 가능한 상품이 됐기 때문이다. 구별은 처음 보는 소재, 처음 겪는 맥락, 데이터에 없던 조합처럼 새로운 제약이 주어졌을 때 드러난다. 원칙을 새 상황에 확장해내는지, 아니면 학습한 데이터 범위 안에서만 그럴듯하게 짜맞추는지가 갈림선이다.
장인의 도제 수련이 실제로 남기는 것은 스승의 붓터치, 색감, 구도 같은 표면 스타일이 아니라, 그 스타일을 낳은 판단 원리를 새로운 문제에 적용하는 능력이다. 이 능력은 몸에 재배선된 생성 능력이다. 표면 스타일은 이제 AI가 몇 분 안에 복제할 수 있지만, 슈(守)를 통과하며 얻는 것은 그 복제 가능한 스타일이 아니라 하(破)와 리(離)로 넘어갈 자격이다.
창작 생태계에서 사라질 위험이 있는 것은 베끼기 자체가 아니다. 베끼는 행위는 임서와 린모 전통이 보여주듯 원래부터 창작 훈련의 일부였다. 사라질 위험이 있는 것은 몸을 통과하는 과정 없이 슈(守) 단계만 무한 반복되면서, 하(破)와 리(離)로 나아갈 이유 자체가 약해지는 상황이다.
자격은 시간을 건너뛸 수 없고, 재생은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인간의 모방은 반복을 통해 규칙을 깰 자격을 얻어가는 과정이고, AI의 모방은 규칙을 통계로 압축해 즉시 재생하는 과정이다. 그 차이 속에서 창작자의 자기 것은 스타일이 아니라 여전히 자격 쪽에 남아 있다.
스타일은 이제 빠르게 복제할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그러나 그 스타일을 낳은 원칙을 새로운 상황에서 다시 세우는 능력은 여전히 오랜 시간을 들여 몸으로 통과해야만 얻을 수 있다. AI가 모방의 속도를 극단적으로 단축시킨 시대에, 창작자가 결국 지켜야 할 것은 복제 가능한 스타일이 아니라, 그 스타일을 넘어서는 자격이다. 그 자격을 얻는 느린 과정을 유지할 이유를 찾는 일이, 앞으로 창작 생태계에 남겨진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