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생성 텍스트는 이미 상당한 분량으로 생산되고 소비되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 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한 감촉을 ‘쇠맛’이라고 부르며 거부감을 드러내지만, 출처를 알 수 없게 한 상태에서 진행된 평가에서는 AI 생성 글이 오히려 선호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러한 현상은 독자의 미각이 변화하고 있는지, 아니면 글의 가치 기준 자체가 이동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으로 이어진다.

쇠맛은 역겹다? 54%의 모순

AI가 생성한 글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특정한 감촉을 사람들은 ‘쇠맛’이라고 부른다. 일부 작가들은 이 감촉을 기계적이고 공허한 것으로 평가한다. 문장 구조가 일정하게 반복되고, 접속사가 규칙적으로 배치되며, 문단이 비슷한 리듬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런 글을 읽을 때 독자는 이미 본 듯한 익숙함을 먼저 느끼게 된다.

그러나 뉴욕타임스가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에서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응답자의 54%가 인간이 쓴 글보다 AI가 쓴 글을 더 선호했다. 글의 출처를 알 수 없게 했을 때 절반가량이 AI 생성 글을 선택한 것이다. 쇠맛을 거부하는 의견과 라벨을 제거했을 때 AI 글을 선택하는 행동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점은 단순한 모순으로 보이지 않는다.

이 현상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질문이 겹쳐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나는 독자의 미각이 시간이 지나면서 쇠맛에 적응하는지 여부다. 다른 하나는 쇠맛이 널리 퍼질수록 오히려 인간이 쓴 글의 희소성이 커지는 방향으로 취향이 갈라지는지 여부다. ‘인간 글의 가치가 줄어드는가, 커지는가’라는 질문은 이 두 갈래 위에 놓여 있다. 사실 이 54%라는 숫자는, 쇠맛을 욕하면서도 결국 그쪽으로 손이 가는 우리 자신을 가리키는 것 같아 더 불편하다.

반복 노출, 미각을 무디게 하다

미각은 반복 노출에 적응한다. 처음에 강하게 느껴지던 자극도 계속 접하면 점차 둔해진다. 현재 영어 기사의 절반 이상이 AI 생성으로 추정되는 상황에서, 쇠맛 역시 비슷한 경로를 따를 수 있다. 많은 양의 AI 생성 텍스트를 일상적으로 소비하면 그 감촉이 거부의 대상에서 벗어나 기본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

적응을 가속하는 심리적 요인도 있다. AI가 쓴 글임을 알아채고도 이미 들인 시간이 아까워 끝까지 읽는 매몰비용이 한 가지다. 다른 하나는 AI 글을 읽고 즐겼다는 사실에서 생기는 불편을 줄이기 위해 쇠맛을 정상으로 재정의하는 인지부조화 해소다. 이 두 요인이 반복되면 저항감이 약해지고, 경계의 기준이 흐려진다.

AI 글을 구별하는 능력 자체도 약화되고 있다. AI 탐지 도구의 정확도는 사람이 약간만 손을 대도 74%에서 42%로 떨어지며, AI가 직접 패러프레이즈하면 26%까지 낮아진다(RAID 벤치마크). 모델 품질이 올라갈수록 사람이 직접 구별할 수 있는 수준도 우연에 가까워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Fiedler 2025). 구별하기 어려워지면 구별하려는 동기 역시 줄어든다.

AI가 글을 죽이는가, 분화시키는가

19세기 중반 사진이 등장하면서 정확한 재현을 요구받던 회화는 경쟁에서 밀렸다. 사진은 대상을 빠르고 정확하게 기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회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정확한 재현이라는 의무에서 벗어나 인상주의와 추상표현주의로 방향을 전환했다. 기계가 잘하는 영역을 넘기면서 회화의 역할이 달라진 것이다.

AI 글쓰기가 가하는 압력도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정확하고 매끄러운 글쓰기에서 AI가 비용 우위를 점하면, 인간은 실용적인 글쓰기 영역을 AI에 넘기고 감정·경험·개별적 목소리가 중요한 영역으로 이동할 수 있다. 요약, 정보 전달, 표준 보고서 같은 실용 글은 AI로 평준화되고, 인간 고유의 목소리가 핵심인 글은 별도의 가치를 갖는 구조다. 이는 매체의 소멸이 아니라 매체의 분화다.

시장 동향도 이러한 분화를 뒷받침한다. AI 글쓰기 시장은 2033년 84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시에 Turnitin은 AI가 인간 글의 가치를 오히려 높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용 글 시장은 AI가 차지하고, 인간의 개별적 목소리가 담긴 글 시장은 희소성으로 인해 별도의 수요를 형성하는 두 경로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물론 사진과 회화의 비유가 이번에도 똑같이 들어맞으리란 보장은 없다.

결함 속 빛나는 인간 글의 정수

AI는 넌센스 퀴즈를 잘 만들지 못하고, 유머 감각이 약하며, 무엇이 좋은 글인지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 대신 매끄러운 글쓰기는 낮은 비용으로 수행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인간 글에서 남는 영역은 의외성, 의도된 불완전성, 개인적인 집착, 감각이 논리보다 앞서는 문장과 같은 요소다. AI가 잘하지 못하는 부분이 인간 글의 남은 공간이 된다.

이로 인해 역설적인 시장 구조가 나타난다. AI가 인간의 결함을 더 잘 흉내 낼수록,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불완전성과 과도한 개인성이 오히려 인간이 쓴 글의 증거로 작용할 수 있다. 웹소설 시장에서도 AI 스타일의 양산형 글이 많지만, 상위에 오르는 작품은 대체로 특정한 개인적 특성이 강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많다. 이런 글은 균형보다는 집착이, 일반성보다는 특이성이 두드러진다.

다만 이 프리미엄은 자동으로 발생하지 않는다. AI가 몰래 사용된 경우 진정성의 가치는 사라진다. 인간이 썼다는 사실이 드러나고 확인될 때만 추가적인 가치가 생긴다. 레딧 등 온라인 토론에서도 AI를 숨기고 쓴 글은 결국 신뢰를 잃는다는 의견이 반복적으로 제기된다. 누가 썼는지를 밝히는 맥락과 인증이 중요한 자산이 되는 이유다. 다만 결함이 인간의 증거라는 말도, 결함을 일부러 연출하는 순간 또 하나의 공식이 되어버린다.

혀가 아닌 글 쓰는 손이 길들여진다

대부분의 논의는 독자가 쇠맛에 적응하는 방향에 집중된다. 그러나 더 큰 위험은 글을 쓰는 쪽에서 나타날 수 있다. 작가들이 AI 문체를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를 점차 평균적인 스타일로 맞춰가는 현상이다. 이는 의도적인 모방이 아니라, 편의성 때문에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변화다.

문체 가이드나 few-shot 예시를 통해 AI 티를 없애려는 시도는 모델이 발전할수록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작가 본인이 AI의 전형적인 리듬과 어휘 선택을 내면화하게 된다. 다른 언어에 장기간 노출되면 모국어 감각이 약해지듯, AI 생성 텍스트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 개인적인 어휘와 문장 리듬이 희미해질 가능성이 있다. 이 변화는 강제가 아니라 자발적인 선택에서 비롯된다는 점에서 패스트푸드에 익숙해지는 입맛 변화와 유사하다.

쇠맛을 감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보다, 자신의 글쓰기에서 개인적인 특성을 잃어버리는 것이 더 큰 문제일 수 있다.

개인적 특성의 상실은 단순히 독자의 취향 문제가 아니라, 작가의 정체성 문제와 연결된다. AI 문체에 적응하는 과정은 외부에서만 오는 것이 아니다.

AI가 못 쓰는 ‘추상화’, 우리는 무엇을 쓰는가

인간 글의 가치가 줄어들지 커질지에 대한 질문은 애초에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가치의 총량이 변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가치 있게 보는가의 기준 자체가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얼마나 잘 썼는가’에서 ‘누가 썼고, 어떤 맥락에서 썼는가’로 이동하는 중이다. 기술적 완성도는 AI가 가져가고, 남는 것은 그 글을 특정하게 만드는 개인적·상황적 맥락이다.

표면적인 글쓰기 능력은 이미 AI가 상당 부분 장악했다. 시의 형식, 이미지, 운율 같은 요소에서 AI는 높은 수준의 결과를 만들어낸다. 체코에서 진행된 AI와 인간 시에 대한 수용 실험(arXiv 2026)에서 독자들은 출처를 알 수 없을 때 AI 생성 시를 인간의 시와 잘 구별하지 못했고, 때로는 AI 쪽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했다. 문체의 매끄러움만으로는 인간 글을 식별하기 어려운 단계에 이르렀다.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의 특징은 표면이 아니라 흔적에 있다. 추상표현주의 회화에서 가치가 있는 것은 무엇을 그렸는가가 아니라, 실제로 존재했던 사람의 행위가 남긴 직접적인 흔적이다(Met Museum). 글에서도 마찬가지다. AI는 단어를 배열할 수 있지만, 직접 경험한 감각(qualia), 취약성, 죽음에 대한 인식 같은 요소는 재현할 수 없다.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글은 기술적으로 잘 쓴 글이 아니라, 한 사람이 실제로 그것을 경험하고 감수했다는 사실이 배어 있는 글이다.

이러한 가치는 독자가 그 글이 사람에 의해 쓰였다는 사실을 알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다. AI가 사용되었는지 여부와 맥락이 드러나지 않으면 추가적인 가치는 발생하지 않는다. 둔감화와 분화 중 어느 쪽으로 갈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작가들이 매끄러운 글쓰기를 AI에 넘기고 흔적과 개인적 경험 쪽으로 이동할지, 아니면 AI의 평균적인 문체에 적응할지는 아직 열린 문제다.

결국 문제는 기술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남은 영역을 누가, 어떤 태도로 점유하느냐에 있다. AI가 매끄러운 표면을 빠르게 장악해 가는 동안, 작가들은 자신이 쓰는 글에서 무엇을 지키고 무엇을 내려놓을 것인지를 매번 선택하게 된다. 그 선택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글쓰기 과정 속에서 반복적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그 반복이 쌓여 결국 ‘누가 썼는가’가 여전히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 아니면 그 구분 자체가 흐려진 채로 넘어갈 것인지를 결정하게 된다.

#AI Writing#Authenticity#Taste