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하나에 목격자 셋
교차로에서 충돌이 일어났다. 보행자는 이를 한 장면으로 기억한다. 현장 AI는 로봇의 진입, 차량의 제동, 충격 순으로 기록한다. 하지만 원격 AI는 통신 지연 탓에 제동을 먼저 기록할 수도 있다. 같은 사고를 보고도 인과관계가 달라진다.
| 목격자 | 기록되는 순서 |
|---|---|
| 보행자 | 한 장면 |
| 현장 AI | 로봇 진입 → 차량 제동 → 충격 |
| 원격 AI | 제동이 먼저 기록될 수도 |
사람의 ‘지금’도 실제 순간과 정확히 맞지 않는다. 뇌는 수백 밀리초 동안 들어온 시각과 청각을 하나의 사건으로 묶는다. 한 실험에서는 시각이 273밀리초, 청각이 198밀리초 앞서도 두 자극을 동시에 일어난 것으로 판단했다.
이 차이는 곧 책임 문제가 된다. Tesla가 NHTSA에 제출한 자료에는 원격 조작으로 멈춘 로보택시를 옮기다가 구조물과 충돌한 사례가 있다. 2026년 7월까지 공개된 원격 조작 중 사고는 세 건이다. 조작자가 현재라고 믿은 화면은 이미 지나간 순간이었다. 어느 기록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과실도 달라진다.
뇌가 다시 쓰는 현재
그렇다면 사람의 시간을 기준으로 삼으면 될까. 인간의 뇌도 사건 순서를 그대로 저장하지 않는다. 나중에 들어온 정보로 앞선 지각을 고치기 때문이다. 움직이는 물체와 동시에 번쩍인 빛이 뒤처져 보이는 섬광지연 착시가 대표적이다.
원인과 결과가 뒤집히기도 한다. 버튼을 누른 뒤 불이 늦게 켜지는 환경에 익숙해지면 지연이 사라졌을 때 불이 먼저 켜졌다고 느낀다. 뇌가 익숙한 지연을 미리 보정해서다. 사람과 원격 AI 모두 지연에 적응하며 비슷한 오류를 낸다.
‘동시’의 범위도 고정돼 있지 않다. 훈련을 거치면 여러 감각을 통합하는 시간 창이 약 40% 좁아진다. 법은 이런 차이를 없애는 대신 기준값을 둔다. 교통사고 재구성에서 운전자의 반응시간은 흔히 1.5초로 잡지만 실제로는 1초 미만에서 2초 이상까지 벌어진다.
타임스탬프는 사실인가
기술과 규제는 각자의 시계를 외부 표준시에 맞춰 왔다. 유럽 금융규제 RTS 25는 고빈도 거래 장비에 UTC로 추적할 수 있는 시간원과 최대 100마이크로초 수준의 오차 관리를 요구한다. 거래 순서를 복원해 책임을 가리기 위해서다.
AI 규제도 같은 방식으로 시간 기록을 요구한다. 2026년 8월 2일부터 적용된 고위험 AI 의무에는 사건 로그의 자동 기록이 포함된다. 그러나 타임스탬프가 사실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위성항법 신호가 방해받거나 조작되면 이를 따르는 기록도 흔들린다. 항공기의 GPS 신호 손실은 2024년 상반기에 전년 동기보다 65% 늘었다.
생성 AI는 기록의 맥락도 바꿀 수 있다. 주가 하락 직전에 조작된 속보를 넣으면 하락이 그 속보의 결과처럼 보인다. 앨러미다 카운티 법원은 AI로 조작한 영상과 사진을 제출한 사건을 각하했지만 기계 생성 증거를 다룰 미국 연방증거규칙 707안은 2026년 6월 채택이 보류됐다.
가장 느린 참여자를 기준으로
분산 컴퓨팅은 모든 시계를 완벽히 맞추지 않고도 작동한다. 컴퓨터과학자 레슬리 램포트의 논리 시계는 메시지 송수신을 기준으로 선후를 정하고 인과관계가 없는 사건에는 억지로 순서를 매기지 않는다. 책임을 가릴 때도 모든 밀리초에 순위를 붙일 필요는 없다.
속도 경쟁을 줄이려고 일부러 시간을 늦춘 시장도 있다. IEX는 모든 주문을 광섬유 코일에 통과시켜 350마이크로초 지연한다. 빠른 거래자가 가격 갱신 직전의 틈을 선점하지 못하게 주문을 같은 시간 창에 넣는다. 제11연방항소법원은 2026년 5월 마켓메이커 시타델증권이 이 설계에 제기한 이의를 기각했다.

표준시도 정밀도보다 합의에서 출발했다. 1853년 철도 충돌에는 회사 시각에 맞추지 않은 빌린 회중시계가 얽혀 있었다. 이후 미국 철도는 1883년 공통 표준시를 도입했다. 가장 정확한 시계보다 모두가 따를 규칙이 우선이었다.
AI 시대의 기준도 하나의 시각보다 ‘같은 사건으로 볼 시간의 폭’이어야 한다. 자율주행은 원격 조작자의 왕복 지연, 의료 AI는 의사의 확인 시간, 법정은 사람의 증거 검증 시간을 기준으로 삼을 수 있다. 이 창 안의 일은 함께 책임지고 창 밖의 사건에만 선후를 적용하는 방식이다. 가장 느리지만 책임을 함께 지는 참여자에게 기준을 맞춰야 빠른 기계가 밀리초 차이로 책임을 떠넘기거나 이익을 독점하기 어려워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